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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박스] 2010 K-리그, '5분 더 캠페인'에 희망을 거는 이유

기사입력 2010.03.02 11:38 / 기사수정 2010.03.02 11:38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대한민국 대표팀이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린 동계올림픽의 열기와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 속에 '살짝'(아주 살짝!) 묻힌 느낌이 있지만, 대한민국 축구의 근원, K-리그가 2월 27일 성대한(아주 성대한!) 개막을 치렀다.

'2010 쏘나타 K-리그'란 이름으로 돌아온 올 시즌 K-리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대감 속에 시작되었다. 물론 월드컵이 열리는 해이기도 하고, 지난해와 달리 메인스폰서를 얻어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다른 데 있다.

바로 프로축구연맹이 시즌부터 K-리그 실제 경기 시간을 5분 더 늘이고 팬들과 5분 더 만나는 '5MM 프로젝트(5분 더 캠페인, 이하 5MM)'를 시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구체적 목표도 수립했다. 실제 경기시간을 지난 시즌 베스트팀 평균이었던 57분 24초에서 60분 이상으로 하고, 경기당 평균 파울은 36개에서 30개 이하로 맞추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 평균 관중 역시 지난 시즌 1만 983명에서 1만 2,500명 이상으로 잡았다.

경기에 임하는 감독과 선수의 자세도 사뭇 다르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훈련 때부터 쓰러지면 바로 일어나고, 경기를 빠르게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K-리그 부흥을 위해 동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차범근 수원 감독도 "의도적으로 경기를 빠르게 진행하려는 노력은 좋은 변화다. 지도자와 선수 모두 적응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러한 캠페인에 발맞춰 모든 구단 감독은 가슴에 '5MM' 캠페인 배지를 달았고, 선수들의 왼쪽 팔에 달린 K-리그 엠블럼 아래에도 '5MM'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지난 달 27일 7개 구장에서 일제히 열린 개막전을 통해 드러난 변화 역시 긍정적이다. 지난 시즌 K-리그 베스트 팀 전북 현대의 평균 실제 경기시간이 57분 24초였고, 나머지 대부분이 50분대 중∙초반이었는데 반해 성남 일화-강원FC(66분 25초), 부산 아이파크-제주 유나이티드(60분 12초) 두 경기가 60분을 넘겼고, 59분 이상 경기도 3경기나 됐다. 개막전 평균 실제경기 시간은 58분 17초였다.

1라운드 7경기의 평균 슈팅 수는 27개로 지난 시즌 평균(23.73)보다 3개 이상 늘었다. 반면 파울은 34.86개로 지난 시즌 평균(36.36)에 비해 줄어들었다. 성남-강원과 서울-대전은 파울보다 슈팅 숫자가 더 많을 정도였다.

물론 몇몇 경기의 수치적 성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성남-강원 외엔 파울 수가 여전히 30개를 남기고, 40개를 넘기는 경기도 있었다. 지난 시즌 리그 챔피언과 FA컵 챔피언의 대결이었던 전북과 수원의 실제 경기시간은 겨우 51분 52초에 불과했다.

그러나 수치는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학창 시절의 예를 들어 보자. 수업 시간 내내 농담이나 여담 한마디 없이 교과서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읽어 내려가며 가르치는 선생님은 '실제 수업 시간'은 길겠지만, 효율 면에서는 빵점이다. 오히려 수업 반 농담 반이더라도 웃겨줄 땐 웃겨주고, 가르칠 땐 핵심을 쪽쪽 뽑아주는 수업이 만점짜리다.

전북-수원의 개막전이 딱 그렇다. 전북-수원의 실제경기시간은 7경기 중 가장 짧았지만, 실제 체감하는 경기 속도와 박진감은 개막전 경기 중 최고를 다툴 만했다. 불필요한 판정 시비나 무의미한 시간 끌기도 없었다. 대신 넘어진 상대 선수를 일으켜 주는 등의 매너 있는 경기 모습과 빠른 공수 전환, 이기고 있어도 물러서지 않고 추가 골을 넣으려는 경기 자세에서 팬들은 만족감을 느꼈다.

하프 라인 근처에서 자기 진영으로의 잦은 백패스를 하며 늘린 실제 경기 시간보다 훨씬 좋은 경기 내용이었다. 이는 5MM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점을 잘 보여준다. 5MM은 단순히 실제 경기 시간이라는 수치적 증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현상일 뿐, 본질은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축구를 통해 팬들에게 즐거운 경기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실제 경기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이에 대한 부차적 현상일 뿐이다.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다고 성적이 오르진 않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성적이 오른 학생은 책상에 오래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원-전북처럼 오랜 시간 공부하진 않았지만, 효율적인 학습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한 때 K-리그를 시끄럽게 했던 '공격축구' 논란도 이와 멀지 않다. 공격축구를 원하는 팬들의 목소리는 단순히 공격을 많이 하란 얘기가 아니라 매 순간 뒤로 물러서지 않는, 투쟁심을 가진 전력을 다하는 플레이에 대한 바램의 표현이다. 5MM은 바로 이런 변화를 K-리그에 가져오기 시작했다.



