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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박스] 3부리그 '꼴찌'팀이 처음 이기던 날

기사입력 2008.06.02 10:49 / 기사수정 2008.06.02 10:49

전성호 기자



▲ 지난 해 고양시민구단의 창단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보레아스 서포터들. 그들이 드디어 창단 첫 승의 기쁨을 맛보다.

3부리그 꼴찌팀의 열정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2008년 5월 31일.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바라던 승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월드컵 3차 예선 요르단전의 승리였겠지만, 그보다 더 간절하게 승리를 염원하는 팀이 있었다. 바로 K3리그의 고양FC.

2006년 N-리그 우승과 함께 K-리그 승격권을 획득하고도 팬들의 바램을 무시한 채 승격을 포기해버린 고양KB에 실망한 팬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창단해낸 시민구단 고양FC.

그러나 올 시즌 처음으로 K3리그에 참여한 고양FC는 신생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10라운드까지 진행된 올 시즌 현재 10전 10패, 10득점 52실점이란 어마어마(?)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지난 10라운드에서는 강팀 광주광산FC을 만나 무려 13:2라는, 야구에서나 가능한 스코어를 기록하며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상황이 이쯤 되니 첫 승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해졌다. 그래서였을까. 31일 창원유나이티드와의 K3 전기리그 11라운드 경기에 앞서 몸을 푸는 고양의 선수들과 고양 어울림누리 구장의 분위기는 결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날 저녁에 대한민국과 요르단의 월드컵 3차 예선전이 열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연패를 당해서인지 관중 수는 평소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창원의 서포터즈가 한 명도 오질 않아서 경기 시작 전 경기장에는 적막함마저 흘렀다.

다만, 경기 시작 10분 전 쯤부터 5명 남짓한 고양FC의 서포터즈 '보레아스'가 북을 울리며 고양FC의 구호를 외친 덕분에 그 적막감이 조금은 덜해질 수 있었다. 사실 보레아스의 숫자는 꽤 많았지만 상당수가 스탠드에서 경기를 보며 응원을 하지 못하고 경기 진행 요원이나 볼보이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또한, 경기 시작 전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매치데이 매거진과 고양FC 응원가, 보레아스 가입 방법 등을 담은 인쇄물을 '직접' 나눠주고 있었다.  K3리그의 열악함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연패를 당하는 팀과 텅텅 빈 관중석, 열악한 환경. 그 어느 것 하나 화려하거나 가슴 뛰게 하는 요소가 없었고 오히려 차분하게까지 느껴지는 모습이었지만 경기시작 전 팀을 위해 봉사하고 미약하지만 최선을 다해 응원하는 보레아스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들 가슴 속 깊이 숨겨두고 있는 열정을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전반전: '골대 징크스'에서 느낀 좋은 예감

오늘도 지면 11연패. 자칫 전기리그를 전패의 기록으로 끝내게 되는 치욕을 맛볼 확률이 점점 높아진다. 상대는 역시 리그 하위권에 처져 있는 창원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심기일전한 고양은 경기 초반 활발한 전방의 움직임으로 창원을 압박했지만 불행히도, 또 언제나 그랬듯이 전반 시작 8분 만에 창원에 실점을 허용했다.

'오늘도 지는 건가'란 생각이 반사적으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곧바로 전반 10분 고양의 조기정이 만회골을 넣으며 동점을 만들었다. 자칫 자신감을 잃을 수 있던 상황에서 곧바로 만회에 성공하자 분위기는 급반전되며 선수들은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계속되던 전반 16분, 창원의 프리킥이 골대를 맞추었다. 왠지 예감이 좋다. '골대 징크스'가 떠오르며 고양에게 행운이 오는 분위기였다. 결국, 이효용이 전반 23분 멋진 침투패스를 받아 역전골을 성공시켰고 경기장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석 달 가까이 이어져 온 연패에 경직된 표정을 짓고 있던 구단관계자들도 '우리가 2:1로 이기는 건 처음인 거 같은데?'라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창원은 전반 27분 코너킥을 이어받은 이주언이 날카로운 헤딩 슈팅을 날리며 반격에 나섰다. 고양은 오랜만의 경기 리드여서인지 수비수들이 시간을 끄는 플레이를 자주 보였고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서 여러 차례 창원에게 프리킥을 내주며 위기상황을 맞았다. 창원의 주장 김수용과 이석언은 계속해서 위협적인 슈팅으로 고양의 골문을 위협했다.

