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윤인섭 기자] 2005년 5월, 러시아의 CSKA 모스크바가 EUFA 컵 우승을 차지하며 동유럽 축구는 사회주의 몰락 이후 겪던 기나긴 침체에서 벗어났다. 비록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서유럽의 강자들에 밀려 뚜렷한 성과를 올리진 못했지만 2008년의 제니트 상뻬쩨르부르크, 2009년의 디나모 키예프 등, 최근 몇 년간의UEFA 컵 트로피는 동쪽으로 향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2008년 이후, 동유럽에 불어 닥친 경제 한파로 올 시즌, 유럽 무대에서 동유럽 클럽은 최근 몇 년간의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CSKA 모스크바가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지만 자신들의 텃밭이나 다름없던 UEFA컵에선 단 한 팀도 8강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남아공 월드컵. 동유럽 축구의 부진은 클럽팀을 넘어 국가대표팀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지난 23일(현지 시간), 16강 진출이 유리해 보이던 슬로베니아와 세르비아가 각각 잉글랜드와 호주에게 패하며 16강 진출이 좌절된 것이다. 아직 슬로바키아가 남아 있지만, 이탈리아전을 반드시 이겨야 16강을 바라볼 수 있는 만큼, 상황은 비관적이다.
C조의 슬로베니아는 경기 전만 해도 1승1무로 조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잉글랜드에 무승부만 거둬도 16강이 확정되는 상황이었고 지더라도 알제리와 미국이 비기면 조 2위로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슬로베니아에 위의 두 결과를 모두 빗겨가게 했다.
슬로베니아는 저메인 데포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분패했고 미국의 랜던 도노반이 경기종료 직전 결승골을 성공시켜 알제리에 1-0으로 승리, 슬로베니아는 미국과 잉글랜드에 승점1점이 뒤진 조 3위로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변변한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짜임새 있는 조직력을 통해 저돌적인 공격축구를 보여줬던 슬로베니아는 미국전에서 2-0 리드를 지키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게 됐다.
D조의 세르비아는 마지막 경기를 사실상 탈락이 확정된 호주와 치러 16강에 대한 전망이 밝았다. 경기 전, 1승 1패로 조 3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호주를 꺾으면 가나와 독일전 결과에 상관없이 16강 진출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전 경기에서 독일을1-0으로 물리쳤기에 팀 사기도 최고조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축구공은 둥글었다. 경기 초반부터 세르비아는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하며 호주에 파상공세를 취했다. 하지만, 후반 들어 체력이 떨어지며 호주의 팀 케이힐과 브랫 홀만에 뜻하지 않은 연속 골을 허용하며 1-2로 패했다. 세르비아는 네마냐 비디치, 데얀 스탄코비치 등 21세기 들어 가장 강력한 스쿼드를 구축했지만 가나전과 호주전에 잇단 불운으로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아픔을 맛봤다.
이제 동유럽 축구의 마지막 자존심은 F조의 슬로바키아가 짊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두 경기에서 슬로바키아는 그들의 짜임새 있는 공격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줬다. 게다가 16강에 오르는 슬로바키아의 유일한 길은 마지막 상대 이탈리아를 꺾는 것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우크라이나의 8강 진출과 유로 2008 러시아의 4강 진출, 그리고 최근 클럽 대항전에서 이룩한 빛나는 성과로 다시금 세계 축구의 중심세력으로 발돋움하는가 싶었던 동유럽 축구. 그러나 2010년 6월 23일, 동유럽 축구는 다시금 '몰락의 밤'을 맞이했다.
과연 슬로바키아가 위기의 동유럽 축구에 극적인 구원자로 나설 수 있을까? 오는 24일 밤11시(한국 시각), 요하네스버그의 엘리스 파크에서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슬로베니아(위), 세르비아(아래) 축구대표팀 (C) Gettyimages/멀티비츠]
윤인섭 기자 press@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