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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토크⑮] 펠레의 등장, 강호로 도약한 브라질 -1

기사입력 2010.02.17 19:40 / 기사수정 2010.02.17 19:40

박문수 기자

[엑스포츠뉴스=박문수 기자]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의 개막이 약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 때문에 지난 삼바 토크 14편부터 브라질 축구의 월드컵 역사를 통해 그들이 강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었다.

지난 14편에서 브라질 축구의 시작과 통곡으로 바뀐 제4회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 대해 알아보았다면, 이번 삼바 토크 15편에서는 축구 황제로 불리는 펠레가 등장한 1958년 스웨덴 월드컵과 가린샤가 멋진 활약을 보여주며 대회 2연패에 성공한 1962년 칠레 월드컵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지난 14편에서 언급했던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막판까지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홈 팀 브라질은 우루과이와의 결선 최종전에서 후반에만 두 번의 실점을 허용하며 자멸했다. 대표팀의 월드컵 첫 우승을 고대했던 팬들의 바람과는 달리 그들은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며 무너진 것이다.

이러한 상처가 원인이었을까? 브라질은 가장 기본적인 유니폼 부분에서 개혁에 나선다. 그들은 1950년까지 하얀색 유니폼을 착용했지만, 우루과이전 패배 이후, (현재까지 그들의 상징으로 불리는) 초록색 선이 들어간 노란색 상의와 파란색 하의를 채택. 본격적인 축구 강호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다.

불미스럽게 끝난 1954 스위스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이 아시아 대표로 처녀 출전해 우리에게 익숙한 스위스 월드컵은 본격적인 축제의 서막으로 불린다. 기존의 월드컵보다 규모 면에서 압도적이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의 전범 국이란 오명을 쓰고 있던 독일이 출전한 이색적인 대회였다. (게다가 독일은 난적 헝가리를 제압하는 베른의 기적으로 월드컵 첫 정상을 차지했다.)

한편, 브라질은 멕시코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5-0으로 대승을 거두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이후, 구유고슬라비아(이하 유고)와의 맞대결에서는 1-1로 비겼지만, 골 득실에서 우위를 점하며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 진출한 브라질은 저번 대회에서의 부진을 만회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대진표를 보는 순간 좌절감에 빠졌을 것이다. 그들의 상대는 당대 최고의 골잡이인 푸스카스와 콕시스가 버티는 헝가리였기 때문이다.

당시 헝가리는 최강 그 자체였다. 무적의 마자르 군단으로 불리는 그들은 예선에서 만난 대한민국과 독일을 각각 9-0, 8-3으로 누르며 이 대회 우승후보 0순위 다운 모습으로 통과했으며 지난 3년간 무패행진을 달리는 팀이었다. 경기는 예상대로 헝가리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날 경기는 대혈투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얼룩진 오명을 쓰게 됐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헝가리의 히데구티가 전반 4분 만에 선제 득점을 넣었을 때 그의 바지가 벗겨진 것을 본 브라질 수비수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자 시비가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시비는 주먹다짐으로 번졌으며 경기를 관람하던 관중도 경기장에 나와 집단 난투극을 벌였다. 경찰의 제재로 불미스러운 사건은 끝을 맺은 듯싶었지만, 경기가 끝나고 헝가리 숙소에 난입한 브라질 선수들 때문에 더욱 고조됐다.

두 명의 천재가 등장한 1958 스웨덴 월드컵

20세기를 대표하는 축구 선수를 꼽자면 축구팬 다수는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 프란츠 베켄바워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중에 가장 많은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축구의 신으로 불리는 선수는 브라질 출신의 펠레밖에 없을 것이다.

