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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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먹의 격투기' 복싱! 그리고 김철호 화백(상)

기사입력 2006.08.08 02:06 / 기사수정 2006.08.08 02:06

김종수 기자

스포츠만화에도 흐름이 있다(1)

인기나 관심도 등에서 지금은 그 존재감조차도 시들해지고 말았지만 1970년대 말과 80년대는 한국의 복싱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기다. 

프로복싱 특히 경량급부문에서 수십 명의 세계챔피언을 배출하며 체급복싱의 강국으로 이름을 날리는 것은 물론 아마복싱 등에서도 '88서울올림픽의 영웅' 김광선 등이 놀라운 기량을 보이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프로레슬링이 이른바 '쇼 파동'으로 80년대 초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에 비하면 복싱은 민속씨름과 함께 적어도 80년대 말까지는 국내 격투 스포츠의 쌍두마차로 군림했었다.

이후 꾸준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헝그리 정신으로 대표되던 복싱은 선수의 감소 그로 인한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 상실 등으로 항상 배출해오던 세계챔피언의 명맥마저도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왔고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의 인기에 밀려 국민의 관심 속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90년대 이후 최용수 등이 그나마 끊기다시피 했던 세계챔피언의 계보를 이어갔으나 현재는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그 위상이 초라해진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전국적으로 케이블방송이나 인터넷 등이 활성화되고 K-1, 프라이드FC 등 이른바 종합격투기대회가 국내의 격투 스포츠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복싱은 길고 긴 겨울잠을 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에 격투기 팬인 필자는 한때 최고의 인기격투 스포츠 중 하나였던 복싱의 부활을 바라며 전성기 때의 수많은 복싱만화 중 특히 당대 최고의 복싱만화전문가였던 김철호 화백의 흔적을 잠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헝그리복서, 인생역전, 도전자 등등… 수많은 삶의 의미를 두 주먹에 담았던 사각 링의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해본다.

거한을 때려눕히는 작은 거인들의 '독침펀치'

LA 뒷골목 근방의 한 성인오락실.

쿵, 쿠쿵!

바닥을 울리는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큼직한 문이 '쾅'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부서지듯 열린다.
이어 오락실 안으로 쏟아져 나온 목에 쇠줄을 감은 커다란 체구의 불량배들.

"모두 꺼져! 오늘은 우리가 여기서 게임을 즐긴다."

위압적인 호통소리에 겁을 집어먹은 손님들은 하나 둘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게임을 즐기고 있는 한 사내, 창이 넓은 멕시칸 모자에 카우보이복장을 한 지독하게 깡마른 체구의 인물이다.

"너는 뭐야?"
"뭐 긴?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이지"
"이런, 미친놈이…"

어이가 없어진 불량배 한 명이 커다란 주먹을 들어올려 멕시칸 사내의 뒤통수를 향해 힘차게 내리친다.

"……!"

순간 멕시칸사내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는가 싶더니 몸을 기울여 불량배의 주먹을 피한다. 이어 나무젓가락 마냥 깡마른 그의 팔뚝이 반응하며 전광석화처럼 빠른 주먹을 불량배의 턱에 먹인다.
콰당.

일격에 거구의 불량배가 나가떨어지고 이를 본 다른 불량배들이 우르르 한꺼번에 덤벼든다.
멕시칸 사내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깡마른 팔을 회초리처럼 휘둘러대고 그럴 때마다 거구의 불량배들은 얼굴과 턱 그리고 복부 등을 얻어맞고는 맥없이 나가떨어진다.

"한 사람한테 여러 명이 덤벼들고 너무 비겁한데"

숫자만 많을 뿐 현실적으로는 얻어터지고 있는 불량배들 앞에 나타난 또 하나의 사내, 멕시칸 사내처럼 아주 깡마르기까지는 않았으나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의 동양인으로 싸움판에 끼어들기에는 너무 약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작은 체구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불량배들에 비하면 고사리 손 같은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상대는 무슨 해머에 맞은 것 마냥 쾅쾅 나가떨어진다.

결국, 기세등등하던 거구의 불량배들은 장작처럼 깡마른 멕시칸 사내와 작은 체구의 동양인(한국인)에게 완전히 제압당해 모두 무릎을 꿇고 만다.

'제법인데…'

서로가 서로에게 놀란 멕시칸 사내와 작은 체구의 동양인, 무명 프로복서인 멕시칸 사내와 훌륭한 자질을 바탕으로 나중에 복싱을 배우게 될 주인공은 이렇게 첫 만남을 가지게 된다.

김철호 화백의 만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다. 비 헤비급, 특히 웰터급 이하의 경량급복서를 자주 다루던 김철호 화백의 스타일인지라 해당체급의 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던 멕시코출신 또는 비슷한 느낌이 나는 캐릭터들이 빠질 수가 없었고 또 안팎에서 그런 분위기를 많이 유도해낸다.

또한, 작지만 강한 한국인으로 대표되는 김철호식 주인공이 매서운 주먹을 앞세워 작품 전체를 이끌어 나간다.

깡마르던가 아니면 작고 그도 저도 아니면 유리 턱 심지어는 외팔이까지…
주인공 또는 그에 준하는 핵심인물들은 다들 나름의 약점들이 있다.
하지만, 김철호 만화 속에서의 이들은 대부분 치고 빠지는 이른바 '아웃복싱'을 하지는 않는다.

놀라운 스피드와 테크닉을 앞세워 거구들의 주먹을 피해내기는 하지만 포인트식 경기운영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신 두 주먹에 폭탄을 단 듯 해당체급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강한 펀치력을 앞세워 일격에 상대를 박살내버리는 '인파이팅' 패턴이 주를 이룬다.

김철호 화백의 대표작인 '스콜피온' 역시 작지만 누구라도 쓰러뜨릴 수 있는 강한 주먹을 가진 주인공의 펀치력이 마치 전갈 같다고 해서 붙여진 제목이다.

굉장한 주먹의 소유자는 적었지만 아웃 파이터보다는 투지를 앞세운 인파이터 위주였던 당시의 한국복서들과도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계속>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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