역습위주의 플레이를 보이던 고양이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전반 40분, '오늘의 히어로'가 될 이영광이 하프라인부터 공을 몰고 가 멋지게 팀의 3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그간 많은 경기에서 경기 초반 실점하고 끌려다니면서 무기력하고 자신감 없던 플레이를 보였던 고양의 선수들은 이 세 번째 골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수비에서도 격렬한 몸싸움과 태클을 하며 승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팬들 역시 이 '낯선' 리드 상황에 한껏 흥분했다.

전반 44분에도 이영광이 멋진 공간 침투에 의한 슛을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골키퍼 정면을 향했고 창원은 공격이 잘 풀리지 않자 중거리 슛을 여러 번 시도하면서 계속해서 고양의 골문을 두드렸다.

결국, 전반전 추가시간에 창원의 김수용이 역습 상황에서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3:2로 따라붙자 경기장엔 안타까운 탄식이 새어 나왔다. 관중석에서는 '여유 부리지 마!' '집중해!'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반 마지막 공격에선 크로스를 받은 김수용이 문전 앞에서 헤딩슛을 날렸지만 옆 그물을 맞히며 동점골에 실패하는 등 고양은 창원에 추가시간 내내 밀리는 양상을 보여주다 전반전을 마쳤다.

고양은 전반전에서 이효용과 이영광의 양쪽에서 벌려주는 플레이가 위력적이었던 반면 창원은 김수용이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가장 돋보이는 플레이를 펼쳤다.

후반전: 아쉬움이 남았던 장면들. 그리고…!

후반전이 시작하고 양팀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보여줬지만 서로 그다지 의미 있는 공격을 보여주진 못했다. 경기가 약간 소강상태로 접어들던 후반 13분, 드디어 이영광이 날카로운 공격으로 팀의 네 번째 골을 터뜨렸고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팬들은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특히 고양의 선수들은 지금까지 그들을 위해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응원을 펼쳐주던 보레아스에 선수 전원이 달려가 인사를 하는 골 세리머니를 펼치며 진한 감동을 주었다. 심판도 이런 고양 선수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조금은 시간이 지체되는 세리머니였음에도 고양에 경고를 주지 않았다.

이후 창원의 거센 반격이 벌어졌지만 고양 선수들은 몸을 아끼지 않는 육탄방어로 수비에 임했고 역습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을 따내려는 투혼을 보여줬다.

그러나 거친 고양의 육탄 수비와 뒤처지던 창원 선수들의 초조한 마음이 겹쳐서였을까. 심판이 몇 차례의 파울 상황에서 제대로 파울콜을 하지 않아 선수들의 불만이 쌓이게 한 것 역시 화근이었다.

이어진 고양의 코너킥 상황에서 서원영이 팔꿈치로 수비수를 가격하는 거친 파울을 했고 이에 흥분한 창원의 이주언이 서원영의 목덜미를 잡아 밀치는 거친 행동을 보였다. 상황은 두 팀 간의 몸싸움으로까지 번지기 시작했고 상황이 진정되자 심판은 두 선수에게 동시에 퇴장을 명령했다.

이들은 피치를 빠져나오면서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며 일촉즉발의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코치진이 간신히 그 둘을 떼 놓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두 선수가 퇴장한 이후에도 창원의 이석언이 지나친 항의로 다시 퇴장을 받으며 경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K3에서까지 이러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나왔다는 점은 이 경기의 '옥에 티'가 되고 말았다.

