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7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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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과 안정환, 그리고 히딩크...

기사입력 2005.07.28 23:32 / 기사수정 2005.07.28 23:32

손병하 기자
지난 2002년 월드컵,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과도 같은 성과를 이룩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박지성과 안정환, 그리고 거스 히딩크.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기억되고 있는 이 세 사람이, 각기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만만치 않은 도전을 시작했다. 보장되어 있는 자신의 위치와,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마다한 채, 이 세 명의 ‘영웅’들은 더 거칠고 험난한 곳을 선택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에인트호벤의 주전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최고의 무대에 도전하고자,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던 영국해협을 건넌 박지성이나, 자신의 마지막 ‘꿈’인 유럽으로의 재진출을 위해 무적선수(소속이 없는 선수)의 서글픔도 감내했던 안정환, 그리고 세계 정상급의 클럽들과 국가대표 감독 제의를 마다한 채, 축구에 낯선 대륙인 오세아니아를 택한 히딩크까지 모두가 참 닮았다.

박지성, 아시아를 넘어 세계축구의 별이 되리라

▲ 박지성 선수
ⓒ2005 맨체스터 Utd
지난 2002년. 21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에서 네덜란드로 건너가 난생처음으로 유럽 축구에 도전하며, 각고의 노력과 남다른 집념으로 결국 성공이란 성적표를 손에 쥐었던 박지성이 이번엔 근대 축구의 근원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프로리그를 보유하고 있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도전하고 있다. 그것도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명문 구단이자 인기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말이다.

팀에 합류 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박지성은 벌써 반 니스텔루이,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와 같은 세계 정상급 공격수와 발을 맞추며 경기에 나서고 있고, 맨체스터의 ‘상징’이라는 라이언 긱스나, 폴 스콜스, 로이 킨 등, 쟁쟁한 스타들과 전면전을 선포하며 당당한 주전이 되기 위한 도전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26일 열렸던 맨체스터의 ‘아시아 투어’ 2차전에서는 중국의 베이징 현대를 상대로 자신의 데뷔 골이자, 팀의 세 번째 골을 헤딩슛으로 연결하며 영국 언론은 물론이고 전 세계 축구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었다. 새로운 팀과 동료들에 대한 적응력 등에 대한 우려가 시작되기도 전에, 잘하고 있음을 골로 확인시켜 준 것이었다.

거짓말처럼 꾸준한 경기력과 성실함,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 까다롭기로는 세계 제일인 노장 퍼거슨 감독도 벌써 마음을 빼앗겨버렸고, 맨체스터의 수많은 팬들은 아직 여드름 기가 채 가시지 않은 한국의 작은 청년의 몸놀림 하나하나에 조금씩 매료되어가고 있다.

지난 두 시즌 동안,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받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박지성이란 ‘신형 엔진’을 장착하고 지난날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다가오는 05/06 맨체스터와 프리미어리그의 중심에 서있을 'No.13 박지성'을 기대해본다.

3년 만에 되찾은 안정환의 꿈

▲ 안정환 선수
ⓒ2005 FC 메츠
2005년 6월 30일로 전 소속팀이었던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의 계약 기간이 끝났던 안정환은, 다른 J-리그 구단들의 높은 연봉을 미끼로 한 러브콜을 외면한 채, 마지막 도전이 될지도 모를 유럽리그로의 진출을 꿈꾸어 왔다.

지난 2000년 이탈리아 세리아A 팀인 페루자로 입단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꿈꾸었던 안정환이지만, 실력만으로 평가 받기엔 모든 환경이 좋지 않았던 이탈리아에서 적지않은 서글픔을 감내해야 했다.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던 안정환은 이후,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탈리아를 떠나야했고 그로부터 3년간 긴 부진의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지난 2년간 부상과 슬럼프로 기나긴 부진의 터널을 헤매고 있을 동안 한국 최고의 판타지 스타였던 안정환의 존재는 조금씩 희미해져 갔고, 퇴색해가는 듯싶었다. 안정환의 부진은 곧 대표팀의 전체적인 부진으로 이어졌고, 팀을 위기에서 구출할 에이스의 등장이 늦어지면서 대표팀도 안정환도 초조해져만 갔다.

특히 지난해 11월 있었던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전인 몰디브와의 경기에서 발목 골절상을 당한 뒤, 안정환은 데뷔 후 가장 심한 마음고생을 해야만 했다. 팀을 선두에서 이끌어야 할 자신이 부상을 당하면서, 흔들리고 있던 위기의 대표팀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기 때문.

이후 철지부심한 각오로 다시 그라운드에 선 안정환은, J-리그에서 유럽으로의 복귀를 꿈꾸며 무적선수가 되는 서글픔마저도 마다하지 않은 채,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비로소 지난 7월 19일 르 샹피오나(프랑스 프로축구리그) 1부 리그 팀인 FC 메츠에 입단하게 되었다.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꾸었던 꿈이 결국 실현되었던 것이다.

아직 안정환의 드리블과 슈팅 능력, 그리고 경기의 흐름을 돌리는 킬러로서의 능력은 국내 최고임이 틀림없다. 오직 유럽으로의 도전을 위해 묵묵히 감내했던 지난 3년이란 시간이 헛되지 않게 다시 한번 활짝 피어오를 안정환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히딩크, 그의 끝없는 도전

▲ 거스 히딩크 감독
ⓒ2005 PSV 에인트호벤
우리에게 한국인 이상으로 친근한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는 거스 히딩크(P.S.V 에인트호벤)감독이 지난 22일 호주 국가대표팀 감독자리에 올랐다. 이로써 히딩크 감독은 98 프랑스 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에 이어 2006 독일 월드컵까지 감독으로서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여러 가지 까다로운 계약 조건이나 호주의 월드컵 본선 진출과 관련한 조건부 계약이어서 이런저런 구설수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히딩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1년 1월,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사령탑에 올랐던 것도 그의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물론 축구 감독으로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대회가 월드컵이고 그런 월드컵에서 개최국의 감독으로 참가할 수 있는 등, 당시 대표팀이 많은 매력을 갖고 있었기는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세계 축구의 변방으로 분류되었던 한국을 맡기에는 선 듯 결심이 서지 않았을 것.

하지만, 히딩크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았고, 대표팀의 체질개선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 결과 대표팀은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과도 같은 신화를 일구었고, 히딩크는 또 하나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고야 말았다.

그 이후에도 세계 유수의 명문 클럽들과 국가대표 감독직을 거절하고 당시 부진을 거듭하고 있었던 에인트호벤의 감독자리에 올랐고, 슈퍼스타 하나 없었던 에인트호벤에서 특유의 지도력을 발휘하면서 에인트호벤을 에레디비지(네덜란드 프로리그)를 넘어 세계 클럽의 정상급으로 키워 놓았다.

히딩크 감독은 어쩌면 자신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힘든 도전이 될지도 모를 또 하나의 모험을 택했다. 지난 1974년 서독 월드컵 이후, 단 한 차례도 월드컵에 오른 적이 없었던 호주의 대표팀을 맡아 월드컵 본선 진출은 물론이고, 본선에서의 돌풍마저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 호주 대표팀이 얻게 될 결과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만만치 않은 도전과제를 찾아 그 대상에게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그의 도전정신과 프로정신에 무한한 존경과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박지성과 안정환, 그리고 히딩크 감독까지. 한 팀에서 위대한 성과를 만들어 냈던 세 사람이 이제 각자의 새로운 도전에 시동을 걸었다. 어쩌면 성공과 실패라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그러한 결과들은 우리 팬들이 바라보는 시선에서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그러한 도전들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손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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