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2-03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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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마이웨이' 윤복희, 다사다난 무대 위 67년 인생

기사입력 2018.09.13 22:47 / 기사수정 2018.09.13 22:47

유은영 기자

[엑스포츠뉴스 유은영 기자] 가수 윤복희가 다사다난 했던 자신의 지난 삶을 밝혔다.

13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윤복희가 출연했다. 이날 윤복희는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뮤지컬로 데뷔했다고 밝혔다. 그의 데뷔 무대는 아버지가 만든 뮤지컬이었다. 아버지는 대중 예술가로 활약했던 윤부길.

윤복희는 "아버지는 성악 하시던 분이다. 어릴 때는 몰랐다. 돌아가시고 나서도 몰랐다. 나중에 제가 미국 갔다가 한국에 오고 난 다음에 아버지가 우리나라에 뮤지컬을 제일 먼저 만드셨다는 걸 알았다"고 밝혔다. 이어 윤복희는 "그게 신문에도 지금 있더라. 아버지가 공연 홍보로 낸 것이 있더라"고 덧붙였다.

윤복희는 일곱 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고도 밝혔다. 윤복희는 "단순했다. 어릴 때부터 연극을 하다 보니까 내가 죽으면 엄마에게 갈 거라고 생각을 했다"며 "아버지는 병원에 있고 오빠는 시골에 있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배고플 수도 있고 추울 수도 있었겠다. 죽으면 엄마에게 간다고 생각한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윤항기는 "아버지도 자기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고 자책을 했다. 자책감으로 몇 년 동안 너무 힘들어하시다가 결국은 아버지도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한 3년, 4년 뒤에 쓸쓸하게 돌아가셨다"고 설명했다.

윤복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미8군 공연단에 들어갔다. 그때가 9살이었다"면서 "미군이 떠날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고 했다. 이후 윤복희는 미국으로 건너가 '코리아 키튼즈'로 활동했다. 코리아 키튼즈 활동 당시, 윤복희는 영어 이름이 아닌 한국 이름을 썼다.

이와 관련 윤복희는 "미국에서 활동할 때도 한국 이름을 썼다. 원래 이름은 복기다. 저희가 모두 기자 돌림"이라면서 "어릴 때는 극장 앞에 포스터보다 간판을 그렸다. 간판 그리는 아저씨가 복희인 줄 알고 복희라고 했다. 그 이후로 복희라는 이름을 썼다. 미국에서는 성을 따서 '윤아'라는 이름을 썼다"고 말했다.



윤복희는 노래에 대한 겸손한 생각도 밝혔다. 윤복희는 "가창이라 생각 안 한다. 한 가지 제가 잘하는 건 있다. 스토리를 말한다는 것. 이건 일생을 한 거다"라며 "뮤지컬 배우였기 때문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게 노래야 대사야' 할 정도로 거의 말같이 한다.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거는 잘한다"고 말했다.

윤복희는 1968년 유주용과 결혼했지만 이후 이혼했다. 윤복희는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그 사람과 연애를 했다.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면 이 사람하고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또 그렇게 프러포즈를 받아서 결혼을 했다"며 "우리는 나쁜 상황에서 이혼한 게 아니다. 집안일도 남편이 다했다. 그분은 지금 사시는 분과 굉장히 행복하다. 그러니까 참 잘 된 것"이라고 웃었다.

윤복희는 이혼 후 한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했는데, 1979년 서울 국제가요제에서 인생 곡을 만났다. 그 곡은 바로 '여러분'이다. 윤복희는 당시 '여러분'으로 영예의 대상을 안았다. 윤복희는 이후 활발히 활동하며 지금까지 무대에 오르고 있다.

enter@xportsnews.com / 사진=TV조선 방송화면

유은영 기자 y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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