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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원, 끊임없이 되새기는 '연기' 레이스의 출발선 (인터뷰)

기사입력 2016.01.14 06:45 / 기사수정 2016.01.13 21:05


[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진짜 꿈만 같아서 볼을 꼬집었다'고 얘기하면 오버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매 순간이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다. 배우 정석원은 영화 '대호'(감독 박훈정)와 함께 했던 날들을 이렇게 회상했다.

최민식, 김상호, 정만식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선배 배우들과 박훈정 감독의 묵직함,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를 그린 이야기까지 모든 것이 정석원의 마음을 두근거리고 들썩이게 했던 이유가 됐다.

'대호' 개봉 후 만난 정석원은 "대선배님들, 감독님과 함께 작업을 했다는 자체가 제 연기자 인생에서는 전환점이 됐던 것 같다"며 벅찬 마음을 전했다.

'대호'에서 정석원은 일본군 장교 류 역으로 등장했다. 류는 대호 사냥에 혈안이 돼 있는 일본군으로, 더 이상 총을 들지 않으려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분)과 대립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류가 극 중 인물들과 끝없는 갈등 관계를 드러내는 만큼, 정석원이 출연 배우들 각자와 호흡하는 모습은 더욱 도드라진다.

정석원은 "'대호'는 선배님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직접 몸소 체험하고 느끼는 부분이 가장 큰 작품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류 역할을 읽어봤을 때 정말 놀랐다. 그 역할이 이렇게 영화에서 큰 역할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선배님들이 연기하는 현장의 공기를 느끼고 흡수하고 싶어서 선배님들 옆을 지나가는 행인 역할이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큰 역할을 맡게 되니 설레면서도 부담감이 정말 커지더라"고 말을 이었다.

그만큼 그에게 '대호'는 모든 것이 살아있는 배움의 현장이었다. 정석원은 자신의 촬영분이 없어도 촬영장에 계속 발도장을 찍으며 그 곳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 했다.

실제 조그마한 노트를 품고 다니며 현장에서 보고 느낀 선배 연기자들의 모습을 차곡차곡 메모해놓았다는 정석원은 "선배님들의 모습에서 보고 느낀 것을 계속 축적해서 저도 연기할 때 그렇게 해 보고 싶다"며 누구보다 열정적일 수밖에 없었던 현장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2014년 12월 크랭크인해 지난 해 5월 크랭크업하기까지, '대호'는 6개월이라는 긴 여정을 보냈다. 전국 팔도를 돌며 일정이 진행되다보니, 선배 배우들과 숙소에서 뭉쳐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들도 자연스레 마련됐다.

정석원은 당시를 떠올리며 "선배님들과 정말 잘 뭉쳤다. 치킨, 과자, 짜장면을 시켜놓고 맥주 한 잔씩 하면서 축구경기도 같이 보고, 재미 삼아 내기도 했다. 그런 추억들이 정말 즐겁게 남아있다. 이런 과정도 서로 편해지는 작업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나 신선하게 다가오더라. '내가 언제 이런 대 선배님들과 같이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겠나'는 생각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것 같다"며 웃었다.


139분의 러닝타임 속에서 아쉽게도 류의 촬영 분량은 많은 부분이 편집됐다.

정석원은 "현장에서도 감독님과 최민식 선배님이 늘 얘기해주신 것이, 류의 아버지가 천만덕과 같은 포수대에 있었다는 설정이었다. 류는 출세욕과 욕망에 싸여있는 캐릭터라서 깊게 파헤쳐보면 가난이 너무나 싫고 피해의식에 쌓여 있는 인물인거다. 목표는 만주에 가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마에조노(오스기 렌)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극에서 류의 방에는 일장기를 제외하고는 텅 빈 느낌이 나는 것도 언제 자신의 자리를 뺏길지 모르는 류의 불안함을 표현해주는 부분이다. 자신의 목적에 가장 필요한 수단이 천만덕이니 그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마음속에는 외로움을 가진 인물이다. 담배를 태우면서 창문 바깥에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모습을 부러워한다. '대호'가 업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하지 않나. 제 촬영분이 편집됐다고 해도 그런 부분은 전체적으로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각자의 영역이 철저히 분담돼 있는 현장. 그 속에서 서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더 나은 장면을 위해 힘을 합치는 선배들과 스태프의 모습은 정석원에게는 '감동' 그 자체였다.

