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11.07 20:38 / 기사수정 2007.11.07 20:38
매의 비상
원래 미국에는 NBL(National Basketball League)과 BAA(Basketball Association of America)라는 2개의 프로농구리그가 있었는데, 1949년 NBL과 BAA가 합병되면서 NBL소속이던 애틀랜타 호크스의 원류인 트라이시티(Try-Cities) 블랙호크스도 이때부터 NBA에 자리 잡았다. 1946년 창단 당시에는 뉴욕州의 버펄로에서 연고로 출발했다. 1951~1954년의 밀워키 호크스, 1955~1967년의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를 거쳐 1968년 연고지를 지금의 애틀랜타로 옮기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팀명 '호크스(Hawks)'는 '매'를 뜻한다. 근데 사실은 조류 '매'를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1946년 NBL에서 창단 당시 미시시피 강에 위치한 세 도시(트라이시티스) 근처에 추장 블랙호크(검은 매)가 이끄는 인디언 부족 중 하나인 수(Su)족이 1831년 미 연방군의 인디언 토벌군에 저항한 "블랙 호크 전투"를 치렀기 때문에 블랙호크스라 명명했다가 후에 블랙을 없애고 호크스로 줄였다.(이하 호크스로 통일 표기)
호크스는 지금까지 챔피언 1회, 컨퍼런스 우승 4회를 차지했는데, 이들 우승 경력은 모두 1956~61년에 세운 기록들이다. (당시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는 '슈퍼 올스타' 밥 페팃이 골밑을 지키고 있었다. 페팃은 월트 쳄벌린 등장 이전에 리그 최고의 공격력(물론 수비도 뛰어났다.)을 가지고 있었다. 페팃을 앞세워 호크스는 레드 아워백의 최강 '셀틱 프라이드' 보스턴에게 맞섰다. 당시 보스턴의 리더였던 빌 러셀에게 커리어는 전반은 페팃, 후반은 쳄벌린과의 대결로 압축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페팃에 대해 알아보자. 1954년 리그에 데뷔한 페팃은 그해 입단 후부터 1964/65시즌 은퇴할때까지 11시즌 내내 올스타와 ALL NBA팀(퍼스트 10년 연속, 마지막 해 세컨드팀)에 선정되었다. 1954/55시즌 신인상을 탔고, 시즌 MVP 2회(1955/56, 1958/59), 올스타 MVP 총 4회를 기록한 명선수이다. 특히 올스타전은 페팃을 위한 무대였고, 지금까지 가장 많은 올스타 MVP를 수상했다. 통산(평균) 20880(26.4)득점 - 12849(16.2) 리바 운드 - 2369(3.0)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은퇴했는데, 은퇴의 이유는 "더 이상 농구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아무튼, 당시 대부분의 팀이 안 그랬겠느냐만, 호크스와 페팃에게는 불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셀틱스만 아니었어도 최소 2-3번은 더 우승했어야 할 전성기였다. 결국, 그들의 황금시대는 1957/58시즌 단 한 차례의 우승만을 허락했다. 그러나 1956/57시즌부터 이후 10년 중에 9년을 보스턴이 우승했는데, 이 거침없는 행진을 중간에 막은 것이 호크스와 페팃이었다는게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
휴먼 하일라이트 필름
페팃의 시대가 지나가고, 고요함이 찾아온다. 이렇다할 성적도, 흥행도 그다지 내지 못하고 조용히 지내온 호크스는 80년대 초반 전기를 맞이한다. 1982년 드래프트에서 조지아 대학의 도미닉 윌킨스는 1라운드 3순위로 유타 재즈에 지명이 되나 곧 존 드류+프리먼 윌리엄스+현금으로 자신의 모교가 있는 애틀랜타로 오게 된다. 그리고 그는 지역민들과 농구팬, 방송사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휴먼 하일라이트 필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연일 그는 멋진 공중묘기와 감탄이 터져나오는 덩크를 꽂아 댔다. 특히 그의 전매특허인 '윈드밀 덩크'는 그 팔이 돌아가는 궤적이 엄청나며, 덩크를 꽂을 때 임팩트가 뛰어나다.
올스타게임 덩콘에서 마이클 조던과의 맞대결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 양보에 양보를 해서 덩크에서 윈드밀만은 아마도 현역인 빈스 카터와 역대 No.1을 다투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도미닉을 단순히 덩커로 인식해선 절대 안 된다. 203cm의 스몰포워드인 도미닉은 호크스의 역대 득점과 스틸 리더이며, 통산 1074게임에 26668점을 기록하고 평균 24.8득점 6.7 리바운드 2.5 어시스트 1.28스틸 필드골 .461 3점슛 .319 자유투 .811을 기록했다.
