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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른식탁' 최종일·김영모, 오로지 노력으로 만들어낸 성공 [종합]

기사입력 2019.06.25 19:57 / 기사수정 2019.06.25 20:33




[엑스포츠뉴스 오수정 기자] '뽀로로 아빠' 최종일 대표와 김영모 명장이 성공 비결을 전했다. 

25일 tvN 예능 '물오른 식탁' 마지막회가 방송됐다. 이날에는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를 탄생시킨 최종일 대표와 '대한민국 제과제빵계의 살아 있는 전설' 김영모 명장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종일은 어린이들의 대통령 '뽀로로'를 만들어낸 제작자로, 업계 첫 키즈 테마파크인 '뽀로로파크'를 조성했을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로 경제적 효과 5조 7천억, 브랜드 가치 8천억 달성했다. 김영모는 노동부가 선정한 기능한국인 제과 1호로서, 수많은 청년들의 롤 모델로 자리매김한 그는 현재 '서울의 3대 빵집'으로 맛과 브랜드를 알릴 만큼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최종일은 처음에는 광고회사에 다녔었다고. 최종일은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당시엔 광고회사가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일을 해보니 소비자보다 광고주 마음에 들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광고주에게 어필하기 위한 작업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고는 회의감을 느꼈다. 정말 원하는게 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그 때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애니메니션 관련된 일을 한다면 신나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최종일은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최종일은 "처음 애니메이션을 하게 됐을 때 기뻤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나서 계속 망했다. 그러다 97년 말에 IMF가 왔다. 모든 기업들마다 심하게 주조조정을 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복귀를 원했다. 고민이 됐다. 회사에 남으면 안정적이겠지만 제가 원하는 삶을 못 사는거다. 원하는 삶을 위해서는 황무지에 던져지는 상황이었다. 저는 안정적인 것 대신에 제가 원하는 삶을 선택했고, 회사를 그만뒀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를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뽀로로'라는 캐릭터 이름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뽀로로 캐릭터를 만들 때 굉장히 바뻤다. 그래서 제가 아이들하고 놀아줄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제가 나타나면 나를 독차지하고 싶은거다. 제가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 방해를 했다. 그 때 아내가 저한테 '아빠만 오면 아이들이 쪼로로 몰려다닌다'라고 했는데, '쪼로로'라는 말이 너무 귀여웠다.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가 비슷했다. 그래서 쪼로로와 펭귄을 합쳤고, 뽀로로라는 이름이 탄생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최종일은 뽀로로뿐만 아니라 '꼬마버스 타요'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최종일은 "버스라는 소재가 생소했다. 그리고 캐릭터가 변신도 안 했다. 그래서 '그게 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야기도 평범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저는 아이들이 시각적으로 화려한 것도 좋아하지만 주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에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거라고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김영모는 힘들고 어려웠던 어린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했다. 부모님이 계셨지만 저를 낳자마자 이혼을 하셨고, 형은 어머니는 저는 아버지를 따라갔다. 저는 얹혀사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작은어머니가 저를 계속 길러주셨다. 그러다 처음 아버지 집에 갔는데 아버지 생활이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이어 "초등학교 때 너무 배고팠다. 근처에 빵집이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사먹지는 못했다. 유리창 밖에서 빵을 보면서 허기를 채웠다. 6개월만에 아버지 집을 나와서 외갓집을 찾아갔는데, 3일동안 걸어서 갔다. 생모를 그 때 처음 만났다. 어머니만 만나면 모든 고난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저와 같이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망이 가득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는 재혼을 하시면서 저를 영원히 못 만날거라고 생각하고 아들이 하나만 있다고 말하고 재혼을 하신거다. 그러다 제가 갑자기 나타났고, 저로 인해서 결혼이 실패할거라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 같다. 나중에 성장해서 보니까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 때 '성공해야겠다'는 꿈을 키웠다. 고1때 이모집에서 나와서 자립을 했다. 그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제과점이었다. 빵집에서 일하면 배불리 먹을 것 같았고, 또 숙식을 제공한다고 했다. 그 2가지 조건 때문에 제과점을 들어갔다. 그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50여년 동안 같은 일을 이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김영모는 "사업에 관심이 없었다. 최고의 과자를 만드는 기술자로 남고싶었다. 우연치않게 제 친구가 영업하던 과자점이 있는데, 저보고 맡아서 운영을 해보라고 제안을 했다 고민을 많이 했다. 그 때 어떤 친구가 저한테 '너 정도 기술이면 강남에서 성공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줬고, 돈도 빌려줬다. 그 친구 덕분에 시작을 하게됐다. 오픈할 때 감회가 새로웠다"고 처음 가게를 오픈 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는 "1982년에 6평짜리 점포를 처음 냈다. 빵 주문이 들어오면 밤에도 만들어서 배달을 했다. 3년동안 하루에 3시간밖에 못잤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영모는 성공비결을 묻자 "기본기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한다. 제품 하나하나에 최선의 정성을 들여야한다. 제가 한 번은 빵을 만드는데 발효타임을 조금 놓쳐셔 빵이 잘못됐다. 그래서 폐기처분을 결정했다. 그런데 제가 재로를 산다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빵을  팔고 있더라. 아내가 가게에서 빵을 팔았었는데, 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까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으니 팔아도 된다고 생각을 한거다. 그래서 저는 점포 문을 닫았다. 아내한테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 잘못된 빵을 팔면 안된다는걸 보여주려고 했다. 아내가 다신 그런 제품을 안 팔겠다고 빌더라. 그만큼 완벽하지 않으면 팔지 않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nara777@xportsnews.com / 사진 = tvN 방송화면 
 

오수정 기자 nara777@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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