"처음 겪는 일이에요, 진짜"라며 목소리를 한 톤 높인 그는 "현장에서 감독님이 지시를 해 주시는 경험은 해 봤지만 선배님들과 함께 했던 것은 처음이었다. 다 자신의 영역이 있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제가 잘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 다른 사람이 쉽게 얘기를 못하는 게 있을 수도 있는데, 제게는 그게 내심 너무 고팠던 게 있던 거다"라고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이어 "혼내고 야단치는 사람이 하나 없는데도 더 무서운 게 바로 눈치가 보이는 거다. '내가 뭘 잘못했나' 이런 마음이 들 때의 그 침묵과 공기의 흐름, 이런 게 지금까지 '내가 뭘 잘했지 잘못했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대호' 촬영장은) 정말 속 시원 했던 거다. 최민식 선배님은 하나하나씩 짚어주시면서 아닌 건 아니라고, 잘한 건 잘 했다며 '다시 한 번 해보자'고 하시는데 정말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동네 삼촌 같은 분이시지만 일이 시작되면 정말 매섭고 날카롭고 또 정확하시다. 그러면서도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으실 수 있는 분이다"라고 덧붙였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감독을 비롯한 선배 배우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박훈정 감독님에게도 애교를 많이 부렸다"는 정석원은 "감독님이 의외로 상남자이시다. 아주 간단명료하시고 정확하신 스타일인데, 제가 애교를 부리면 얼마나 징그러우시겠나"고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굉장히 많이 했다. 저 나름대로는 저와 친했고, 예뻐해 주셨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다시 한 번 해맑은 미소를 보였다.

오스기 렌에 대해서도 "부관 역할을 하는 형 중에 진짜 일본 출신이 있었다. 그 형이 통역사 역할을 해줘서, 서로 계속 주고받으면서 소통했다. 강아지 사진이나 오스기 렌의 아들 사진을 보고, 그런 식으로 교감했다"고 얘기했다.


'대호'가 수치 면에서 아쉬운 성적을 거둔 점에 대해서도 정석원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같이 고생하고, 또 투자하신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상업적인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영화는 남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대호'는 앞으로 계속 남아있고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본다"고 털어놓았다.

새해를 맞으면서 그의 나이는 서른두 살이 됐다. 2015년의 시작과 끝을 모두 '대호'와 함께 한 그는 "제가 정말 부족한 것이 많지만, 발악을 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다. 다음에 더 잘 하면 되니까, 그래서 여한은 없다"고 말했다.

정석원은 최민식이 이야기한 '넓고 깊어져라'는 말을 늘 마음속에 담아둔다며 "서른두 살이 되면 그 그릇이 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삶을 살고, 또 무엇을 흡수해 나갈지, 또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 나갈지 기대가 된다"고 미소 지었다.

'배우'라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그는 냉정한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바람을 덧입혔다. 정석원은 "저는 제가 아직 연기자라고 생각한다. 배우라는 이름을 제 입으로 담고 싶지는 않다. 배우가 되고 싶다"며 자신의 앞에 놓인 '연기'라는 존재의 무게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예전에는 너무 쉽게 얘기한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다 거짓말이고 객기였던 것 같다. 지금은 느끼는 모든 것들을 다 축적하고 받아들여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버텨보자는 생각이다"라며 끊임없이 자신을 다잡을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매 순간 자신을 돌아보고 발전하기 위해 애쓰는 정석원의 연기 레이스가 다시 출발선상에 섰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 김한준 기자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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