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5 14:50
스포츠

K-3 리그, 순수한 열정만을 위하여

기사입력 2008.05.18 08:15 / 기사수정 2008.05.18 08:15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K-3리그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놀라움으로 다가오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열정'이 그것인데요. 무슨 소리냐 하실 것 같아서 몇 가지 작은 예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비봉 습지 구장을 찾은 기자는 취재 협조를 요청하고자 팀 관계자를 찾았습니다. 마침 팀 관계자인 듯한 30대 중반의 여성분이 보여 상황을 얘기하고 사무국장을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물었죠. 친절히 설명을 해주던 그 여성분은 기자가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 하자 기자의 등 뒤에 대고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우리, 신우 많이 찍어주세요."

다른 기사에서 언급한 적이 있듯이, 화성 신우전자가 쓰는 비봉 습지 구장은 접근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대중교통으로서 버스는 꿈도 못 꾸고 택시 또한 거의 다니지 않죠. 경기장 주변은 논과 야산뿐 입니다.

경기장 바로 옆엔 도로가 있고 경기장 외벽은 철망일 뿐입니다. 선수와 심판 대기실은 작은 컨테이너 박스 하나죠. 열악합니다. 정말 열악하죠. 잔디는 어떻고요. 천연 잔디가 아닌 인조 잔디입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경기장 한 편에 마련된 관중석에는 꽤 많은 분이 벌써 앉아서 화성 신우전자를 응원하는 막대 풍선을 들고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옆쪽으로는 원정팀인 남양주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고 머플러를 두른 남양주의 팬도 꽤 보였고요.

이러한 팬들의 열정 못지않게 선수들의 열정 또한 뜨거웠습니다. 전반은 리그 선두인 화성 신우전자의 일방적인 압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리그 득점 선두인 김승철과 역시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김춘식의 골로 전반은 화성 신우전자가 남양주 유나이티드에 3-1로 앞선 채로 끝났죠.

참 열심히들 뜁니다. K-3리그는 아시다시피 축구 '만' 하는 선수들은 아닙니다. 화성 신우전자만 해도 병역 특례 업체로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 늦게나 돼서야 축구화를 신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실력이 프로와 비교해 아주 많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생각도 그다지 들지 않습니다.

잠시 경기가 쉬는 하프 타임에 기자의 등 뒤로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남성 두 분이 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한 분은 화성 신우전자의 관계자인 것 같더군요. 그 관계자는 상대방에서 "우리가, 화성시를 대표하는 축구팀입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K-3리그도 정식 리그고 이 선수들 모두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축구만 해오던 선수들입니다. 지금이야 다들 사정이 생겨서 일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 거지만, 누구보다 열심입니다."라는 내용이 들려왔습니다. 화성시를 ‘대표’하는 축구팀이라는 말을 할 땐 무엇보다 '대표'에 힘을 주어 말씀하시더군요. 팀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담뿍 묻어나는 한마디 한마디가 참 듣기 좋았습니다.

후반은 남양주 유나이티드의 대반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는 19일 월요일, 현역으로 군입대하는 인천 한국철도 출신 이승준의 골로 남양주 유나이티드는 턱밑까지 화성 신우전자를 쫓았죠. 계속해서 화성 신우전자를 몰아붙이며 골문을 두드리던 남양주 유나이티드 선수들에게 감독은 "조금만 더 뛰자."라면서 사이드라인 근처까지 나와 내내 서서 독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열정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지만, 경기가 끝난 뒤 이 열정이 지나쳐 조금은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K-3리그도 유난히 심판과의 마찰이 잦습니다. 이 날 경기에서도 화성 신우전자 선수들과 남양주 유나이티드 선수들, 그리고 관중석에 있던 관중과 귀빈석에 있던 팀 관계자들, 그 누구를 막론하고 심판에 대한 불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서운한 말이 들려왔죠. 문제는 경기가 끝난 후였습니다.

화성 신우전자의 구단주는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을 모아놓고 크게 호통을 쳤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다그침이었죠. 선수들만 다그쳤다면 괜찮았을 텐데 아무래도 화가 많이 나신 모양입니다.

경기 감독관에게 다가가 뭐라 한마디를 하신 것 같더군요. 경기 감독관도 90분 내내 들려오던 여러 불만에 질렸던지 무언가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럼 오지 마시던가요.'였습니다. 이 말에 크게 화가 난 화성 신우전자의 구단주는 언성을 경기 감독관에게도 높였습니다. 문제는 그 바로 옆에 오늘 경기에서 패배한 남양주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경기 후 회복 운동 중이었다는 점이겠죠.

남양주 유나이티드 선수들과 감독, 팀 관계자는 그 장면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 것도 아니고 이긴 팀에서 그런 반응이 대체 왜 나와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죠. 일부 어린 선수들 입에서는 작은 욕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분명, 심판의 판정에 100% 만족할 수 있는 경기는 아마 단 한 경기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끝난 경기고, 심판의 판정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굳이 보일 필요가 있겠느냐는 거죠. 말씨름을 주고받던 중 경기 감독관이 그렇게 문제가 심하다 느껴지면 공문을 보내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요청하라고 하더군요. 네. 그것이 맞는 절차가 아닐까요?

그렇게 큰 소리가 오간 뒤 진 남양주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물론 이긴 화성 신우전자의 선수들의 표정도 그리 밝지 못했습니다. 덩달아 바라보고 있는 기자도 씁쓸해지더군요. 그 전까지만 해도 참 멋진 열정의 발로만 본 것 같아 가슴이 벅찼는데 말입니다.

K-3리그를 지탱하는 그 모든 열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대한민국 축구의 토양과 든든한 뿌리가 되어주고 있는 그대들이 있어, 오늘도 대한민국 축구는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겠죠.

그러나 자라는데 도움이 되는 양분과 물도 과하면 뿌리가 썩고 토양이 지치게 됩니다.

나의 과도한 열정이 누군가의 열정의 뿌리를, 그리고 토양을 병들게 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돌아오는 내내 기자의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다음번 또 그들을 만나게 될 땐 순수한 열정만 가득할 수 있겠죠?



김경주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

주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