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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K!] '아빠 오늘 박주영 안 나와?'…컵대회에 대처하는 귀네슈의 자세

기사입력 2008.05.15 12:48 / 기사수정 2008.05.15 12:48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14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제주유나이티드와의 컵대회 5라운드 경기.

경기 시작 10분 전 장내 아나운서와 전광판을 통해 FC서울의 출전 선수 명단이 하나씩 발표되자 관중석이 조금씩 술렁였다. 제주유나이티드가 심영성, 조진수, 조용형 등 정예 1군으로 출전했지만 서울의 명단에 신인급 선수들이 대거 포진됐기 때문이다.

김치곤, 최원권, 김호준을 제외하면 지난 3월에 있었던 서울과 수원삼성의 2군 리그 개막전에 나왔던 선발 라인업과 거의 유사했다. 서울의 열혈팬이 아니라면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했을 선수도 여럿 있었다. 한 꼬마 아이는 자기 아빠에게 '오늘 박주영 안 나와?'라고 물었다.

귀네슈 감독이 이전의 인터뷰에서 "지난해에는 모든 대회에 전력을 기울였다. 컵대회에 신경을 덜 썼더라면 더 좋은 성적이 나왔을 것이다" 면서 올 시즌 컵대회를 중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만한 선수 기용이었다.

그렇지만, 5월에 있었던 마지막 홈경기, 더군다나 다음 홈경기까지는 한 달이 넘게 남은 상황에서 팬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전날 내린 비로 인해 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에 모인 1만여 명의 관중은 각자 준비해온 담요나 외투를 덮고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추위를 이겨가며 서포팅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날 서울 홈팬들은 2군선수들로 짜인 선수명단과 이들의 무기력한 경기력에 분노했다.

사실 주중 저녁 경기를 보려면 꽤 노력이 필요하다.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며 퇴근을 일찍 하거나, 저녁을 도시락으로 때우거나, 친구와의 약속을 미루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기 시각에 맞춰 도착해 화장실에서 양복을 레플리카로 갈아입고 머플러를 챙겨 2시간 동안을 목이 터져라 열심히 응원한 홈팬들에게 서울 선수들의 경기력은 비극이었다.

'피버 피치'의 저자 닉 혼비가 어린 시절 그렇게 자주 느꼈다는 '아스날의 끔찍한 플레이'가 무엇인지 이제 아마 서울팬들은 알 것 같았다.

경기 내내 졸전이 이어지다 결국 제주의 역습에 의해 전반엔 심영성, 후반에는 이정호에게 골을 허용하여 0-2으로 끌려가자 결국 후반전 서울 서포터즈 '수호신'이 모인 N석에서 "정신 차려 서울!" 이란 구호까지 터져나왔다.

관중석 중간 중간에선 '뭐해 뛰어!', '아우, 슛 좀 때려봐!', '이게 뭐야. 환불해줘!', '차라리 집에서 온에어나 볼걸!'이라며 한탄하는 소리까지 나왔다. 심지어 후반전 막판엔 벤치에서 귀네슈 감독의 모습마저 보이지 않차 팬들은 더욱 분노했다.

세뇰 귀네슈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이기려던 경기가 아니었다. 젊은 선수들을 테스트하려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홈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아니, '최소한 이기려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 구단의 팬서비스는 경기외적인 요소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우선되는 것은 경기 그 자체 아니겠는가. 젊은 선수들을 테스트하고 싶었다면 원정 경기에서 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많은 팬은 홈팀의 경기 일정에 맞춰 스케쥴을 짜고, 경기장을 찾고, 또 경기를 보는데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그러나 이날 서울팬들은 아마도 위에는 최상품, 밑에는 하급품이 깔려 있는 과일 상자를 산 것 같이 우롱당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K-리그 경기를 보러 갈 때 종종 보이는 광경 중 하나는 한 친구가 다른 친구들을 이끌고 경기장에 찾는 모습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어렵사리 TV로 '수준 높은' 유럽축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친구들을 설득해 데려온 경우다.

이 날도 경기장 입구에서 서울의 팬으로 보이는 한 학생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직접 보면 정말 재밌다니까! 표도 별로 안 비싸고 오늘 아마 박주영이랑 무삼파도 나올 거야!'라며 친구를 이끌고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이 친구들이 어제 서울:제주 경기를 보고 다시 제발로 경기장에 올 확률은? 안타깝지만 제로라고 생각한다. 만원에 가까운 돈을 내고 들어왔더니 기다리고 있는 것은 2군 멤버 (K-리그 2군 경기는 무료입장이다!)와 무력한 경기력, 그리고 홈에서의 완패. 팀에 대해 실망하기 완벽한 조건이었다.

이들이 돌아가서 또 다른 친구들에게 뭐라고 할까? 역시 K-리그는 재미없다는 말 외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들은 다음 서울의 경기 일정보다는 맨유와 첼시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몇 시인지에 관심이 더 있을 것이다. 홈경기에 대해서만큼은 그 어떤 대회라도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올해 귀네슈 감독이 설령 FC서울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다고 해도, 홈경기에 대한 이런 접근 방식은 결코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많은 새로운 팬들을 이끌고 오지 못할 것이다.



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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