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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 삼국지] 지긋지긋한 '일본' 징크스에 울었던 안양 한라의 동경 원정길

기사입력 2008.10.07 17:10 / 기사수정 2008.10.07 17:10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역사의 현장에 서있구나…. 했는데…."

항상, 아시아리그 랭킹 상위권에는 일본 팀들의 이름이 적혔습니다. 일본 선수는 한국 팀을 무시했고, 경기 중 골을 넣어도 별다른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선수가 한국 팀에서 뛴다는 것은 수치였고,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죠.

그러나 이젠 달라졌습니다. 일본 팀의 이름보다 하이원이나 안양 한라의 이름이 랭킹 상위에 오르는 일도 많아졌고, 선수들도 결코 한국 팀과의 경기에서 건성건성 뛰지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 깨지지 않는 단 하나의 징크스가 있습니다. '다이도 징크스'라 불리는 그 징크스는 이번에도 안양 한라의 발목을 부여잡고 놔주지 않았습니다.

5일 오후, 다이도 드링크 링크 꼭대기에 달린 전광판이 야속하게도 세이부 프린스 래빗츠의 5-3 승리를 표시했고, 승리를 자축하는 세이부 프린스 래빗츠의 선수들과 이번에도 지긋지긋한 징크스를 깨지 못한 안양 한라의 선수들이 뒤엉켜 빙판은 소란스러웠습니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그 소란스러운 빙판을 바라보고 있는 기자에게 안양 한라의 직원이 다가와 건넨 첫 마디가 “역사의 현장에 서있구나…. 했는데, 아쉽네요.”였습니다. 세이부 프린스가 홈구장으로 쓰는 다이도 드링크 링크는 유난히 한국팀에 가혹한 링크입니다.

아시아 리그가 출범한 이래 다이도 링크에서 한국팀이 승리를 거둔 적은 단 한 번, 그나마도 하이원이 거둔 승리로 안양 한라는 다이도 링크에서 승리의 기쁨을 누려본 적이 없습니다.

이틀간 안양 한라는 그동안의 징크스를 깨뜨리고자 무던히도 노력했습니다. 최근 3연승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었고, 그 중 두 경기는 지난 시즌 우승팀인 오지 이글스에 얻어낸 것인지라 더욱 그랬죠. 또, 예전처럼 지고 있다고 경기를 포기해 버리지 않고 덤벼들어 어떻게 든 역전승을 만들어내 징크스 따윈 아무것도 아닐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만들어진 징크스 혹은 역사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4일 경기에서 2-0으로 지고 있을 때만 해도 최근의 경기력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한국에서 원정을 온 부자 팬은 목이 터져라 안양 한라를 외쳤죠.

브락 라던스키의 골로 세이부의 턱밑까지 쫓아가고 박우상의 골로 동률을 이뤄내 다시 팽팽한 균형을 맞췄을 때 큰 빙산 같았던 다이도 링크의 역사가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5분 동안 두 골을 내주며 끝내 지긋지긋한 징크스에 다시 무릎을 꿇었죠.

이 날 안양 한라는 이승엽과 손호성이 부상을 입어 주변을 근심하게 했습니다. 특히 이승엽은 경기 중반 상대 선수의 체킹으로 펜스에 갈비뼈를 크게 부딪치며 일어나지 못하고 들것에 실려 나갔습니다. 지난 시즌 입단했을 때보다 훨씬 농익은 플레이를 선보이며 안양 한라의 수비의 한 축을 담당하는 터라 더 걱정이 컸습니다.

이승엽은 결국 병원으로 실려가 경기가 끝난 후에나 다시 다이도 링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돌아온 그의 허리에는 보호대가 칭칭 감겨있었죠.

그렇게 징크스를 깨기 위한 이번 시즌 첫 도전은 상처만 가득한 채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2연전의 마지막 날인 지난 5일도 경기는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습니다. 먼저, 두 골을 내줬고, 3피리어드 초반까지 내리 네 골을 이어 넣으며 승리를 거두는 듯했습니다.

이 날 다이도 링크에는 체코 출신인 패트릭 마르티넥을 응원하러 국기까지 들고 달려온 체코 팬과, 어설픈 한국어로 열심히 안양 한라를 외치던 일본인 팬까지 있어 안양 한라 선수들은 원정이었지만 든든한 마음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4-2로 앞서나가며 승기를 다잡은 듯했지만, 다이도 링크, 그리고 그 위를 밥 먹듯 달리는 세이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죠. 2분 만에 다나카 고와 카와무라 마사히로의 서로 돕는 골과 도움으로 순식간에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동점으로 돌아가는 데는 링크의 '악동' 조엘 퍼픽의 도움도 컸습니다. 유난히 거친 플레이와 상대 선수를 따라다니며 끝까지 괴롭히기로 유명한 그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죠. 이번엔 이권재와 패트릭 마르티넥이 그의 타깃이 되었습니다.

체킹으로 넘어진 이권재의 목을 누르고 피리어드를 마치고 돌아가는 패트릭 마르티넥을 자극해 싸움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조엘 퍼픽의 행동에 안양 한라는 흔들렸고, 결국 세이부의 집중 공격을 이겨내지 못했죠.

결국, 경기 종료 3분을 남기고 슈지 마스코에게 결승골을 허용하게 됩니다. 골을 넣은 직후 골대가 움직이는 바람에 안양 한라 선수들은 골이 아니라 주심에게 항의해 봤지만, 이미 들어간 골에 대한 번복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다이도 징크스는 또 다시 안양 한라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틀의 세이부 원정 동안 참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기 시작 한참 전부터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세이부의 팬은 물론, 경기 시작 2시간도 훨씬 전부터 링크 앞에 모여 삼삼오오 간단한 소풍을 즐기다 아이에게 유니폼을 입히고 입장하는 가족 팬까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열정적인 세이부의 팬 덕분에, 2시즌 연속으로 하키 타운에 선정 될 수 있었던 거겠죠. 다이도 링크에 걸려있는 붉은색의 하키 타운 깃발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역사와 그 역사를 이루는 징크스는 쉬이 깨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계속되는 징크스에 의해 '이 팀을 만나면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죠. 그러한 생각이 모이고 모여 상대를 보자마자 포기해 버린다면 뒤돌아 볼 것도 없이 그 경기는 이길 수 없겠죠.

이제 올 시즌 세이부를 만나기 위한 동경 원정은 단 한 번뿐입니다. 이 마지막 한 번이 무섭고 지긋지긋한 그 징크스를 깨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다이도 링크가 백곰에게 무릎을 꿇는 그날이 오길 바라봅니다.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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