비록 그의 커리어가 래리 버드,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이라는 희대의 괴물 3인방에 맞물려 단 한 차례의 우승이나 파이널 경험도, mvp를 수상한 적도 없고, 득점왕도 1985/86시즌 평균 30.3점으로 차지한 게 유일하지만, 그는 분명 레전드 스타이다.
1994년 호크스는 팀의 리더이자 프랜차이저를 노쇠화가 오고 있단 판단에 클리퍼스의 스타 대니 매닝과 맞바꿔 버린다. 이에 충격을 받은 도미닉은 클리퍼스, 셀틱스를 거쳐 급기야 그리스 리그로 떠나버리는데 이는 데이비드 스턴 NBA 총재(커미셔너)의 눈 밖에 나는 결과를 가져온다.
리그복귀도 꽤 힘들게 되었고, 이후 각종 행사나 명예의 전당 헌액 등의 핸디캡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후 유럽을 제패하고 도미닉은 다시 돌아와 샌안토니오와 올랜도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한다.
90년대 마지막 전성기?
도미닉을 보낸 호크스는 90년대 중반 다시 한번 중흥의 기운을 얻는다. 바로 덴버 너겟츠로부터 '마운틴' 디켐베 무톰보를 데려온 것. 이후 무키 블레이락 - 스티브 스미스 - 타이론 코빈 - 크리스찬 레이트너 - 디켐베 무톰보 - 6th.앨런 핸더슨으로 이어지는 강력수비라인을 형성하였다.
그들은 상대의 공격을 철저히 차단했으며, 이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스미스는 팀의 창으로써 상대에게 3점슛이라는 비수를 꽂아대던 시기였다. 레이트너(211cm)와 무톰보(218cm)의 골밑은 철옹성이었으며, 상대 에이스의 발은 무키가 락다운을 걸었다.
그러나 이전 도미닉 시대의 불운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시대는 90년대의 "제왕" 시카고 불스와 맞물리고야 말았다. 결국, 이 시기의 호크스도 컨퍼런스 파이널에도 못 올라가고 해체되고 만다.
이후, 호크스는 오랜 리빌딩을 겪고 있다. 물론 중반에 테리-로빈슨-압둘라힘-레틀리프로 플레이오프를 호언장담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이는 대실패작이었다. 이때 호크스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면 티켓을 환불해주겠다고 광고했고, 결국 시즌 종료후 시즌 티켓 소유자에게 환불을 해주었다.
지금까지 호크스는 8년 연속 플레이오프(PO) 탈락을 경험했다. 잘못하면 골든스테이트의 12년 연속 탈락 기록을 깨뜨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호크스에게는 지금 무한한 유망주들이 있기에 조만간 다시 한 번의 전성기가 찾아오지 않을까 한다.
07/08 애틀랜타의 현안
1. 조쉬 칠드레스 재계약
현재 많은 유망주를 안고 있는 호크스는 중복되는 선수가 많다. 일단 조쉬 칠드레스 - 조쉬 스미스 - 마빈 윌리엄스로 이어지는 스몰포워드 유망주 라인을 정리해야 한다. 호크스로선 이들을 다 안고 가기엔 벅찰 듯싶다. 올해 칠드레스를 재계약할지 여부가 관심
개선 방안 - A. 칠드레스를 잡고 올해 하는 것보고 셋 중에 고르던지, 다 안고 가던지 결정.
B. 현재로선 조쉬 스미스의 가치가 가장 트레이드 가치가 높다.
2. 라인업 정리
너무나 많은 유망주로 인해 라인업 짜기도 골머리다. 조쉬(마빈) - 호포드(셸던) - 자자(로렌즌)의 정상적 라인이냐, 칠드레스(마빈 or 스미스) - 마빈(스미스) - 호포드(셸던)의 스몰라인업이냐가 골자일 듯
개선 방안 - A. 정상 라인업이 낫지 않을까 한다. 우드슨 감독이 수비를 중시하는 감독이고, 지난 시즌 자자의 모습은 굿.
B. 스몰라인업을 가져가도 괜찮을 듯. 다만, 이러면 게임 조율을 잘해야 할 듯싶다.
3. 에이씨 로의 모습
이번 드래프트에서 3번픽으로 호포드를 지명하는 것은 당연지사. 관심은 11번픽으로 누굴 찍느냐였는데, 팬들의 오랜 바람대로 에이씨 로라는 준수한 포인트가드(PG)를 지명했다.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지
개선 방안 - A. 잘 해준다면, 조 존슨의 리딩부담은 덜어지고 슈퍼 슈팅가드(SG)로의 진화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B. 글쎄라면, 조 존슨이 PG 역할도 해주어야 하고 그렇다면 칠드레스가 슈팅가드로 자주 기용될 듯. 칠드레스가 얼마나 이번 시즌 슛거리를 늘려서 왔는지가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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