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잠실구장에서 펼쳐진 한화와 LG의 경기. 한화가 5-2로 앞서고 있던 9회말 1아웃 상황. 역시 마운드엔 '대성불패' 구대성이 버티고 있었고 한화의 승리와 구대성의 세이브엔 단 두 개의 아웃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김인식 감독은 구대성을 내리고 권준헌을 마운드에 올렸다.
구대성은 8회말 2사 2루 상황에서 등판해 이병규를 1루수 파울플라이로 돌려세웠고 9회초 이범호가 솔로 홈런으로 점수를 석 점 차로 벌려 놔 구원 성공에 한 발짝 다가간 상태였다.
모두의 예상대로 9회말에도 올라온 구대성은 첫 타자 박용택을 2루수 앞 땅볼로 처리하며 가뿐하게 1아웃을 잡아냈다.
구대성이 경기를 끝까지 책임질 것이란 생각에 아무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두 개의 아웃을 남겨두고 구대성이 마운드에서 내려가자 구장 주위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잠실구장에 모인 팬들은 모두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오승환(삼성), 정재훈(두산)과 함께 구원왕을 놓고 다투고 있는 구대성을, 그것도 '믿음의 야구'를 펼치는 김 감독이 이런 상황에서 강판시켰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최근에 투구 내용이 부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 감독은 단 몇 번의 실수를 놓고 보직 자체를 바꾸진 않기 때문에 그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역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최근 연일 등판하며 피로가 누적된 구대성을 위한 '배려 차원'이었던 것. 경기 전부터 한두 타자만 상대하는 것으로 계획이 되어 있었다. 김 감독은 앞으로 2~3게임 정도 구대성을 상대 공격의 흐름을 끊을 상황에서 등판시킬 예정이다. 또 그날 상태에 따라 경기 마무리의 여부도 결정할 계획이다.
아예 세이브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투구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혹시 몸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지만 현재 몸 상태는 정상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구대성이 내려가자 잠자던 LG 타선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마운드엔 마무리투수 경험이 있는 권준헌이 올라온 상태였으나 '마무리 권준헌'은 이미 사라진 옛말이었다.
LG는 마해영의 볼넷을 시작으로 대타 추승우의 우전 안타로 마지막 불씨를 살렸다. 이때 조인성이 권준헌의 낮은 슬라이더를 그대로 걷어 올려 좌측 담장을 넘기는 동점 스리런을 터뜨렸고 잠실은 또 한 번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라던가. 구대성을 내린 대가는 너무도 가혹했다. 한 순간의 선택이 화를 부른 것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계산에 의한 마운드 운영이었으니 할 말은 없다.
손 쉽게 승리할 수도 있었던 한화는 석 점 차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다 잡은 승리를 놓치고 말았다. 연장 12회말 터진 권용관의 끝내기 홈런 앞에 무릎을 꿇은 한화는 결국 5-6으로 석패했고 두산이 KIA를 3-1로 제압함에 따라 4위로 추락한 상태다.
과연 이런 '가혹한 패배'에도 김 감독이 뚝심을 보일지, 또 이날 패배의 충격을 어떻게 수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