17살이란 어린 나이에 월드컵에 출전해 조국에 우승컵을 선사한 펠레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법사 같은 플레이로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탄탄한 체구에서 비롯되는 빠른 주력과 정확한 드리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마무리 능력은 그 어떤 선수와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

펠레의 재능이 처음부터 발휘된 것은 아니었다. 스웨덴 원정에 나선 브라질은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혔지만, 지난 대회 헝가리의 푸스카스, 콕시스처럼 한 방을 보여줄 수 있는 슈퍼스타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와의 첫 경기에서 3-0으로 이긴 브라질이지만, 2차전에서 잉글랜드와 무득점으로 무승부를 기록한 것은 그들의 불 안전한 전력을 암시했다. 당시 잉글랜드는 강호가 아니었으며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는 팀이었다. 조별 예선에서 브라질은 2경기 동안 3골을 기록하는 득점력 빈곤으로 긴 고민 끝에 어린 펠레란 히든카드를 꺼낸다. 예선에서 기록한 3골이 모두 약체 오스트리아였음을 참작할 때 그들은 다른 우승 후보보다는 2% 부족한 공격력을 지닌 팀이었다.

당시 브라질 감독인 비센트 페올라 감독은 소련과의 경기를 기점으로 펠레와 가린샤라는 최고의 공격진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바늘과 실처럼 하나가 된 펠레와 가린샤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워주며 브라질을 강호로 한 발 나아가게 한다. 이러한 페올라 감독의 전술은 웨일스와의 8강전에서도 효력을 발휘. 브라질은 펠레의 골에 힘입어 4강에 진출하게 된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던 페올라의 도박은 성공했으며, 펠레와 가린샤를 얻은 브라질은 역대 월드컵 한 대회 최다 득점자인 퐁텐느가 버티는 프랑스마저 5-2로 제압. 결승에 진출한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인 양 팀은 후반 중반부터 득점포를 가동한 펠레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브라질의 완승으로 끝났다.

8년 만에 월드컵 결승 무대에 진출한 브라질의 상대는 홈 팀인 스웨덴이었다. 스웨덴도 개최국답게 승승장구하며 소련과 서독을 차례로 격파했으며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월드컵 첫 우승에 목마른 상태였다. 게다가 스웨덴은 AC 밀란의 전설적인 포워드 중 하나인 닐슨 리드홀름을 보유하며 펠레와 가린샤의 브라질에 대적할 수 있는 충분한 강팀이었다.

당시 스웨덴의 잉글랜드 출신 감독 레이너는 자신의 팀이 선제 득점으로 브라질을 꺾고 월드컵에 우승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이러한 그의 발언이 효과를 얻은 것인지 스웨덴은 전반 4분 만에 리드홀름이 선취 득점을 넣으며 스웨덴이 기선제압에 성공한다. 브라질 수비진의 압박이 없는 틈을 타 리드홀름은 페널티 박스 중앙에서 지우마르를 속이며 침착하게 골을 넣었다.

그러나 레이너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 결승까지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다. 즉 초대 대회 우승팀 우루과이를 기점으로 베른의 기적을 만든 서독까지 모두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에 성공했다. 브라질도 1950년 대회에서는 우루과이에 역전패하며 선제 득점 후에도 집중력을 유지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레이너의 월드컵 제패는 전반 9분과 32분에 나온 바바의 동점골과 역전 골에 물거품이 됐다. 이는 페널티 박스 내에서 지속적인 공격력을 시도한 브라질의 성과였으며 스웨덴 수비가 바바를 느슨하게 마킹을 하자 순간적인 침투로 두 번의 슬라이딩 슈팅으로 연결하며 역전한 것이다.

이후, 브라질은 후반 11분에 펠레가 가슴으로 받은 공을 허벅지로 트래핑하고 높이 떠오르자 오른발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으며 3-1로 달아났다. 이 외에도 세트 피스 상황에서 스웨덴 수비진의 실책을 틈타 마리오 자갈로가 차분한 왼발 슈팅으로 팀의 4번째 득점을 넣었으며 한 골을 만회한 스웨덴에 찬물을 껴 얹듯이 펠레가 종료 직전에 헤딩 슈팅으로 5-2 대승을 이끌었다.

