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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희열2' 장사 천재 백종원, 요식업계 대부 되기까지[종합]

기사입력 2019.03.03 00:02


[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대화의 희열2' 백종원이 인생 풀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2일 방송된 KBS 2TV ‘대화의 희열2'에는 요리연구가 겸 기업인 백종원이 출연했다. MC 유희열을 비롯해 소설가 김중혁,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기자 신지혜 등 패널이 함께 했다.

백종원은 장사 감각이 남달랐던 어린 시절부터 장사꾼 백종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털어놓았다.

백종원은 "방송에서 비춰지는 이미지는 포장된 게 많다. 내가 뭐 다 알겠냐. 좋은 면이 부각된 거다. 어릴 때부터 관심은 많았다. 나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금수저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시골에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건 맞다. 증조부가 만석꾼이었고 조부가 사립학교를 했다. 증조 할어버지와 닮았다고 생각한 게 국민학교 2학년 때 버섯 농사 짓는 게 꿈이었다. 어릴 때 가족과 함께 간 산에서 농사 짓는 걸 본 적 있는데 나무만 세우고 물을 뿌렸는데 버섯이 나온다는 거다. 어린 마음에 솔깃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과수원을 했는데 손이 많이 간다. 반면 버섯은 물만 주면 알아서 큰다고 하니까 '저거다'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백종원은 이어 "자랑 같기도 하지만 남들이 뻥이라고 하는데 진짜다. 4학년 때는 소풍 시즌이 되면 이틀 정도 모여서 한 곳으로 간다. 소풍지가 시끌벅적하다. 우리 때만 해도 캔 음료가 없었다. 그때 저거 되겠다고 생각했다. 청소용 리어카를 빌려 친구 두 명을 끌고 소풍을 간 거다. 오락 시간과 보물 찾기를 반납하고 공병을 수거했다. 리어카 6대 분량의 공병을 수집했다. 작은 돈이 아니었다. 가져다 파니 큰 돈이 들어왔다. 5학년 1학기 때까지 했다. 방위성금으로 기부했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지금의 장사 철학을 갖게 된 첫걸음이 중고차 딜러였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기 직전에 친구 형이 장안평에서 중고차 장사를 했다. 흔한 말로 삐끼라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틀 해보니 너무 단순한 거다. 배턴터치를 한 딜러들이 너무 못하더라. 바보 같이 하더라. 손님이 필요로 한 걸 파악해야 하지 않냐. 자꾸 다른 소리를 한다. 자기 가게에 없으면 옆에 가게 차를 팔아 수수료라도 받으면 되는데 말이다. 내가 해보면 안 되냐고 했다. 차에 대한 정보를 외웠다. 너무 쉬운 거다. 40분만에 팔았다. 며칠 만에 6대를 팔았다. 천직인가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그만두게 됐다. 백종원은 "며칠 만에 두 번째 차를 산 사람이 온 거다. 오자마자 따귀를 때렸다. 속였다는 거다. 운행 거리를 조작하고 차 사고가 크게 나 용접한 걸 몰랐다. 허위 매물인지 몰랐는데 엄청난 충격이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책임감도 생겼다. 아니구나 싶었다. 내가 이 일을 하려면 자동차 구조부터 공부를 해야 하는 거다. 장사에 대한 책임, 내가 파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 신뢰 회복 등을 배웠다"며 당시 깨달은 바를 밝혔다.

요식업을 접한 건 대학교 입학 후부터라고 한다. 백종원은 "치킨을 팔던 동네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짜 맥주에 끌렸다. 상권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압구정동이었는데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근처에 치킨집이 없었다. 치킨 배달이나 포장 판매를 하자고 했는데 운영하는 할머니가 귀찮고 바쁘다더라. 내가 어떻게 해본다고 했다. 전단지를 손으로 썼다. 경비 아저씨에게 치킨을 갖다주며 전단을 문에 꽂아놨다. 200장을 만들었는데 전화에 불이 났다. 내가 한 것에 반응이 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장사의 매력이다. 그것 때문에 지금도 브랜드를 만들고 사업을 하는 거다"라고 이야기했다.

치킨집을 후에 인수하기도 했지만 의외로 식당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백종원은 "과정을 재밌어할 뿐이었다. 그때는 머리에 똥만 들었다. 연구도 안 했으면서 어릴 때 거대 기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예전 사주에 어릴 때부터 해외를 밥 먹듯 돌아다닐 팔자라고 했다. 그때 큰 돈이라는 게 무역 아니면 건설이었다. 갑자기 건설회사를 할 수는 없으니 아무것도 모르면서 인테리어 가게를 했다. 친구가 괜찮다고 해 팔랑귀처럼 했다. 견적서만 봐도 단위가 다르니 멋있어보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사무실에 전화가 안 오더라.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된다.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바보 같이 그냥 올 거라고 생각했다. '골목식당'을 하면서 준비 안 되거나 모르면 하지 말라고 하는 게 그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던 차에 할일이 없어 점심 먹고 수다를 떨어야 하지 않냐. 부동산에서 전화기 너머로 식당 매물 이야기를 들었다. 이 입이 방정인 게 나도 한마디 해야할 것 같은 거다. 허언증 비슷하게 관심도 없으면서 논현동에 식당 괜찮은 것 없냐고 했다. 말을 잘 뱉는데 반드시 수습한다. 그러다 이 방향으로 온 거다. 농담이었다고는 말 못하고 권리금을 물어봤다. 너무 높아서 못 하겠다고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확 낮췄다. 다음날 전화가 왔다. 그 가격에 해주겠다더라. 기쁜 게 아니라 눈물이 났다. 결국은 계약을 했다. 쌈밥집이다"며 음식 장사를 시작한 계기를 밝혔다. 말 한 마디 실수가 지금의 백종원을 만든 것이다.

사업 암흑기도 있었다. 목조 주택 사업을 하다 IMF가 터져 환율이 올라갔고 자재비가 올라가 짓는 족족 적자가 발생했다. 빚만 늘었다. "채권자들을 쌈밥집에 오라고 했다.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방법이 없다. 식당이라도 가져간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혹시라도 기회를 주면 식당으로 일어날 자신이 있다'고 했다. 만장일치로 어음을 연장해줬다. 빚이 나중에 17억이 됐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정말 제일 창피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느낄 때 좌절했다.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면 안 되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잘못했지만 잘 챙겨줬다고 생각하고 아끼던 직원들이 와서 반말식으로 얘기하거나 얼굴 바꿀 때 모멸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쌈밥집 외에도 포장마차를 하게 됐고 대박을 냈다. 서빙, 장보기, 요리, 가게 정리까지 직접 했다. 하루 4시간씩 자며 정신력으로 2년을 버텼다. "몸은 힘든데 재밌는 거다. 내 생각대로 돌아가니까. 이자를 감당하기 시작한 거다. 사람이 어마어마한 부를 누려 행복한 게 아니라 이자를 감당하면서 행복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KBS 방송화면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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