기사최종편집일 2024-11-1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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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선 축구팬, 관중 수 세는 구단

기사입력 2006.12.29 14:04 / 기사수정 2006.12.29 14:04

이성필 기자
        
▲ 연고이전을 발표 하며 SK측에서 내걸었던 공지문.
ⓒ SK 축구단
2006년 2월 2일 부천 ‘SK’는 구단 홈페이지에 전격적으로 ‘제주 시대 개막’이라는 공지를 띄웠다. 당시 이 공지를 본 기자는 ‘이게 무슨 소리야?’하며 부천 팬인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확인을 했지만 그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로 의아함을 표시했다. 이후 정확히 연고이전 사실을 알게 된 지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였다.

전격적인 연고이전, 팬의 숨통을 막았다

“나 지금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아.” 지인은 이렇게 한마디를 던진 뒤 말을 잇지 못하고 울다가 전화를 끊었다. 지인의 울먹거리는 목소리는 거대 기업이 모기업인 ‘부천’SK의 ‘연고지 정착’을 깨는 행동에 개인이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큰 행동이었다.

이렇게 축구팬을 울린 SK는 서귀포를 연고지로 ‘제주 유나이티드 시대’를 전격적으로 열었다. 정확히 2년 전 안양‘LG’치타스가 서울로의 연고이전을 선포한 날이었다. 이제 축구팬들은 매년 2월 2일에는 ‘혹시 또 누가 연고이전 하지 않을까?’하며 노심초사로 하루를 보내게 생겼다.

축구팬들은 2년 전 안양 팬들이 저항하다 무기력하게 서울로 보내 FC서울이 탄생한 것을 상기하며 다시는 이런 사례가 나올 수 없음을 동의, 12개 구단 대표들이 모여 ‘한국프로축구 서포터즈 연합’을 구성했다. 연합에서 구성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북 현대 서포터 김민국(28)씨를 회장으로 추대했고 붉은악마와 연대해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그러나 SK는 이들의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SK'의 이러한 행동은 국내 축구팬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알아서 축구팬들을 운동권(?)으로 만든 것이다. 결국 이들을 중심으로 300여 ‘프로축구’ 팬들은 축구회관 앞으로 모여 이사회에서 SK의 연고이전을 승인한 프로축구연맹을 성토했다.

▲ 축구팬들은 성명서를 발표하며 이후 강력한 행동에 들어간다.
ⓒ 부천시민구단 창단모임
이들은 김원동 사무총장과 면담을 요구했지만 자리에 없었고 결국 대답을 듣지 못한 팬들은 종로의 SK의 본사로 이동 기자회견 형식의 집회를 가졌다. 갑작스러운 집회에 지나가던 행인들은 신기한 눈길로 이들을 쳐다봤고 미리 집회금지를 신청해 놓았던 SK측은 상당히 놀랐다.

이 집회에서 프로축구팬들은 부천 ‘SK'의 유니폼을 찢어 SK사옥 입구에 누더기처럼 내동댕이쳤다. 분노의 표시였다. 각 구단의 팬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연고지 정착‘이 우선 되어야 한국 축구가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의 집회에도 별다른 진전이나 합의점 등은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가면서 이러한 행위는 묻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거리로 나선 축구팬들

이 가운데 논쟁거리만 늘어났다. ‘모기업이 수익이 안 나는 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데 무슨 말들이 많느냐’는 경제논리의 시각과 ‘연고지 정착은 축구의 기본인데 부천을 전격적으로 떠난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연고주의 시각이 충돌한 것이다.

결국 ‘축구팬’들은 3월1일 앙골라와의 국가대표 평가전에 검은 옷과 근조(謹弔)가 적힌 띠를 두르고 침묵 응원을 했다. 이후 경기 내내 ‘연고이전 반대’, ‘한국축구 살려내라’를 외치며 경기장을 찾은 축구협회 관계자들을 비롯 많은 축구계 인사들의 머릿속과 가슴속을 불편, 복잡하게 만들었다.

평가전에서의 연고이전 반대 퍼포먼스는 많은 논란을 다시 지폈다. ‘굳이 왜 평가전에서 그러한 행동을 했어야 했느냐’는 의견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알릴 방법이 없었다’는 의견이 대립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을 뒤로하고 앙골라와의 경기에서 축구팬들이 보여준 것은 국내 축구환경의 속내를 정확히 벗겨 주었다.

축구팬들은 올스타전에서도 SK의 ‘야반도주 연고이전’을 성토했다. 앙골라와의 경기 때보다는 어느 정도 이해하는 팬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팀을 잃은 부천 팬들은 ‘부천축구클럽 창단시민 모임’을 발족시켜 활동하며 독일 분데스리가의 인사를 초청, 창단 노력을 기울이는 등 아무것도 도와준 것 없는 프로연맹과 축구협회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 올스타전에서 팬들이 '연고이전 반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강창우
제주 시대를 연 SK, 효과는?

SK는 제주 시대를 열었다. 축구팬들은 제주 유나이티드의 탄생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이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수원 삼성과의 홈 개막전에서는 3만2517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채워 제주 축구팬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듯 했다. 그 다음 경기였던 FC서울과의 경기에서는 개막전의 절반이 경기장을 찾았지만 그래도 희망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다섯 경기에서는 총 1만9854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으면서 오히려 ‘부천 때보다 못한 관중이 들어오는 것 같다’는 우려를 낳게 하였다. 결국 개막전 상대팀이었던 수원과 겨루기 한 컵대회에서는 1537명의 관중을 기록하며 ‘연고이전 왜 했냐’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대구FC 와의 주말 경기에서는 975명이 경기장을 찾아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 수원과의 서귀포 개막전에서 축포가 터지고 있다.
ⓒ 정윤수
때문에 올 시즌 평균관중을 개막전 효과가 나타났던 수원, 서울 경기를 제외하고 보면 2472명이 경기장을 찾은 것으로 나온다. 두 팀의 경기를 합치면 평균 5475명이 찾은 것으로 나온다. 부천 시절의 2904명에 비하면 신장세를 보인 것 같지만 두 경기를 제외하면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제주는 이러한 점을 의식해 시즌 중 제주 출신의 심영성을 성남으로부터 영입했다. 그러나 그는 팀보다 청소년 대표에서 빛을 냈다. 관중 동원에도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제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시즌 종료 후 이루어진 드래프트에서 제주는 연고지 출신의 선수들을 대거 지명했다. 연고지 정착을 통해 내년에는 ‘제주’ 유나이티드의 연고지 정착화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서귀포에 홈구장이 위치, 관중 접근이 어려워 제주시로의 분할 경기 추진도 고려하고 있다.

연고이전은 올 시즌 프로축구와 한국 축구계의 최대 이슈 중 하나였다. 축구팬들은 언제나 불안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자신의 구단까지 의심하게 되었다. 아직도 불안한 국내 축구환경을 그대로 대변한 것이다.

축구팬들을 거리로 내몰아버린 연고이전,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때문에 연고지 정착이 될 수 있도록 구단-연맹-팬 간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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