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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먹의 격투기' 복싱! 그리고 김철호 화백(하)

기사입력 2006.08.11 02:22 / 기사수정 2006.08.11 02:22

김종수 기자


스포츠만화에도 흐름이 있다(1)

지독한 사실적 그림체

상당히 주관적인 관점일지 모르지만 필자의 눈에 비친 김철호 화백의 그림은 굉장히 개성적인 지극히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한 독립적인 입체이미지 같았다. 그 역시 사람인지라 누군가의 그림체에 영향을 받았을 것 같기는 하지만 적어도 비슷한 세대에 전성기를 누린 다른 만화가들과는 분명 큰 차이를 두고 걸음을 옮겼던 듯 싶다.

완벽하다? 최고다? 아니다. 김철호 화백은 분명 오랜 세월을 장수해온 인기만화가이기는 하지만 허영만이나 박봉성, 이현세 화백들처럼 만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른바 최고클래스의 만화가는 아니었다.

마치 연필로 스케치하다만 듯한(?) 그의 그림체를 좋아하는 팬들도 많았지만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외면하는 독자들 역시 상당수 존재했다.

깔끔한 펜 선으로 전체적인 조화를 맞춰나가는 대다수 만화가와 달리 그는 사람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가는 이른바 장면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었다. 특히 액션장면이나 격투장면에서 그의 그런 특징은 더욱 빛이 났다. 그런 그림체를 지닌 그였기에 해박한 복싱 지식과 더불어 최고의 복싱만화들을 계속해서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인터넷과 케이블 등이 활성화하지 않은 때였는데도 각 체급의 상위순위자들이 줄줄이 그의 작품에 등장했다. 한국복싱협회에서 자료를 구하러 그의 집에 달려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광적으로 수집했던 수많은 복싱관련자료가 그의 작품에 밑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프로복싱이 최고의 흥행스포츠로 각광받던 시기였다. 국내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이 시기에 수없이 많은 세계챔피언들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쏟아져 나왔다.

'짱구' 장정구를 필두로 '작은 거인' 유명우, '탱크' 문성길, '돌주먹' 박종팔 그리고 비록 세계챔피언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죽음을 불사한 엄청난 투지로 전 세계를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던 '도전자' 김득구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명 복서들이 당시를 호령했다.

세계로 눈을 돌려봐도 이때가 최고 황금기로 평가되고 있다. '디트로이트의 저격수' 토머스 헌즈, '뼈 분쇄기' 슈가레이 레너드, '링의 암살자' 마빈 해글러, '나이지리아의 야수' 무가비, '파나마의 돌주먹' 듀란 그리고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슈퍼스타가 득실거렸다.

김철호 화백의 지난 만화들을 살펴보면 이들의 흔적을 예외 없이 찾아볼 수 있다. 비록 이름은 조금씩 바꿨지만 초상화 같은 그림체와 스타일을 보노라면 '아, 바로 이 캐릭터가 그 선수구나!' 하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특히 그의 대표작 '스콜피오'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주인공과 대립하는 라이벌이 존재하는데 그는 다름 아닌 슈가레이 레너드였다.

적당한 판타지 구성

사실적인 그림체와 달리 그의 작품줄거리는 적당한 판타지 구성을 따르고 있다. 배경과 이끌어가는 큰 틀은 다른 여타의 극화작품들과 별반 차이 없어 보이지만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실에서는 조금 어려울 듯한(?),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줄거리 라인이 펼쳐진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에서 온 무명의 소년이 미국에서 수년간 수련을 쌓아 당대 최고의 복서였던 슈가레이 레너드를 격파하고 그 와중에 금발의 글래머 미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등의 구성이 많다. 금발의 미녀 역시 브룩쉴즈, 파라포셋 등 그 시대 최고의 미인들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다.

일반적인 만화나 드라마에서는 작고 귀여운 한국 여성과 금발 미녀 사이에서 주인공이 삼각관계에 빠지면 으레 마지막에 가서는 전자를 택하지만 김철호 만화에서는 여지없이 금발미녀와 국경 없는 사랑을 나눈다.

무명의 한국인이 두 주먹을 무기 삼아 거대한 미국 땅에서 챔피언의 영광과 금발미녀까지 차지한다는 구성은 전혀 황당무계하다고도 할 수 없지만 좀처럼 이루기 어려운 판타지 구성이 아닐 수 없다.

당시의 다른 복싱만화들과 비교해보자. 워낙 복싱의 인기가 높아 전문적이지는 않더라도 상당수 만화가가 복싱이라는 장르에 손을 댔다. 무협으로 유명한 황재와 축구만화의 달인으로 불린 오일룡은 물론 이현세, 허영만 화백 등 김철호 화백을 빼고서라도 복싱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린 작가는 넘치고 넘쳤다.

하지만, 대다수의 만화가가 헝그리정신, 시련을 이겨내는 도전자, 이루지 못한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 등 복싱 그 자체보다는 드라마 요소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김철호 화백은 당시의 유명복서들, 실제경기를 보는 듯한 다양한 장면묘사 그리고 미국무대평정, 금발미녀와의 사랑 등 확실히 차별화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지금 보면 '저런 점들이 뭐가 그렇게 개성적이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로서는 분명 쉽게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의 만화였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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