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배우 정우성이 영화 '증인'(감독 이한)을 통해 한층 더 편안해진 매력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영화는 지난 13일 개봉 이후 꾸준한 호평 속에 입소문을 타고 흥행을 이어가는 중이다.
'증인'은 유력한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 순호(정우성 분)가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정우성은 오랫동안 신념을 지켜왔지만 이제는 현실과 타협하고 속물이 되기로 마음먹은 민변 출신 변호사 순호를 연기했다.
사건의 결정적 열쇠를 쥔 유일한 목격자 자폐 소녀 지우를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찾아가며 이야기가 시작되고,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이 스크린 위에 따뜻하게 펼쳐진다.
정우성은 "개인적인 만족도가 큰 시나리오였어요. 의식은 하지 않지만, 상업영화가 갖춰야 될 규모감이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것들을 다 배제한 상태에서의 영화였죠. 그래서 '어떻게 보여질까'라는 긴장감이 다른 영화들보다는 더 있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제가 시나리오를 보며 느꼈던 감성을 함께 나눠주신 것 같아서 한숨 놓았죠"라며 미소 지었다.
시나리오를 덮는 순간 '해야겠다'는 마음이 바로 들었다. 정우성은 "기획적인 측면에서의 전략적인 판단을 하는 배우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성향은 아니에요. 시나리오를 덮는 순간 마음이 움직였고, '바로 해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결정했죠"라고 떠올렸다.
지우와의 교감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나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잔잔함을 관객들이 느끼길 바랐다. 정우성 스스로도 "기존의 정우성이 가졌던 보이지 않는 고민들이 있잖아요. 그러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데, 그 고민을 깨는 것이 첫 번째 숙제였던 것 같아요"라고 짚었다.
그동안 '인랑'(2018), '강철비'(2017), '더 킹'(2017), '아수라'(2016) 등 작품 속 강렬한 캐릭터로 주목받았던 정우성은 "일상 안에서의 감정 표현이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롭잖아요. 장르적인 영화의 캐릭터들을 보면, 상대하는 캐릭터에게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는 그런 마음을 끊임없이 갖고 있어야 해요. 하지만 '증인' 속 지우와 같은 친구를 대하는 일상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죠. 그게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도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던 바탕이 된 것 같고요"라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영화 속에서는 순호를 향해 로펌 대표 병우(정원중)가 "좀 더 때가 묻어야 한다"는 말을 던지기도 한다.
정우성은 "영화에서도 그렇고, 교육에 있어서도 그렇고 '착하면 손해 봐'라는 분위기가 형성이 됐잖아요. 하지만 전 그 얘기가 참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도를 걸을 필요 없어, 너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타협도 상관없는 거야'라는 많은 얘기가 내포돼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다보니 영화 안에서 갑자기 나쁜 캐릭터의 매력이 돋보일 때도 있었고요. 사실은 착하면 힘들죠. 심심하고 외로울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것을 조용히 뚝심 있게 지킬 수 있다면, 그 은은한 빛은 정말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아름답고 우아하지 않을까 싶고요"라고 자신만의 생각을 밝혔다.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 이후 26년차 배우가 된 지금, 정우성은 "저는 다행히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때묻을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며 다시 웃어보였다.
"어떻게 보면 저는 제도권 밖에서 혼자 자란 사람이잖아요. 제도 안에 있을 때, 학교 안에서라든지 조직 안에서의 어떤 그런 방법, 혹은 상하 서열 관계 안에서의 행동 양식 같은 것들 안에서 보통 때가 묻는다고 했을 때 저는 그런 것에서는 조금 자유로울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자랑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그러다보니 혼자 밖에서 저를 지켜야했죠. 당당한 나로 인정받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고, 존중받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선 상대를 바라볼 때 저도 어떤 편견의 시선 없이, 상대를 온전한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영화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일찍 체감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시간을 거쳐오며 영화인으로의 행보도 계속해서 이어갈 준비를 더해가고 있다.
정우성은 "예산이 적거나 비상업적인 영화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경험이 저보다도 적은, 새로운 영화인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저의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작은 시도들을 하려고 하죠. 예를 들어 '비트'는 제게 굉장히 많은 것을 줬지만, 그 영화가 갖고 있는 사회적 파장력과 한 배우가 동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크게 인식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 때 '아, 영화를 함부로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던 것이죠"라고 말을 이었다.
"그 때부터 조직폭력배와 관련된 영화는 출연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이런 부분을 희화화하고 미화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스스로 그런 것들을 지양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런 스스로의 작은 결정들에 대한 기준이 제 소신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이 자꾸 쌓이다 보니까 제가 속해 있는 어떤 집단 안에서의 전반적인 분위기에도 작은 영향력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고요."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리지는 않되, 지금껏 해왔던 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차분히 이어간다는 생각이다.
"제게 주어진 책임감, 그리고 이렇게 25년 넘은 경력자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도 뭐든지 적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제게 더 좋은 것들을 끌어올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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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