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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인터뷰] '가려진 시간' 엄태화 감독, 스크린에 그려낸 믿음이라는 꿈

기사입력 2016.12.01 03:38 / 기사수정 2016.12.01 03:41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2016년의 영화들을 돌아볼 때, 하나의 키워드로 꼽을 수 있는 신선한 영화의 등장이었다. 엄태화 감독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인 '가려진 시간'이 깊은 여운을 남기며 관객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11월 16일 개봉한 '가려진 시간'은 의문의 실종사건 후 시공간이 멈춘 세계에 갇혀 홀로 어른이 돼 돌아온 성민(강동원 분)과 성민의 말을 믿어준 단 한 소녀 수린(신은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중한 심사로 유명한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숲'(2012)으로 심사위원 만장일치 대상을 받고, '잉투기'(2013)로 주목받아 온 엄태화 감독의 이력, 여기에 강동원과 신예 신은수의 조화까지 제작단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기존에 알려진 엄태화 감독의 색깔에 아련한 정서가 더해져 감성 판타지라는 장르가 완성됐다.

시나리오 작업부터 촬영과 후반 작업, 세상에 나오기까지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여정이었다. 엄태화 감독은 "시나리오 쓰는데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빠른 편이었던 것 같아요. 투자와 캐스팅도 순조로운 편이었고요. 안정적인 시스템이고, 또 그 안에서도 굉장히 세분화 돼 있잖아요. 처음에 시작할 때 (스태프들에게) 제가 생각하는 것을 말씀드렸고, 그 이후에는 선택을 하면 되는 과정이었죠. 후반작업이 좀 길었네요"라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가려진 시간'의 첫 시작은 큰 파도 앞에 손을 맞잡은 두 남녀의 모습이었다. 엄태화 감독은 "시작은 소재나 이미지로 하는 것 같아요. '가려진 시간'도 마찬가지로 '멈춰진 시간'을 가지고 이야기를 써보고 싶단 생각을 처음에 했었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아직 못 찾은 상태에서 이미지를 찾던 와중에 그 그림을 본 거였고요. '두 사람한테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로 되돌아갔고, 여기에 멈춰진 세계라는 게 더해져서 이야기가 만들어졌어요"라고 설명했다.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는 전개 속에 시공간이 멈춘 세계를 디테일하게 구현해 낸 미장센이 특히 돋보인다. 어른이 된 성민이 등장하기까지 40여 분을 이끌어 가는 신은수와 이효제, 김단율, 정우진 등 아역들의 생동감 있는 연기도 엄태화 감독의 세심함을 거쳐 그 결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아이들을 처음 캐스팅할 때부터 소위 말하는 학원 연기를 하지 않는, 그런 친구들을 찾으려고 했었죠. 최대한 아이들에게 들어가서 이야기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달 정도 아이들을 매일 만나면서 쓰는 말도 관찰하고, 연기 리딩도 해보고요. 피자 먹으면서 얘기도 하고 친해지면서 막역해졌죠.(웃음)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현실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엄태화 감독의 생각이었다. 배경을 화노도라는 가상의 섬으로 잡은 것도 "이 친구들이 시간이 멈췄을 때 끝에 가서는 외로워지잖아요. 그 외로움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육지라고 하면 갈 데가 너무 많아지니까요"라고 전했다.

성민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이전까지 없던 인물이기에, 배우와 함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큰 그림을 그려나갔다.

"자유로웠던 것만큼 사실은 또 어려웠죠. '그만큼 외로움을 겪은 사람이 있을까?' (강)동원 씨랑 얘기도 많이 했고요. 어떤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많이 했어요. 사회화가 되지 않은 것이잖아요.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연령은 아직 어린 상태인, 그런 것이 복합적으로 표현되길 원했던 것 같아요."

촘촘한 구성은 한 꺼풀씩 벗겨볼수록 재미를 더한다. 어린 성민이 보육원 출신이기에 진짜 옷이나 가방은 거의 없이 물려받는 일상을 살 것이라고 여겼고, 실제 자신의 몸보다 훨씬 더 큰 가방을 메고 있던 어린 성민은 어른이 돼서도 그 가방과 함께 등장한다. 어른이 된 성민이 달의 변화를 보며 지난 시간들을 계산하는 모습도 세계관 설정을 할 때 너무 허무맹랑하지 않은 느낌을 주고 싶었던 엄태화 감독의 의중이 담겨 있다.

어른이 된 성민이 수린 앞에서 여러 벌의 패션을 선보이는 등 다소 무겁게만 흘러갈 수 있는 영화 속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곳곳에 웃음을 주는 포인트를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린 성민이 수린에게 소원을 말하며 "어른이 되면 185cm 이상, 서른 살 전에 100억 이상을 벌어서 부자가 될 거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어른 성민을 연기한 강동원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소년이) 어른이 됐을 때 소녀보다 머리가 더 하나 커져있는, 그런 그림을 생각했어요.(웃음) 아이였을 때는 여자애들이 남자애들보다 좀 크잖아요. 그래서 그런 게 명확히 드러날 수 있게끔 키가 큰 배우가 (연기)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실제로도 강동원의 존재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든든한 힘이 됐다.

"중간에 회차가 많이 오버가 됐었어요. '아이들이 섬 밖으로 나가려고 보트를 잡는 신을 대사로 처리하면 어떻겠냐'는 얘기들이 나온 적이 있어요. 고민하던 중에, (강)동원 씨가 얘길 하더라고요. 어린 성민이 나오는 신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자기(어른 성민)의 이야기잖아요. '이 장면은 내가 뒷부분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장면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그 장면을 찍을 수 있게 도움을 많이 줬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장면을 안 찍었으면 큰일났겠구나 싶더라고요.(웃음)"

엄태화 감독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를 만들 때) 주제는 굳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쓰고 나서, 나중에 그게 어떤 식으로든 담겨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편이죠. '가려진 시간'의 경우에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이걸 왜 썼을까'라고 생각하면,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제가 느끼는 것들이 무의식을 통해서 투영이 되죠. '서로 믿지 못하고 뭘 믿어야 될지 모르겠고, 또 어떤 얘기를 들어야 하며 누구에게 기대서 살아야 되지' 이런 것을 전혀 알 수 없는 불신이 있잖아요. 그것에 대한 제 희망사항과 또 반발심 같은 것이 이 이야기를 통해서 드러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려진 시간'을 통해 감독이라는 이름으로 영화의 세계에 한 꺼풀 더 깊이 들어갔던 날들이었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한참을 생각하다 "만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영화 만드는 것?"이라고 어렵게 입을 뗐던 엄태화 감독은 취미를 평생 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된 '행복한 사람'이 됐다. 자신의 영화를 보며 사람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역시 함께 자리하고 있다.

"저는 영화라는 것 자체가 '자면서 꾸는 꿈'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꿈에서는 제가 보고 느꼈던 것이나 냄새, 이런 것이 막 뒤섞여서 무의식을 통해 받아들여졌다가 다른 이야기로 표출이 되는 것 같거든요. 제가 만든 영화지만 제가 꾸는 꿈을 남들도 꿀 수 있게 하는 그런 것이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 제가 보이고, 영화 속 이야기를 보면서 저를 알아가는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쇼박스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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