개막전에서 카드의 숫자가 많았던 것에 대해 차범근 감독은 "심판의 과감한 경기 운영은 긍정적이지만 카드를 꺼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많은 경고로 경기 흐름을 끊을 경우 '5분 더'라는 뜻을 상실할 수도 있다. 주심의 지혜로운 운영이 필요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동시에 김학범 전 성남 감독이 브라질 연수를 다녀온 이후 했던 말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브라질 리그에선 거친 태클에 대해 가차없이 경고를 들더라. 기술 축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다. 우리도 경기진행 상황 등에 관계없이 고의 파울이나 거친 반칙을 하면 심판들이 카드를 확실하게 빼 들어야 한다."

무의미한 시간 끌기나 축구를 격투기로 만드는 파울에 대해 거침없이 카드를 뽑아드는 것에 대해 이재성 프로축구연맹 심판위원장이 "플레잉타임을 늘리기 위해 페어플레이에 위배되는 행동이나 경기 지연행위를 묵인할 수는 없다. 강도 높은 판정으로 이번 기회를 K-리그 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면 좋을 것이다. 즉, 초반에는 잦은 경고가 실제 경기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나, 주심의 '지혜로운' 판정이 누적되어 올바른 기준이 성립하면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실제 경기 시간을 늘릴 수 있으며, 나아가 개인기가 좋은 선수들의 멋진 장면도 거친 파울로 부터 보호해 줄 수 있다. 

연맹 역시 개막전에서 5MM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에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전북-수원전(전북 3-1승) 종료 직후 이준하 프로연맹 사무총장은 한 인터뷰에서 "득점과 진행 방식, 선수들의 마음가짐 등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이러한 경기스타일을 시즌 막판까지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면 리그 수준 또한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말로 만족감을 드러냈다.

올해 타이틀 스폰서인 현대자동차로부터 현물로 확보한 쏘나타 승용차 30대도 캠페인을 활성화하기 위해 라운드별 베스트팀에 승용차를 주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한다. 리그가 30라운드라는 점을 고려하면 꽤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베스트팀에서도 가장 5MM에 부합하는 플레이를 선보인 선수에게 승용차를 지급하는 것은 어떨까?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선수 외에도 성실하게 경기에 임한 선수가 주목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시즌 종반에 가서 어느 한 팀이 승용차를 싹쓸이하거나, 한 선수가 4~5대의 승용차를 받아 처치 곤란이라며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는 소식은 K-리그 팬 외에도 일반인들에게도 흥미를 갖게 할 만한 가십거리가 되지 않을까? 또한, 이를 통해 'XX팀의 경기는 정말 재밌다!'를 넘어 'K-리그가 정말 재밌어졌다!'란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각에선 뚜렷한 당근이나 채찍이 없는 5MM의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낸다. 승리지상주의가 팽배한 K-리그에서 일시적 효과 외엔 큰 성과가 없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그러나 5MM은 누가 시켜서 하는 캠페인이 돼선 안된다. 5MM은 프로스포츠의 기본적인 자세에 대한 각성 운동이다. 여태껏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조금 과장해서 그동안 K-리그가 프로스포츠답지 못했다는 얘기기도 하다. K-리그의 프로로서의 온전성을 되찾는 것에 대해 현실 의식을 갖지 못하는 클럽이나 선수는 자연스레 퇴보할 것이다.

올해도 K-리그에 '월드컵 특수'가 있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다면 자연스레 그 열기가 K-리그로 옮겨 붙을 것이다. 그러나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맞는 일시적인 호황은 예전처럼 그야말로 '특수'일 뿐이다. 월드컵의 감동을 잊지 못해 경기장을 찾은 이들에게 'K-리그도 재밌네!'란 생각을 심어줄 수 있는 흥행의 근원적 힘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K-리그의 봄은 오지 않는다.

매 시즌 K-리그가 개막하면 '이번 시즌은 다를 것이다!'란 전망이 나오고, 시즌이 끝날 무렵엔 '이번 시즌 역시 ~한 아쉬움이 남는다.'란 한탄이 나왔다. 그러나 올 시즌만큼은 '2010년, K-리그의 르네상스!'란 타이틀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그 소망의 근거에 5MM이 있다. 
 
[사진=(C) 엑스포츠뉴스 이강선 기자]

[전성호의 스카이박스] 대한민국 축구를 가장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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