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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축구, 프리미어리그에 상륙하다 ①

기사입력 2008.10.07 14:22 / 기사수정 2008.10.07 14:22

윤영진 기자

[엑스포츠뉴스=윤영진 기자] 과거 체력, 힘, 스피드로 대변되는 프리미어리그에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08/09시즌 현재 프리미어리그 20개팀 중 1군 등록 선수 스쿼드에 남미계 선수를 보유하지 않은 팀은 선더랜드, 스토그시티, 아스톤빌라, 그리고 풀럼. 이렇게 4개팀들 뿐이다. (여기서 남미계 선수라 함은 지역적으로 남아메리카 지역뿐 아니라 남미와의 경계가 모호한 포르투갈 출신의 선수도 포함했다. 포르투갈의 경우는 유럽이지만, 축구 스타일에 있어서는 남미 쪽과 흡사하기에 스타일 상 분류를 위해 포함했다.)

이러한 수치는 과거 2000년대 초반 프리미어리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 것이다. 그 당시 프리미어리그는 많은 재능있는 남미계 선수들을 다른 리그로 이적하게 하며 '남미 선수의 무덤'이라는 별명을 가지기도 했다. 과연 10년 사이에 프리미어리그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걸까?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변화의 트랜드를 시간과 전술, 인물 중심으로 알아보자.

▲ 남미축구, 프리미어리그에 상륙하다 (1) - 과거의 스타들



후안 세바스티앙 베론

2001-200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6경기 출전 5골
2002-200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5경기 출전 2골

2001년 여름. 당시 99/00시즌에 라치오에 스쿠데토를 안겨주며 세계 4대 미드필더로 주가를 높이던 아르헨티나의 지휘자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성했다.

베론은 당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높은 이적료(2810만 파운드)기록을 갈아치우며 '붉은악마'의 일원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수많은 팬은 그가 중원에서 이탈리아에서 보여주었던 환상적인 패스를 뿌리며 로이 킨, 라이언 긱스,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과 함께 만들어갈 환상적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2001년부터 2003년에 거쳐 맨유에 머물던 베론은 두 시즌 합쳐 겨우 7골을 넣는데 그치는 등, 부진한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베론이 보여주었던 플레이는 무난한 것이었으나, 팬들이 그에게 바랬던 것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프리미어리그 특유의 빠른 템포에 적응하지 못했던 베론은 라치오에서 그가 보여주던 경기를 뒤집는 '매직'을 보여주지 못하고,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이적 초반과는 달리 초라하게 첼시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러나 첼시에도 마땅히 뚜렷한 활약은 못한 채로 이후 무리뉴 감독 취임 후 인테르로 임대되었다.

다행히 베론은 자신의 무대이던 세리에A에서 두 시즌 동안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후 그는 고국 아르헨티나로 복귀하게 되었다.



디에고 포를란

2001-200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8경기 출전 0골
2002-200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3경기 출전 9골
2003-200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3경기 출전 8골
2004-20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경기 출전 0골

같은 맨유 출신 스트라이커 디에고 포를란도 잉글랜드 무대에서 실패한 케이스에 속한다.

디에고 포를란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아르헨티나 인디펜디엔테에서 80경기 37골을 넣으며 반니스텔루이의 파트너로 낙점받으며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하게 된다.

그러나 포를란은 맨유에서의 2시즌 동안 리그 63경기 출전해 겨우 10골만을 넣는 저조한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컵 대회와 유럽대항전을 모두 더한다고 해도 포를란이 잉글랜드 무대에서 보여준 골은 단 17골. 당시 맨유의 팀 분위기가 어수선하였고, 주포 반 니스텔루이가 있었다고는 해도

그러나 프리미어리그를 떠난 포를란은 2004년 이적한 비아레알에서 보란듯이 25골을 몰아넣으며 프리메라리가 득점왕에 오르며 맨유에서의 부진을 해소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실패는 포를란 커리어에서 오점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프리미어리그의 남미 징크스를 거론할 때 대표적인 실패로 거론된다.

이렇듯 기대를 모으고 잉글랜드에 입성했던 남미계 스타들은 쓴맛을 보고 돌아가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2000년대 초기에는 성공을 거둔 2명의 남미계 선수가 있었다.

현재 토트넘의 수석코치를 맡고 있는 구스타보 포엣와 전 미들스브로 소속의 주니뉴이다.



구스타보 포엣

1997-2001 첼시 105경기 출전 36골
2001-2004 토트넘 82경기 출전 18골

구스타보 포엣은 1997년 스페인의 레알 사라고사에서의 7년간의 선수생활을 접고 아브라모비치 이전의 첼시로 이적해 지금의 웨스트햄 감독 지안프랑코 졸라와 황금기를 맞았다.

그는 첼시에서 플레이하는 동안 105경기 36골을 넣으며 프리미어리그 초창기의 슈퍼스타가 되었고, 2001년 새로운 둥지 토트넘에서 자신의 마지막 커리어를 보냈다. 토트넘의 암흑기라 할 수 있는2001~2004년 동안 팀을 이끄는 정신적인 지주로서 팀의 어린 선수들을 이끌며 활약했다.



주니뉴 파울리스타

1997-1999 미들스브로 72경기 출전 17골
1999-2000 미들스브로(임대) 29경기 출전 5골
2002-2004 미들스브로 41경기 출전 11골
2004-2005 글래스고 셀틱 14경기 출전 1골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적인 시즌은 보낸 다른 한 명의 선수는 미들스브로에서 활약했던 주니뉴 파울리스타다.

그는 167이라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드리블과 감각적인 패스로 90년대 플레이메이커 명인시대에 이름을 올리는 선수였다. 비록 전통적인 강팀이 아닌 미들스브로에 있었지만 그의 실력까지 깎을 수는 없는 것이다. 프리미어리그 초창기의 그의 플레이는 상대팀 팬들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나 주니뉴는 불운하게도 대표팀 소집시 부상을 당하는 등 악재가 겹쳐, 실력에 비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았다.

(2편 '전술의 변화'편으로 계속됩니다)

[사진=베론, ⓒ인터밀란 구단 홈페이지. 포를란, ⓒBBC SPORTS 홈페이지. 포엣, ⓒ첼시 구단 홈페이지. 주니뉴, ⓒ미들스브로 홈페이지]



윤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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