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4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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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에이스들...

기사입력 2005.08.09 21:45 / 기사수정 2005.08.09 21:45

서민석 기자
- '명성'은 사라지고 '상처' 치유에 힘겨워하는 투수들.

한 때 '마음은 유승준인데 몸은 김정구다' 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한창일 때의 화려한 명성은 자신의 자존심이요 자부심이었지만, 점점 세월이 지나면서 그러한 명성을 이어나가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도 이러한 화려한 명성을 뒤로하고 점점 잊혀져 가는 에이스들이 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사연으로 점점 잊혀져가는 것일까? 프로 세계의 그림자에 있는 선수들을 조명해보기로 하자.


2003 한국시리즈 MVP의 위용은 어디로? - 정민태


'스머프'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현대 유니콘스의 에이스 정민태. 그도 지난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혼자서 3승을 올리며  MVP를 거머쥔 명성을 뒤로하고 사라져가고 있다.

1991년 병역비리로 법정 구속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1992년 현대의 전신인 태평양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정민태는 그해 고작 7경기에 나와 1승(3패)에 그치는 부진으로 '국가대표 에이스'에 걸맞는 활약을 보이질 못했다. 부상과 부진을 거듭하던 그는 1995년 188이닝을 던져 8승(14패)를 올리며 재기의 날개짓을 펼친 그는 1996년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의 에이스로 거듭나며 15승 9패로 2.44의 방어율로 일약 '신생팀 준우승 돌풍'을 잃으키는데 앞장섰다. 이후 97년 13승 13패 - 98년 17승 9패 - 99년 20승 7패 3세이브로 팀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고 꿈에도 그리던 해외진출에 성공, 현해탄을 건너 일본 최고의 명문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 황금기를 누리는 듯 했다.

하지만 문화적인 차별과 부상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국내로 복귀한 2003년 17승 2패로 팀에게 두 번째 우승을 선사하며 국내무대에 적응했던 정민태.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지난 시즌 팀은 삼성과 9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연패를 달성했으나 정작 정민태 본인은 1선발은 커녕 7승 14패 방어율 5.00이라는 최악의 부진에 시달렸고 올 시즌 고작 11.2이닝을 던져 승없이 1패에 3.86에 그치고 있다.

지난 시즌 부진 탈출을 위해 올 시즌 금연까지하며 명예회복에 칼을 갈았던 정민태. 주변에선 '은퇴'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현대 입장에선 5억 5천 5백만원이라는 연봉을 감안할 때 그와의 '위험한 동거'가 오래가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때 국내 최고 투수였던 정민태. 그의 부진에 팬들의 아쉬움만 커져가고있다. 


최고 클로저에서 선발까지 - 진필중



1995년 신인시절 한국시리즈 6차전 완투승으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 견인,  1999~2002년 4년 간 총 132세이브 달성.

선발과 마무리에서 신인시절부터 두산의 르네상스를 이끈 진필중의 성적이다. 직구와 슬라이더로 다소 단조로웠던 패턴(물론 최근들어 포크볼의 일종인 스플리터를 장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필중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과감한 몸쪽 승부였다. 몸쪽으로 빠른볼을 붙이게 되면 상대적으로 타자는 움찔하며, 사구에 대한 두려움으로 투수와의 기싸움에서 밀리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점점 구위가 저하되면서 이러한 그의 과감한 몸쪽 승부는 타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몸쪽이 난타를 당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바깥쪽 승부가 잦아졌고 설상가상으로 코스도 단조로워지면서 점점 '그저그런 투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2003년엔 기아의 '김창희+손혁+현금 8억' 과 맞트레이드되어 기아로 이적한 진필중은 마무리로써 재기를 노렸지만, 거듭된 구원실패와 구위 저하로 자신감 결여로 4승 4패 19세이브 방어율 3.08이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명예회복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에겐 FA란 마지만 기회가 있었다. FA선언 후 기아와 결별하고 잠실을 연고로 하는 또다른 구단인 LG에 입성하게 된다. "잠실과 같은 넓은 구장에선 잘할 수 있다" 는 그의 호언과는 다르게 지난 시즌 4패 15세이브로 방어율 5.23으로 부진했고 올 시즌도 선발과 중간을 들락날락거린 끝에 지난 7월 9일 대 SK전 선발 등판에서 1이닝 6실점의 최악의 투구끝에 이순철 감독에게 불호령을 들은 직후 2군행되었다. 3승 7패 방어율 5.82의 성적을 기록중이다.

혹자는 4년 28억의 FA계약이후 헝그리 정신이 결여되어 그의 부진이 계속된다는 말도 있고, 구위저하를 부진의 이유로 꼽는 전문가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4년에 28억의 대박을 터뜨리고 잠실로 팀을 옮기면 잘할 것이라는 그의 말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액수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차기 FA를 노리는 선수들이나 팬들에게 좋지않은 선례를 보여주고 있음에 틀림 없다는 것이다.


