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방구석 1열' 빈센트 반 고흐와 모차르트는 서민의 삶을 그린 천재 예술가였다.
16일 방송된 JTBC ‘방구석1열’은 영화 ‘러빙 빈센트’와‘아마데우스’를 다뤘다. 지휘자 겸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는 서희태와 미술 분야 팟캐스트에서 3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조원재 작가, 인문학 전문가 진중권 교수가 출연했다.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인 '러빙 빈센트'는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다. 세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 영화로 10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수작업으로 완성됐다. 다양한 직업군의 125명의 화가가 고흐 특유의 필치를 훈련 받아 6만 5천장을 그렸다. 로토스코프 기법을 이용해 촬영했다. 안시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한국에서도 사랑을 받았다. 개봉 하루만에 1만 명을 모았고 40만 명의 관객을 모아 흥행에 성공했다.
조원재 작가는 "고흐를 싫어할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작가와 작품이 강렬한 시너지를 내는 화가다. 보통 미술 작품을 만나면 미술 작품을 기억하지 작가를 기억하진 않는다. 이 사람의 삶 자체가 굉장히 드라마틱해 동정과 연민을 부른다. 28살에 미술을 시작했다. 그림 판매상, 교사, 선교사 등 이것저것 하다가 잘 안 돼 화가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장성규 아나운서는 "나도 28살에 아나운서에 도전했다"고 언급했다. 변영주 감독은 "지금쯤 걸작을 내놓아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윤종신은 "그래서 '아는 형님'이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서희태 지휘자는 "진정한 예술가로 사는 건 저렇게 힘든 일이구나 싶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는 집단은 서로 섞이기 힘들다.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니까 예술가들이 사이가 좋기 힘들다. 이 영화에서도 고흐가 스타일일 추구하다보니 외로움을 느꼈을 거다. 공감이 많이 됐는데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무섭다"며 웃었다.
그런가 하면 조원재 작가는 고흐의 '자화상'에 대해 "모델을 고용할 돈이 없어 자화상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또 다른 재미있는 사실은 자기애가 없다면 자화상을 그릴 수 없다”고 말했다.
빈센트 반 고흐를 둘러싼 '설'도 언급됐다. 고흐의 작품에 노란색이 많은 이유로 술의 부작용이라는 말이 있다. 조 작가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논란이 되는 게 압생트다. 와인의 소비량을 능가한 마성의 매력을 가진 술이다. 신빙성 있는 주장인 것 같다. 알코올 중독 이후 노란색 작품이 많다. 노란색에 열정을 불어넣고 싶어했고 적극적으로 이용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진중권 교수는 "마약으로 취급해 금지령도 있었다. 화가들은 더 찾아서 마셨다. 난 부작용 때문에 노랗게 보이는게 아니라 상징주의인 것 같다. 영원한 생명, 태양을 상징하려고 한 것 같다"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변영주 작가도 "황시증이 오려면 많은 양을 먹어야 한다"고 곁들였다.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도 있다. 조 작가는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라는 평전이 있다. 편지도 많이 쓰고 메모광이었는데 왜 유서를 남기지 않았을까, 전시회 준비를 열심히 하던 중 갑자기 자살을 할 수 있나, 선교사 때 자살을 부정적으로 본 고흐가 자살을 선택했을까 라는 점에서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진 교수는 "난 자살이 맞는 것 같다. 그때 쐈던 총이 발견되지 않은 게문제인데 고흐가 작업한 지역에서 낡은 총이 발견됐다. 관통력이 약한 총이 있다. 여관에서 좀도둑을 쫓아내려고 한 총이다. 이틀 동안 앓다가 죽은 이유는 관통력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조 작가는 "테오를 위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나 한다. 태오가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병도 있고 아이도 아팠다. 부인도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진중권은 "좌절하고 절망적일 거다. 이때까지 태오 덕에 그림을 그렸는데 테오의 경제력이 무너진 거다. 앞날이 캄캄하니까"라고 했다.
'아마데우스'는 왕실의 궁정 음악가 살리에리와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대조적 삶을 다룬 영화다. 1985년 아카데미에서 8개의 상을 휩쓸었고 밀로스 포만 감독을 세계적 반열에 오르게 했다.
서희태 지휘자는 모차르트가 정신적으로 힘들 때 만든 '밤의 여왕 아리아'에 대해 "그 당시로는 센세이셔널 했던 음악이다"라고 감탄했다.
또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나이차가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6살 차이다. 모차르트 하면 음악의 천재라는 말이 떠오른다. 3살 때 혼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5살 때 작곡을 시작했다. 12살 때 오페라를 작곡했다. 626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모차르트의 아이큐는 230에서 250 정도가 됐을 거라고 한다.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이탈리아 출신인데 오스트리아 빈의 궁정음악가였다. 이탈리아 사람이 우리나라 장관을 할 수 없지 않나. 살리에리는 엄청 유명한 사람이어서 가능한 거다. 40여곡의 오페라가 있다"고 두 주인공을 이야기했다.
그는 "모차르트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하이든 시대에 살면서 베토벤 시대를 꿈꾼 작곡가로 말할 수 있다. 하이든은 귀족을 위한 음악가였다. 에스테르하지 후작 가문에서 활동하면서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작곡했다. 귀족이 시키면 무조건 한다. 살리에리도 그렇다. 황제가 좋다고 하면 된다. 베토벤은 최초의 프리랜서 음악가다. 음악으로 경제활동을 한 사람이다. 모차르트는 하이든과 베토벤의 정중앙에 있고 이 시대를 연결해준다. 계몽주의 음악가다. 오페라로 대중에게 다가간다. 그 때 생겨난 계몽주의와 시민혁명의 정신으로 연결해주는 작곡가다"라고 설명했다.
모차르트와 빈센트 반 고흐의 공통점은 서민의 삶을 그려낸 예술가라는 점이다. 서희태 지휘자는 "빈센트는 서민의 삶을 이해했고 일상과 노동을 표현했다. 모차르트는 귀족만 즐기던 오페라를 서민들도 즐길 수 있게 했다.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가 얼마나 통쾌하냐. 모차르트는 대중을 위해 음악을 썼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둘다 100년을 사이에 두고 같은 시대상을 공유한다. 예술 시장이 형성돼 그럴 수 있었다. 왕과 귀족과 교회를 위해 예술을 했는데 산업 자본가가 생기면서 예술 시장이 형성됐고 자율권이 생긴 거다. 음악에서는 모차르트, 미술은 반고흐다"라며 두 사람의 연결 지점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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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