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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 삼국지] '처음'을 기다리는 안양 한라의 뜨거운 빙판

기사입력 2009.01.17 23:29 / 기사수정 2009.01.17 23:29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17일 오후 안양 빙상장에서 열린 안양 한라와 세이부 프린스 래빗츠의 사실상 챔피언 결정전 전초전이라 여겨진 정규리그 5차전은 안양 한라의 4대0 호쾌한 셧아웃 승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승리로 안양 한라는 시즌 1위 자리를 차지했고, 18일 열리는 세이부와의 정규 시즌 마지막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면, 남은 하이원전과 관계없이 안양 한라는 한국팀으로서는 처음으로 정규 시즌을 1위로 마감하게 됩니다.

이날 안양 빙상장에는 앉아서 관람하는 관중의 수만큼 서서 관람하는 관중도 많았습니다. 물론 한라대의 학생들과 만도의 신입사원으로 꾸려진 응원단도 한 몫 했지만, 최근 꾸준히 늘고 있는 가족단위의 팬이 유난히 눈에 띄었죠.

경기 초반은 양 팀 모두 속도감 넘치는 공격을 주로 선보였습니다. 안양 한라에도 세이부에도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인지라 빙판에서 달리고 있는 선수들의 뒷모습에서조차 잔뜩 들어간 기합이 느껴졌습니다.

파고들고 달려들었지만 골은 생각보다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슈팅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죠. 키쿠치 나오야와 손호성. 골문을 지키는 두 골리의 선방도 골 침묵에 한 몫 했습니다.

첫 피리어드의 20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양 팀은 물고 물리는 공방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팽팽하고 불안한 영의 균형이 깨진 것은 2피리어드가 시작하고도 4분 37초나 지난 후. 균형을 깬 것은 '스피드건' 김원중이었습니다. 부상에서 복귀한 패스트의 패스를 받은 김원중이 키쿠치 골리를 뚫고 첫 골을 성공시켰고 골의 주인공은 두 팔을 높게 들고 팀 승리를 예감했습니다.

한쪽으로 균형이 기울어지면 그 숨막히던 긴장감은 사라지지만 그만큼의 박진감이 살아납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조금 더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다시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지는 때론 맞물려 또 다른 스파크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세이부의 악동 조엘 퍼픽은 여전히 그 '끼'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퍽을 잡느라 엎어져 있는 손호성 골리의 헬멧을 스틱으로 치고 지나가 윤경원과 한판 다툼을 벌이기도 했고, 역시 골문 앞에서 가진 몸싸움으로 브락 라던스키와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스파크 속에서 안양 한라는 한 발짝 더 달아나며 서서히 승리의 깃발을 손에 쥐기 시작했습니다.

2피리어드 종료 35초 전 김근호의 드리블에 이은 절묘한 패스는 '코리안 로켓' 송동환의 스틱을 피해갈 수 없었고, 전광판의 점수는 2대 0으로 벌어졌습니다.

환호로 가득 찬 안양 빙상장 한구석 세이부의 유니폼을 입은 두 서포터즈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일본에서 날아온 그 두 사람의 어두운 얼굴을 보자마자 문득 관중석 한편에 걸려있던 걸개가 떠올랐습니다.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세이부는 더 이상 세이부 프린스 래빗츠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경제 악화를 이유로 들어 모 회사는 지원 중단을 발표했고, 인수할 다른 기업이 나타나지 않으면 1972년에 창단된 이 팀은 더 이상 아시아리그에서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세이부와 대결하는 상대팀은 항상 하나의 걸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We' ll Remember You, Forever)'라는 내용의 이 걸개는 오지 이글스, 하이원에 이어 안양 한라의 구장에도 걸리게 되었죠.

올 시즌도 여전히 상위권을 자랑하고 있는 세이부지만, 지원 중단 발표 이후 흔들리는 모습은 어찌 감출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3경기를 치르는 이번 한국 원정 길에서 벌써 2패를 당하며 강자답지 않은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은 아쉬움, 승부는 승부. 흔들리는 세이부를 안양 한라는 놔주지 않았습니다. 안양 한라의 폭격은 3피리어드에서도 계속됐죠.

3피리어드 1분 20초 만에 박우상의 패스를 받은 라던스키가 가볍게 밀어넣은 것이 키쿠치 나오야 골리의 스케이트에 맞고 골이 되었습니다. 예상 밖의 골에 안양 한라는 두 배로 기뻐했고, 세이부의 침통함은 극에 달했습니다.

게다가 안양 한라에는 행운도 따랐죠. 이미 기울어진 승기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세이부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골대와 손호성 골리를 지키려는 듯 촘촘히 둘러싼 안양 한라의 수비를 뚫고 날카로운 슈팅을 시도했습니다.

골과도 다름없었던 이 슈팅은 우연히도 넘어진 손호성 골리의 스케이트 끝을 맞고 골대를 지나 펜스에 맞았습니다. 관중석은 몸을 날린 골리의 선방에 연방 엄지를 들어올리며 "손호성 파이팅"을 외치며 즐거워했지만, 회심의 슈팅마저 빗나간 세이부의 벤치에서는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운마저 따라준 안양 한라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8분 16초, 오랜만에 '존 아 존'에서 호쾌한 슬랩 샷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대로 골망을 흔든 그 샷은 더 이상 세이부는 안양 한라의 적수가 되지 않음을 알리는 경고와도 같았죠.

남은 시간 동안은 골을 넣는 것보다 '내주지 않는 것'에 주력했습니다. 4대0과 4대1. 한 골의 차이는 다음날 열린 경기에 대한 기선 제압의 차이와도 같습니다.

결국, 이 작전마저 유효한 안양 한라는 흥이 난 관중의 마지막 10초 카운트 다운을 들으며 경기를 마쳤습니다.

존 아의 골이 들어간 뒤 평소 경기 중에는 감정을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 손호성 골리는 흥에 겨워 존 아와 큰 하이파이브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공격진의 고른 골도 승리의 한 요인이었지만, 이 날 눈부신 선방을 보인 손호성 골리 또한 안양 한라 승리의 일등 공신이었죠. 경기 후 손호성은 "셧아웃으로 승리함에 있어 내가 가지는 영광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팀이 승리할 수 있고, 이어질 경기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질 수만 있다면 골문을 지키는 나는 몇 번이고 셧아웃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라며 자신보다 팀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이제 안양 한라에는 두 경기가 남았습니다. 18일 일요일에는 세이부와의 올 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대결이 남았고, 돌아오는 25일에는 하이원과의 국내 라이벌 전을 앞두고 있죠.

두 경기 중 한 경기도 안양 한라에겐 포기할 수 없는 경기가 될 듯합니다. 정규리그 선두, 그리고 자존심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노려야 할 상황이죠.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링크를 바라보면서 안양 한라가 '처음' 이뤄낼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한국팀 첫 정규리그 우승, 나아가 시즌 우승까지도 말이죠.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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