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10 14:22
사회

맛있는 술에는 '온도 궁합'이라는 비법이 따로 있다

기사입력 2009.12.02 14:30 / 기사수정 2009.12.02 14:30

한송희 기자

- 술마다 다른 맞춤 온도로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아

연말을 앞둔 기업의 마케팅도 계절을 탄다. 체온에 가까울수록, 감성에 다가갈수록 소비자의 차가운 마음도 슬며시 열리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의 체온과 감성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기업들의 노력. 그것이 단순한 마케팅 기법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이끄는 블루오션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온도와 관련해 가장 민감한 것이 바로 우리 몸에 들어가는 음료나 식품들이다. 각각의 음식재료마다 서로 잘 어울리는 짝이 있듯이, 식음료도 저마다 고유의 맛을 살려주는 '온도 궁합'이 있다. 실제 우리 미각은 단맛, 쓴맛, 신맛 외에도 차갑거나 뜨거운 온도의 차이를 감지한다고 한다. 온도가 높아지면 단맛에는 민감해지는데 상대적으로 짜거나 쓴맛에 대해선 무뎌지는 게 다 그런 사정에서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주 찾는 식음료들은 과연 어떤 숫자들과 '온도 궁합'이 맞을까?

먼저, 가장 뜨거운 커피. 특유의 진한 향과 맛을 즐기려면 91~96도 사이가 최적이다. 이보다 높은 온도면 쓴맛이 강하게 배어 나오고, 낮은 온도면 떫은맛이 짙어진다. 반면, 녹차나 홍차, 국화차 등은 60~70도 정도에서 가장 은근한 맛이 우러나온다고 한다.

아이들이 즐기는 피자는 75도가 가장 맛있는 온도이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초밥의 밥은 36.5도에 맞춰야 제대로 된맛을 낼 수가 있다. 종종 초밥을 잘 아는 식도락가들 가운데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직접 집어먹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초밥이 우리 손의 온도와 가까울수록 맛이 좋기 때문이다. 아기에게 먹이는 이유식의 권장온도가 37도 전후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술마다 다른 맞춤 온도

술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온도, 습도, 빛에 민감한 와인의 경우가 그렇다. 전문가들은 레드 와인은 15도, 화이트 와인은 10도 내외로 보관해두고 마실 때 최상의 맛을 누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위스키는 20도 정도의 온도에서 마시는 게 가장 좋다. 물을 타더라도 미지근한 물을 넣어야 위스키 고유의 맛과 향을 살릴 수 있다.

맥주는 그보다 약간 낮은 8~12도 사이가 가장 좋은 온도다. 온도가 높으면 쓴맛이 강하게 느껴지고, 반대로 너무 차면 거품이 일지 않아 맥주의 풍요로운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제조방식에 따라 약간의 온도차가 있는데, 라거맥주는 9도, 밀맥주는 9~12도, 흑맥주는 10~13도일 때, 맥주 특유의 톡 쏘는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국내 한 맥주회사('하이트 프라임')가 온도계 마크를 병에 붙여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온도를 신호등 표시로 보여줌으로써 소비자들의 관심을 불러모은 것이 그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터.

한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술, 소주는 5~8도 정도로 적당히 차게 마시는 것이 좋다. 너무 차면 혀의 감각이 마비돼 안주의 맛을 느낄 수 없고 미지근하면 알코올 냄새가 심해진다. 매실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7~8도 정도로 차게 마셔야 매실 고유의 상큼한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다.

주류업계의 도수 차별화 경쟁

최근에는 온도뿐만 아니라, 도수를 둘러싼 경쟁도 뜨겁다. 소주와 맥주, 위스키 등 주종마다 기존 알코올 도수의 경계가 흔들리고 있다. 같은 값이면 좀 더 도수가 낮고 숙취에 좋은 술들이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탓이다. 6도짜리 막걸리가 '국가대표 전통주'로서의 옛 명성을 되찾고 있는 중이고, 35도로 시작한 소주 역시 지난 2006년 20도 미만의 제품이 처음 출시되더니 이제는 16도 문턱을 기웃거리고 있다. 일부 애주가들의 불만이 없지는 않으나 좀 더 새로운 것과 웰빙 식 음주문화를 선호하는 소비시장의 대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위스키 시장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하던 프리미엄급 위스키 시장에 새로운 범주의 위스키가 어깨를 내밀었다. 윈저, 임페리얼, 스카치블루의 3파전으로만 전개되어 오던 국내 위스키 시장에 40도 미만의 제품이 첫 선을 보인 것이다.

수석 밀레니엄(옛, 천년약속)이 내놓은 36.5도 '골든블루'는 기존 프리미엄급 위스키 시장의 판도 변화를 예고한다. 기존 40도 위스키 고유의 맛과 향은 살리고 독한 알코올만 걷어냈다. 원액은 그대로되, 위스키의 품질을 좌우하는 고도의 블렌딩 기술이 바탕이 되었다. 윈저를 만든 국내 최고이자 유일의 마스터 블렌더 이종기 교수의 손끝을 통해서다.

요컨대, 온도든 알코올 도수이든 체온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것이 우리 몸에 가장 어울리는 방향으로 다가서려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의 한 연구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흔한 비만이나 우울증, 암과 같은 질병들은 대개 정상체온보다 낮은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라며 "우리의 체온을 36.5~37도로 유지하는 것이 건강과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비법"이라고 강조한다.

수석 밀레니엄 박희준 이사는 "시장의 기준은 소비자가 만드는 것"이라며 "다국적주류회사들의 바람과 달리 국내 프리미엄급 위스키 시장도 결국은, 좀 더 부드럽고 자극이 덜한 제품의 출시 경쟁으로 나아가지 않겠느냐"라고 낙관하였다.

 

 



한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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