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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를 뒤덮은 '높새바람’ 강원FC

기사입력 2009.03.14 18:57 / 기사수정 2009.03.14 18:57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상암, 전성호 기자] 17일 오후 5시 서울월드컵경기장. 날카롭게 봄을 시샘하는 찬 바람이 부는 틈 사이로 익숙하지 않은 노랫소리가 두터운 무리 사이에서 울려 퍼진다. 역시나 낯선 색깔의 유니폼을 입은 이들은 마치 봄나들이 나온 아이들처럼 들떠있지만 동시에 전장에 나가는 군인처럼 패기를 지녔다.

상암에 모인 강원FC의 서포터즈 '나르샤'는 애초에 예상했던 '8천 원정응원단'에는 크게 못 미치는 규모였다. 그러나 강원과 서울 사이의 지리적 여건을 생각한다면 결코 적지 않는 숫자였다.

'나르샤'는 응원깃발과 휴지폭탄, 막대풍선 등 다양한 응원도구를 동원하며 열광적인 응원을 보여줬다. K-리그에서 수원 삼성 서포터즈 '그랑블루'와 함께 가장 많은 인원을 자랑하는 FC서울 서포터즈 '수호신'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Go for the win, Gangwon FC'란 구호가 새겨진 대형 통천까지 준비한 그들의 모습에서 팀을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를 앞두고 열린 연예인축구단 '미라클'과의 자매결연 시간에 개그맨 김용만이 '서울이 5:0으로 이겼으면 좋겠다.'라고 밝히자 강원 측에선 자존심이 상한 듯 큰 야유를 쏟아내기도 했다.

마치 오랜 짝사랑 끝에 자신을 허락해 준 여인에게 모든 열정을 쏟아내는 청년과도 같은 모습. 너무 늦었지만, 이렇게나마 그들에게 푸른 그라운드를 앞에 두고 뜨거운 마음을 펼칠 수 있는 시공간이 주어진 것이 다행이고, 또 감사하다. 이처럼 봄과 함께 태백산맥을 넘어온 높새바람은 전날 서울에 내렸던 단비를 모조리 말려버릴 기세였다.

이변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팬들의 뜨거운 열정이 강원의 젊은 선수들은 불타오르게 한 것일까. 일방적인 경기가 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강원은 AFC챔피언스리그 1차전의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듯한 서울을 몰아 붙였다. 결국, 전반 10분, 서울의 수비진과 미드필드가 벌어진 틈을 타 강원이 날카로운 패스에 이은 크로스를 올렸고 김진일이 이를 헤딩 선제골로 성공시켰다.

일순간 강원의 응원석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경험은 적지만 패기가 가득한 강원의 젊은 선수들은 기세가 오른 듯 활발한 움직임으로 서울의 빈틈을 공략했다.

강원에서 단연 돋보이던 선수는 이을용과 유현이었다. 지난 시즌 서울의 주장이었던 '강원 중원의 사령관' 이을용은 적재적소에 볼을 공급해주고 상대 공격을 미리 차단하는 등 효율적인 경기 운영을 보여주었다. 수문장 유현은 지난 제주 유나이티드 전에 이어 눈부신 선방을 이어가며 강원의 골문을 지켰다.



반면 서울은 선제골을 내준 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앞선 두 경기에서 보여주던 날카로운 공격은 보이지 않았고, 선수들의 호흡은 맞지 않았다. 중원에서 기성용을 대신해 공격을 풀어줘야 할 고명진은 기대만큼 활약해 주지 못했다. 전반 33분, 지난해 신인왕 이승렬이 만회골을 터뜨렸지만 7분 뒤 좋은 수비를 보여주던 케빈이 퇴장을 당하면서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이후 강원은 짧은 패스를 앞세워 서울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강원은 전반 40분 페널티킥을 얻었지만 마사히로가 실축하며 대어를 잡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놓쳤다. 이어 후반 7분에는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 득점왕 김영후가 이을용의 감각적인 오버헤드킥 패스를 받아 일대일 찬스를 잡았지만 아깝게 골대를 맞추며 두 번째 기회마저 날려버리고 말았다. 김영후는 후반 35분에도 일대일 찬스에서 골문을 살짝 빗나가는 슈팅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서울은 기성용과 이청용을 교체 투입해 경기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했으나 수적 열세 때문인지 여의치 않았다. 이렇게 경기가 끝나는가 싶던 후반 42분, 교체되어 들어온 '슈퍼 서브' 윤준하가 또 다시 사건을 터뜨렸다. 

마사히로와 패스를 주고 받으며 서울 수비진을 뚫어낸 윤준하가 2경기 연속 득점이자 결승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변이 완성되는, 강원도의 높새바람이 K-리그를 뒤덮는 돌풍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나르샤'는 후반 추가시간이 다 흘러갈 때쯤 '이겼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승리를 자축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강원 팬들은 서로 얼싸 안고 어쩔 줄 몰랐다. 강원의 선수들 역시 마치 K-리그 우승을 차지한 듯 서포터를 향해 달려가 기쁨을 나눴다.

이로써 강원은 강력한 우승후보를 맞아 결코 밀리지 않는, 오히려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며 기분 좋은 2연승을 거두었다. 강원은 예사롭지 않은 축구 열기만큼이나 경기력 면에서도 모든 축구팬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며 그들이 가진 저력을 보여주었다.

최근 강원을 보면서 몇 년전의 J리그 우라와 레즈를 봤다면 비약일까. 당시 우라와 레즈는 J리그에서도 1부와 2부를 들락날락 거리던 최약팀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은 단연 열도 최고였다. 결국, 많은 이들의 열정과 염원이 오랜 시간 축적되면서 우라와는 J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더 나아가 아시아를 정복하는 큰 꿈을 달성하기까지 했다. 

강원 역시 남다른 축구열기와 축구를 향한 열정을 통해 K-리그에 새바람을 몰고 오는 중이다. '나르샤'와 강원의 축구팬들은 꿈꿔본다. 강원FC가 높새바람처럼 승리에 대한 뜨겁고 거친 열망으로 눈 앞의 모든 상대를 말라 버리게 할 최강의 클럽이 되는 그 어딘가 어느 순간의 정점. 미약한 시작이었지만 지금은 감히, 하지만 당연히 꿈꿀 수 있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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