결국, 순식간에 세 명이 퇴장을 당했고 이후 잠시 침체하였던 경기 분위기는 후반 25분 김수용의 날카로운 슈팅이 골키퍼 정면으로 막히면서 다시 살아났다. 김수용은 주장답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여주며 끈질기게 고양의 왼쪽을 공략했고 그의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에 나중에는 고양의 팬들마저 박수를 보냈다.

후반 33분에는 고양의 수비 한명, 공격 세 명의 절대적으로 유리한 역습 상황에서 김윤철이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에서 슈팅을 시도했지만 아깝게 골포스트를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후반 35분 김윤철은 다시 한번 몸을 날려 슈팅했지만 골키퍼 선방에 막혔고 뒤이어 후반 36분 창원의 역습 상황에서 김수용의 슈팅은 다시 한번 골키퍼 정면을 향했다.

하지만, 세 명이 퇴장당한 가운데 후반 막판으로 갈수록 선수들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공간이 넓어지면서 역습 상황도 많이 벌어지고 실수도 잦아졌다. 후반 38분에는 김수용이 빠른 움직임으로 공간을 파고들어갔지만 마지막 순간 헛발질을 하며 득점에 실패했고, 해트트릭을 노리던 이영광은 두 차례나 골문 앞까지 공을 몰고가서 수비수에게 막히는 불운을 보였다.
 
후반 40분이 되면서 '첫 승'이 가까워져 오자 고양 구단 관계자들과 팬들은 앉아있을 수가 없었고 선수들을 독려하는 팬들이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고양은 42분 조기정이 골키퍼와 1:1 상황에서 득점에 실패했고 곧 이은 코너킥 상황에서 육정대가 중거리 슛을 시도했지만 골과는 거리가 멀었다.

워낙 패배를 많이 당하고 골도 많이 허용했던 고양이었기에 후반 45분 상황 두 골 차의 리드에도 안심할 수 없었고 선수교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영광은 다시 한번 단독 골 찬스에서 머뭇거리며 결국 해트트릭 달성에 실패했고 추가시간 4분이 주어진 가운데 창원은 몇 차례 슈팅을 더 시도했지만 결국 득점에 실패했다. 그때! 주심의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경기가 끝나고

경기가 4:2, 고양의 승리로 마무리되자 어울림누리 구장에는 기쁨과 환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고양이 창단 후 첫 승이자 홈 경기 첫 승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선수들은 물론이고 팬들과 구단관계자들은 큰 박수와 응원가로 이 '작은 기적'에 대한 기쁨을 드러냈다.

서포터들은 그라운드 앞까지 내려와 선수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뛰는 진풍경을 연출하며 첫 승의 기쁨을 맘껏 누렸다. K3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선수들과 팬들 간의 끈끈한 유대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선수단과 팬들이 함께 진한 뒤풀이 자리를 가지지 않았을까.

이날 승리했지만 고양FC는 여전히 리그 최하위에 처져있고 골득실차도 여전히 -40이다. 전기리그 남은 경기와 후기리그에서도 고양FC는 앞으로 더 많은 패배를 기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양FC는 연고를 이전하지도, 승격을 거부하지도 않는 순수한 '우리 팀'이기 때문에 보레아스와 고양 시민들에게는 늘 그들을 지지할 것이고, 또 고양FC 역시 지지자들을 잊지 않고 항상 그들을 위해 뛸 것이다. 그런 팀이 거둔 1승의 가치는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K3는 K-리그처럼 기량이 출중하지도, 국가대표팀 경기처럼 화려하지도 않지만 이같은 신뢰와 열정이 있다. 바로 그 점이 K3리그를 가치있게 만들고 있다.

무엇인가에 대한 열정은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 우리가 보고 싶은 축구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고양FC의 첫 승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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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호

#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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