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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은반 위의 무도] 피겨史 새로 쓸 '김연아의 프리 프로그램'

기사입력 2009.10.29 09:12 / 기사수정 2009.10.29 09:12

조영준 기자



- 김연아의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얼마나 대단한 프로그램인가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피겨 여왕' 김연아(19, 고려대)가 210점의 신기원을 세운 흥분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과 11일 세벽(한국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9-2010 ISU(국제빙상경기연맹)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 1차 시리즈 '에릭 봉파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연아는 2위에 오른 아사다 마오보다 무려 36점의 점수차이로 1위에 올랐다.

이렇게 압도적인 우위를 보일 수 있었던 점 중 하나는 김연아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강인한 인상을 주는 쇼트프로그램인 '007 제임스 본드 메들리'가 롱 프로그램인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보다 보는 이들의 뇌리에 확실하게 남는 것은 사실이다.

'제임스 본드 메들리'는 전작인 '죽음의 무도'처럼 김연아의 능력 치를 압축한 프로그램이다. 김연아는 짧고 간결하며 강렬한 인상을 주는 쇼트프로그램에 강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기술과 표현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프리스케이팅에서도 김연아는 피겨 사에 남을 명연기를 선보여왔다.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인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는 팬들의 청각을 곤두세울 하이라이트는 없다. 매우 간결하면서도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점이 이 곡의 특징이다.

김연아가 연기해 왔던 '미스 사이공'과 '세헤라자데'는 한편의 스토리가 있는 작품이었다. 김연아의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은 그 스토리의 주인공이 돼 연기에 몰입할 것을 김연아에게 주문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의 프리스케이팅인 '조지 거쉰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의 주인공은 김연아 '자신'이었다. 윌슨은 새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프리스케이팅의 특징은 김연아의 성장사가 담겨 있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연아가 연기하는 '조지 거쉰의 바장조'는 화려하고 장중한 곡은 아니다. 특정한 하이라이트 부분 없이 차분하게 흘러가지만 김연아의 기술과 표현력이 매우 돋보일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예전에는 음악 자체를 따라가며 자신의 연기를 펼치는 느낌이 강했지만 이번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자신의 연기와 기술로 곡을 새롭게 해석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음악에 맞춰서 연기하지만 자신의 표현력과 기술이 따라가지 못하면 곡의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는 듣는 이들의 귀를 솔깃하게 자극하는 느낌은 강하지 않지만 매우 깊이 있는 곡조를 지니고 있다.

미스 사이공과 세헤라자데를 거친 김연아는 새롭게 도전한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에서 또 한번 진일보했다. 잔잔하게 흐르는 곡의 여백은 김연아의 빼어난 스케이팅과 안무로 채워졌다.

또한, 주목해야 할 점은 기술 요소의 구성에 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김연아는 빙판을 가로지르며 속도를 높이는데 집중한다. 매우 빠른 속도를 기반으로 한 트리플 러츠 + 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 점프가 끝나고 나면 유연한 스케이팅과 스텝 뒤에 이어지는 트리플 플립이 진행된다.

그리고 이너바우어에 이은 더블 악셀 + 더블 토룹 + 더블 룹이 이어진다. 경기 초반, 중요한 콤비네이션 점프 2가지와 안무와 스텝 시퀀스에 이은 트리플 플립을 뛰는 과정은 매우 어렵다.

이 모든 것을 고르게 구사하려면 뛰어난 스피드와 스케이팅 기술이 필요하다. 또한, 질 높은 콤비네이션 점프 구사 능력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 프로그램 초반에 나타나는 부드러운 손동작에 이은 콤비네이션 점프의 반복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부분이다.

플라잉 콤비네이션 스핀이 이어진 뒤, 김연아는 또다시 우아한 안무에 이은 더블 악셀 + 트리플 토룹을 구사한다. 그리고 경쾌한 스텝 뒤에 이어지는 트리플 살코를 시도한다. 기술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훌륭하게 채우는 안무와 스텝은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의 특징이다.

또한, 다이내믹한 안무로 빙판을 치고 달리는 모습을 펼친 김연아는 매우 자연스럽게 트리플 러츠를 시도한다.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에서 쉽게 점프에 들어가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 인상적인 안무와 스텝, 여기에 이너바우어까지 가미된 김연아만의 점프 도약은 대량의 가산점을 얻는 데 성공했다.



미국 NBC방송의 피겨 해설가이자 피겨의 전설인 스캇 해밀턴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상적인 안무와 뛰어난 공중자세, 그리고 김연아만이 가진 높은 점프 퀄리티는 단연 압도적"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프로그램 초반에 진행되는 트리플 러츠 + 트리플 토룹과 더블 악셀 + 더블 토룹 + 더블 룹의 콤비네이션 구사, 그리고 안무와 스텝이 가미된 트리플 플립 시도로 이루어진 구성은 여자 싱글 프로그램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다. 또한, 경기 후반에 진행되는 트리플 살코와 트리플 러츠의 시도도 모두 스텝이 진행된 이후에 도약하고 있다.

피겨 역사상 이렇게 어려운 난이도를 가진 프로그램은 없었다. 프로그램 초반에 몰아치는 '폭풍 점프'와 프로그램 요소의 매듭을 잇는 안무와 스텝. 여기에 좋은 자세와 체력을 요구하는 각종 스핀은 어지간한 남자 선수들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운 구성이다.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는 이제 겨우 단 한 번 대중들에게 공개됐다. 그러나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자리에서 이 프로그램은 133.95를 기록해 여자 싱글 롱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기술의 구성과 안무 소화력, 그리고 풋 워크 등을 봤을 때, 이 프로그램은 매우 획기적인 프로그램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연아는 트리플 플립을 뛰지 않았지만 나머지 요소들을 충실히 해내 또 하나의 신기원을 세웠다.

그러나 주목할만한 점은 이 프로그램의 완성도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점프 도약 점에 이루어지는 스텝과 안무의 질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발전돼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김연아가 이 곡의 분위기를 좀 더 깊숙이 인지하면 PCS(프로그램 구성요소)의 점수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는 끝을 알 수 없는 스케이터인 김연아의 결정판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 [조영준의 은반 위의 무도] 아사다 마오의 코치인 타라소바의 치명적인 실수

[사진 = 김연아 (C) 엑스포츠뉴스 남궁경상 기자, IB스포츠 제공]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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