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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승 24S’ 뭐든지 다 잘해

기사입력 2006.03.16 10:47 / 기사수정 2006.03.16 10:47

윤욱재 기자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 나의 몬스터시즌 14] 1996년 구대성

 

독수리 군단 세대교체의 중심 

1996시즌 한화 이글스의 화두는 ‘세대교체’였다. 즉시 전력감으로 꼽히는 대형 신인들이 대거 입단하면서 '젊은 독수리'로 변화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 때 강병철 감독은 신인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다소 파격적인 라인업을 밀고 나갔다. 

내야수는 1루수 장종훈을 제외한 전 선수가 신인으로 물갈이됐다. 2루수엔 임수민, 3루수 홍원기, 유격수로 백재호가 기용된 것. 외야에도 송지만, 이영우 등 억대 신인들이 새바람을 넣으며 팀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빙그레에서 한화로 팀 이름이 바뀐 지 벌써 3년째. 팀 전체가 새로워지는 느낌이었다. 

투수진엔 눈에 띄는 신인은 없었지만 기존 선수들이 분발하는 모습이 좋았다. 타선의 활기는 투수력의 안정으로 이어졌고 이 때 ‘승리 보증수표’ 구대성이 있었다. 구대성은 남들보다 뒤늦게 프로에 입문했고 부상으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지만 서서히 프로 무대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거물급 투수로 평가받던 구대성이 잠재 기량을 모두 보여주기 시작한 해가 바로 96시즌이다. 

‘현대판 마당쇠’의 표본 

강병철 감독은 ‘구대성=마무리’로 일찌감치 못 박았다. 구대성은 시즌 개막전이었던 롯데와의 경기에서 1-1로 팽팽하던 연장 10회말에 등판, 1이닝을 무리 없이 소화하며 팀의 기대에 부응했다. 때마침 한화 타선이 11회초 공격에서 3점을 뽑아내 여유로운 승리가 예상됐다. 하지만 연장 11회말 마해영에게 투런홈런을 맞으며 첫 실점을 허용했다. 다행히 거기서 끝이 났지만 뭔가 꺼림칙했다. 그래도 첫 승은 첫 승. 물론 이 때까지 구대성이 시즌 최다승 투수가 되리라곤 아무도 예상을 못했다. 

그래도 구대성은 신뢰를 잃지 않았다. 그만한 마무리투수가 없기 때문에 한화는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병철 감독은 여차하면 구대성을 투입했다. 조금이라도 이길 수 있는 경기라면 주저 없이 내보낸 것이다. 구대성은 3이닝 마무리는 기본이었고 4이닝도 거뜬히 소화했다. 또 선발투수진에 구멍이 생기면 선발투수로도 나서야했다. 이쯤 되면 가히 ‘마당쇠’ 수준. 

한화는 선발투수진(정민철-송진우-한용덕-이상목-신재웅)은 8개 구단 최고 수준이었지만 마무리 구대성과 연결할 확실한 셋업맨이 없었다. 이것은 지난시즌부터 이어져오던 한화의 아킬레스건이었다. (한화는 95시즌에도 중간계투의 부재와 정민철의 부상으로 추락한 바 있다.) 그런데 구대성이 셋업맨과 마무리를 한꺼번에 소화해버리니 한화로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한국 최고 좌완의 계보를 잇다 

구대성은 한국 최고의 좌완투수로 군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선수였다. 한양대 시절 153km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지는 등 당당한 체격을 바탕으로 한 하드웨어가 뛰어났고 컨트롤만 잡힌다면 본인의 이름처럼 대성할 자질이 엿보였다. 

프로에 들어와서도 150km에 이르는 강속구가 일품이었던 구대성은 프로 초년병 시절엔 컨트롤이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95 한일 슈퍼게임을 계기로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며 최고 투수로 거듭날 조짐을 보였다. 

구대성은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여러 변화구를 구사했지만 그래도 이 때만큼은 직구의 위력이 월등했다. 경기 후반일수록 위력이 더해지는 구대성의 투구는 마무리로서 안성맞춤. 3~4이닝 마무리 기용도 마다하지 않는 강병철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구대성은 ‘현대판 마당쇠’로 프로야구판을 뒤흔들 수 있었다. 중간계투인지 마무리인지 분간이 잘 안갈 정도였다. 이것은 기록으로 여실히 드러났다. 세이브뿐만 아니라 승수에서도 선두를 질주, 마무리가 다승 1위를 차지하고 규정이닝을 채우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 마치 92시즌의 송진우를 다시 보는 느낌이랄까. 

구대성의 활약은 팀 성적도 바꿔놓을 정도로 대단했다. 한화는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 세대교체의 성공을 만천하에 알렸다. 한편 구대성은 다승, 방어율, 구원(당시에는 세이브포인트로 구원 순위를 매김), 승률 등 4개 부문에서 1위를 마크하며 골든글러브는 물론 MVP까지 거머쥐었다. ‘수퍼루키’ 박재홍(현대)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놔 MVP 후보에도 올랐지만 신인 선수가 MVP까지 차지하는 건 곤란하다는 여론이 있어 최고타자 대신 최고투수 구대성에게 MVP의 영광이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선 현대에 일방적으로 밀려 최종순위 4위로 마감, 쓰라린 뒷맛을 느꼈다. 구대성은 비로 하루 연기 되며 열린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선 선발로 나섰지만 현대의 상승세를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아쉬웠던 포스트시즌을 뒤로하고 새롭게 시작한 구대성은 이후 한국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인정받았고 99년엔 팀의 우승을 이끌며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하는 감격을 맛봤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일본을 꺾으며 동메달을 안기며 영웅이 되기도 했다. '큰 경기'에 강한 구대성의 승부 철학은 해외 스카우터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쳐졌다. 구대성은 일본-미국에서 활동하며 한-미-일 프로야구 무대를 모두 밟은 역대 두 번째 선수로 남아있다.

 

구대성 (1996) → 18승 3패 24세이브 방어율 1.88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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