10년 연속 두 자리 승수의 백전노장 투수 - 이강철


프로 17년차의 백전노장 이강철. 

물론 올해 그의 40살에 가까워 오는(1966년생)나이와 더불어 최하위로 처진  팀 사정상 앞으로 그의 모습을 마운드에서 보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89년 데뷔와 동시에 15승(8패) 5세이브를 시작으로 1998년까지 해태에서만 쭈욱 10년 동안 '두 자리 승수'를 거두며, 한국의 대표 선발투수로 자리잡았던 이강철. 사이드암이라는 투구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자로잰듯한 제구력과 커브 - 싱커등 다양한 변화구로 상대타자들을 무력화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1998년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고 당시로써는 대박인 3년에 7억 5천만원의 거금을 받고 삼성으로 이적, '우승의 청부사'로 나섰다. 당시 삼성이 맹목적으로 코치진과 노장선수들을 단지 '해태' 라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영입하던 시대에 그도 그 타이밍에 맞춰 이적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빛고을의 저주' 였을까? 이듬해인 1999년 십자인대 수술로 한 시즌을 쉬면서 11년 연속 두자리 승수 달성에 실패한 그는 2000년 1승 4패 방어율 7.30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내며,  전문가들 입에서 '끝났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고향의 힘' 이었을까? 점차 꺼져가던 그의 선수생명도 2001시즌 후반기 해태를 새로이 인수한 기아와 김성한 감독의 러브콜로 다시 광주로 돌아와 점점 명성을 되찾기 시작한 이강철은 2002시즌  팀의 마무리를 맡아 5승 5패 17세이브 방어율 3.17의 준수한 성적으로 부활했고 2003년 6승 4패 9세이브 방어율 1.98 - 2004년 6승 2패 7세이브 방어율 2.98로 셋업맨으로써 알토란같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2004시즌 이후 아시아선수권대회(아테네 올림픽 예선)드림팀 맴버로 선정되는 등 그는 '화려한 말년'을 보내는 듯 했다.

하지만, 3년 동안 근 260이닝을 투구한 후유증이었을까? 올 시즌은 고작 19.2 이닝을 던져 1패에 방어율 3.20만을 기록중이다. 지난 5월 13일 LG전 이후 첫 등판이었던 6월 25일 롯데전에 구원등판하자마자 이대호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하는등 예전같지 않은 밋밋한 구위로 더이상 중간에서 힘을 싣지 못하고 있는 이강철은 6월 29일 SK전 이후엔 이제 1군에서 종적을 찾을 수도 없다.기아의 몰락과 함께 그의 쓸쓸한 말년은 기아팬 뿐만아니라 야구팬들에게 아쉬움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특급  마무리에서 중간계투로 전락 - 임창용


아마 임창용 같이 올 시즌 '나락'으로 추락한 선수도 드물 듯하다.

해태 - 삼성을 거치며 1997~2000년까지 4년 연속 25세이브 이상 총 128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최고 마무리로 군림했고, 삼성으로 이적한 이듬해인 2001년부턴 3년간 선발로 등판해 3년동안 34승(15패)을 올린 명실상부한 '한국대표 잠수함 투수'였다.

최근 성적인 지난 시즌 2승 4패 36세이브 2.01의 방어율을 기록했던 그는 현재 삼성 투수 중 1군에 등판한 17명의 투 수중 6.56의 방어율로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81이닝을 던져 5승 7패로 표면적인 성적 역시 미덥지 못하다.

그의 입지는 지난 시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투수에 있어 이례적으로 당시 삼성 김응룡에게 전권을 위임받았던 선동렬 투수코치(현 삼성감독)의 '이름값' 보단 '실력' 위주의 기용에 의해 한국시리즈에선 권오준 - 권혁에게 밀리며, 불펜으로 전락했다. 삼성팬들 입장에선 태업에 가까운 실망스런 투구로 야구팬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후 선동렬 감독이 정식감독으로 부임한 올해 그는 시즌 초만해도 배영수 - 바르가스 - 해크먼에 이어 '제 4선발'을 낙점받았었다. 하지만 항상 일류로 살아왔던 그에겐 맞지 않았던 옷이었을까? 올 시즌 그의 투구는 한마디로 '부진' 그 자체다.

몸 속에 돌아다니는 뼛조각 때문에 투구에 많은 지장이 있다곤 하지만 그의 바람직하지 않은 사생활과 맞물려 이젠 '갈 때가 됐다' 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최연소 '100승 - 150세이브'에 2승을 남겨두고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임창용이 이런 내 - 외적인 악재를 딛고 실력으로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인지 그를 지켜보는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대로 떠날 것인가? 아니면 화려하게 재기할 것인가?

나이-부상- 혹은 제 3의 요인에 의해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네 명의 대투수들. 한 때 국내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그들 입장에선 지금의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회를 살리기 위해선 오직 '실력'과 '정신력'이 수반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과연 그들은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서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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