한편, 이 대회는 펠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재까지 역대 브라질을 대표하는 최고의 라이트 윙 어로 불리는 가린샤는 제대로 걸음걸이마저 할 수 없을 만큼 신체적으로 열악한 선수였지만, 자신의 신체적 단점을 효율적으로 이용했다. 소아마비 때문에 오른쪽 다리는 굽어 있었고 왼쪽 다리는 6cm나 작았던 그는 믿기지 않는 주력을 바탕으로 탁월한 방향 전환과 드리블, 바나나 킥으로 불리는 위협적인 중거리 슈팅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1962 칠레 월드컵, 대회 2연패에 성공한 브라질

스웨덴 대회에서 브라질은 6번의 도전 끝에 월드컵 우승에 성공했다. 우승뿐 아니라, 그들은 펠레, 가린샤, 바바로 이어지는 최정상급 공격진을 보유하게 됐고 지우마르, 지또, 닐똔 산또스, 마우로 하모스로 이어지는 수준급 수비진도 갖추게 됐다.

브라질은 북중미에서 유일하게 출전한 멕시코를 상대로 자갈로와 펠레의 득점(당시 펠레는 멕시코 수비수 5명을 가뿐히 제치며 득점에 성공했다)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하며 순조롭게 대회에 나서지만, 구체코슬로바키아(이하 체코)와의 2차전에 나선 브라질은 지난 대회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여준 펠레가 체코의 골키퍼인 슬로프와의 충돌 과정에서 생긴 부상으로 대회에서 하차. 위기를 맞는다.

자갈로와 가린샤의 좌우 측면과 바바가 나서는 최전방은 여전히 위협적이지만, 펠레의 부재는 최강이라고 하기에는 2% 부족 해보였다.

그럼에도, 브라질은 강했다. 펠레 없이 스페인과 치른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그를 대신해 출장한 아마히우도가 동점 골과 역전 골을 넣으며 팀의 토너먼트 진출을 이끈 것이다.

8강에 진출한 브라질의 상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인 바비 찰턴이 버티는 잉글랜드였다. 훗날 4년 뒤 다음 대회에서 우승한 축구 종가는 브라질의 가린샤와 바바에 마술쇼에 농락당하며  패했다.

그들의 4강 상대는 개최국인 칠레였다. 당시 칠레는 1964년에 전국을 강타했던 대지진의 아픔을 뒤로하고 카를로스 디트볼(당시 축구 협회장)의 극진한 노력에 힘입어 아르헨티나를 제치고 개최권을 따냈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의 결과물로써, 칠레는 이 대회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인 3위를 기록했다. 월드컵을 일 년 앞두고 심장마비 때문에 고인이 된 그의 행보가 아쉬울 뿐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칠레는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제치며 서독과 함께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했으며   소련과의 8강전에서 접전 끝에 2-1로 승리. 브라질과의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개최국 칠레가 돌풍을 일으키자 조직 위원회는 기존의 경기장보다 더욱 넓은 산티아고로 준결승 장소를 변경한다. 칠레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 속에서 펼쳐진 이날 경기는 가린샤와 바바가 각각 2골을 넣으며 브라질의 4-2 승리로 끝났다.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유혈 사태에 돌입했었던 칠레 관중은 이 날 경기까지 선전했던 대표팀을 오히려 격려하는 훈훈한 광경도 연출했다.

브라질의 결승 상대는 유고를 3-1로 격파한 체코였다. 조별 예선에서 맞붙은 전례가 있는 양 팀은 강력한 창을 보유한 브라질과 든든한 방패를 지닌 체코의 대결로 관심이 쏠렸다. 다른 스타일로 경기에 임하는 양 팀이기 때문에 예측이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제 득점은 체코의 마조푸스트의 발에서 나왔지만, 펠레를 대신해 경기에 출장했던 아마히우도의 동점골과 지또, 바바의 연속 득점에 힘입어 브라질이 3-1로 승리했다.

이로써 브라질은 지난 대회에 이어 월드컵 2연패에 성공. 축구 강호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게다가 축구 황제 펠레가 없이 진행된 대회에서 이루어낸 우승이란 성과는 그들의 놀라운 스쿼드에 대한 답례가 됐다.

[관련 기사] ▶ [삼바 토크 ⑭] 통곡으로 바뀐 1950 브라질 월드컵

[사진=1958, 1962 월드컵 포스터 및 축구 황제 펠레 ⓒ FIFA 공식 홈페이지 캡쳐]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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