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14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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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할아버지와 나' 삶이란 성공과 실패로 가르는 게 아냐[엑's 리뷰]

기사입력 2019.03.28 16:32 / 기사수정 2019.03.28 17:51


[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할아버지와 대학생,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 두 사람이 한 집에 살면서 아웅다웅하고, 또 은밀하게(?) 딜을 한다. 나아갈수록 세대를 초월한 이들의 우정이 더 보고 싶어 진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 중이다. 파리를 배경으로, 꿈을 찾아 방황하는 대학생 콘스탄스가 까칠한 성격의 고집불통 앙리할아버지의 룸메이트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는다. 프랑스 극작가 이방 칼베락(Ivan Calbérac)의 작품이다. 2012년 프랑스에서 초연하고 2015년 바리에르 재단 희곡상을 받았다. 같은 해 동명 영화로도 제작했다. 국내에서는 2017년 첫 선을 보였고 올해 재연 무대를 이어오고 있다.

앙리는 세입자로 들어오려고 하는 콘스탄스를 까다롭게 테스트하고 아들과 아내를 디스하는 괴팍한 할아버지다. 반면 콘스탄스는 호기심 넘치는 20대다. 시골마을에서 아버지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파리로 올라온, 대학교 1학년만 3년째인 자칭 ‘풋풋한 쓰레기’다. 나이부터 성격까지 전혀 맞지 않을 것만 같은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의 삶을 이해한다. 극은 이러한 과정을 유쾌하게, 또 뭉클하게 담는다. 

프랑스 작품이어서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하다. 세입자에게 아들을 유혹해달라고 제안하는 것부터, 간접적인 불륜, 갑작스러운 임신, 그리고 갈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서로 쿨하게 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조금은 어색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앙리의 대사처럼 ‘삶이란 성공과 실패로 가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건 우리가 사랑하는 데 얼마나 성공했느냐인 것, 자신을 묶어두던 말뚝을 뽑아버리면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혼란스러운 20대를 보내는 콘스탄스에게 앙리가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용기를 주는 담담한 결말로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만든다. 편지를 쓰는 과거의 앙리와 앙리의 편지를 읽는 현재의 콘스탄스가 함께 있는 무대 연출이 몰입을 돕는다.


무대는 따뜻하고 아늑한 파리의 아파트를 구현했다. 변화를 주는 장치가 없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신 조명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막장이 아닌 따뜻한 연극이 될 수 있던데는 배우들의 케미가 큰 몫을 했다. 신구 조화가 눈에 띈다. 베테랑 이순재, 신구는 까칠하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콘스탄스에게 런던음악학교 콩쿠르에 나가보라고 조언하는 등 내면에는 정이 많은 앙리를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두 배우의 대사나 애드리브가 조금씩 달라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채수빈은 생기 있는 연기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콘스탄스를 완성한다. 앙리와 티격태격하면서도 그를 이해해가고, 폴을 능청스럽게 유혹하지만 죄책감을 느끼는 콘스탄스에 녹아든다. 명료한 발성이 돋보였다. 

소녀시대 유리는 이번 작품으로 연극에 데뷔했다. 대사 실수가 있긴 했지만 무리없이 캐릭터를 소화했다. 방황하는 청춘에서 앙리 덕에 조금씩 꿈을 찾아나가는 캐릭터의 면모를 발랄하게 담았다. 다만 발성에 조금 더 주안점을 두면 좋을 듯하다. 유리와 채수빈이 극중 술주정을 하거나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는 모습도 볼거리다. 조달환은 팔푼이 같고 여자를 이끄는 매력이 꽝인 폴 역을 과장된 듯한 코믹 연기로 표현해 웃음을 배가한다.  

이순재, 신구, 권유리 채수빈, 김대령, 조달환, 김은희, 유지수가 출연한다. 5월 12일까지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한다. 115분. 만 12세 이상.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파크컴퍼니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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