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송희 기자] 전 농구선수 한기범이 굴곡진 인생사를 공개했다.
4일 방송된 TV CHOSUN '인생다큐 마이웨이' (이하 '마이웨이')에서는 농구 전설 한기범이 출연했다.
태어날 때부터 컸다는 한기범은 "아버지가 키가 커서 아버지를 닮아서 키가 큰 줄 알았는데 아버지 이상으로 컸다. 형제들 모두가 190cm 이상이다. 학창시절 코치님이 농구를 제안했다. 그땐 못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생 때의 비전을 보고 뽑은 것 같다"고 말했다.
눈에 띄지 않았던 그의 농구실력. 그저 '키만 큰 선수'로 알려졌다는 한기범은 농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면서 그는 점차 주목을 받았다.
대학시절 연승행진을 이어가며, 전성기를 맞이한 한기범은 실업팀에 입단한 후에도 변함없는 에이스로 등극했다. 한기범은 "프로까지 하면 계약금이 짭짤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제가 무릎 수술을 하고 발목이 많이 아팠다. 진통제를 맞으면 1년은 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약효가 나오지 않더라"고 털어놓았다.
결국 1996년 은퇴하게 된 한기범. 하지만 여전히 농구에 대한 끈은 놓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한기범의 아내 안미애는 '올드보이'에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여고괴담3'에도 출연했다. 결혼 전부터 연예계 활동을 했다는 안미애는 "광고 모델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농구선수와 모델로 활약한 두 사람은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나게 됐다고. 안미애는 "처음 보자마자 남편은 제 이상형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위기가 찾아왔다. 한기범이 사업실패를 하게 되면서 산동네 월세방을 전전하게 된 것.
당시 아내는 단역 배우와 여행사 직원으로 일했다. 안미애는 "그때 통장 잔고가 0원이었다. 그때부터 점점 틀어지고 잔소리리를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한기범은 "아내가 정말 힘들었다. 아파트가 8층이었는데 뛰어내릴거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정말 고비였다"고 말했다.
특히 2000년 한기범은 두 번째 수술까지 하기도 했다고.
한기범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회상했다.
한기범이 국가대표로 뽑히는 걸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그의 아버지. 특히 한기범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한기범은 "한참 운동할 때였는데 밤에 소식을 들었다. 자는데 코치님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더라. 병원에 영정사진을 보고 실감이 났다. 그때 많이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병명 '마르판증후군'을 알게 된 가족들은 꾸준히 검사를 받았다. 한기범은 "'젊으니 괜찮겠지'하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심장마비로 하늘나라에 갔다"고 털어놓았다.
2000년 유전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생을 떠올리며 "'왜 죽었을까'하며 병원에 갔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셨지. 그 병 때문에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유전병으로 동생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기범은 "병원을 갔는데 저도 죽는다고 하더라.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하길래 바로 수술을 했다. 그때는 일찍 하늘나라에 가는 줄 알았다.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유젼병인 탓에 한기범은 자신의 두 아들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다행히 두 아들은 현재 마르판증후군 증세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기범 부부는 안도했다.
그런가 하면 한기범의 어머니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아들이 올라오라고 하더라. 아들들도 다들 한기범이 장가를 보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아들의 사업실패를 두고 한기범의 어머니는 "말도 못했다. 별안간에 거리에 앉게 되어서 허망했다. 전세라도 얻을 돈을 구하고 나오지, 어째 몸뚱이만 나오나 싶더라. 원체 빚이 많아서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라며 "밤마다 눈물을 흘렸는데 아들에게 그런 말을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방송을 마무리하며 한기범은 "내 인생은 농구다. 학창시절엔 매일 농구를 했고 지금은 농구를 통해 재능 나눔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키다리 아저씨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winter@xportsnews.com / 사진 = TV CHOSUN 방송화면
이송희 기자 wint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