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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틸] 인천을 떠난 적자, '현대여 안녕'

기사입력 2007.10.06 02:30 / 기사수정 2007.10.06 02:30

편집부 기자

[엑스포츠뉴스=박현철 기자] 필자는 인천에서 20년 넘게 살았던 '인천 토박이' 출신입니다.

96년 현대 유니콘스가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해 프로야구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인천팀은 '약체'의 대명사였지요.

슈퍼스타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삼미 슈퍼스타즈를 비롯해, 맛이 없음에도 슈퍼에서 청보 라면을 집어들게 하였던 청보 핀토스, 1989년 사상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을 인천 시민들의 눈앞에 보여줬던 태평양 돌핀스까지. '짠물야구'라는 별칭은 얻었어도 '강호'라는 수식어는 붙일 수 없었던 인천의 프로야구팀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막대한 자금력을 자랑하던 현대는 달랐습니다. 첫 해부터 투수 최상덕(현 SK 와이번스)을 해태 타이거즈에 주고 '리틀 쿠바' 박재홍(현 SK)을 데려오며 타선의 한 축으로 만들었고 선수층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거침없이 타 팀의 선수들을 공격적으로 데려오며 팀의 구색을 갖추던 팀이었습니다.

그랬던 현대가 2007년을 마지막으로 그 간판을 내리게 됩니다. 인천의 야구팬들에게 유니콘스는 애증이 얽힌, 그리고 이제는 추억 속에 잠드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인천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기다

1996년 김재박 감독(현 LG 트윈스 감독)이 사령탑에 앉아 팀을 진두지휘한 현대는 '무서운 아이' 였습니다. 동산고-한양대 시절 프로급 투수로 각광을 받았으나 1995년까지 기대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하던 정민태는 현대 유니폼을 입고 15승을 따내며 이후 리그 최고의 투수로 성장합니다.

또한, 입단하자마자 첫 해 .295 30홈런(1위)-36도루를 기록, 국내 최초로 '30-30' 클럽을 개설한 박재홍의 활약도 눈부셨습니다. 박재홍의 활약이 얼마나 눈부셨던지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의 김성근 감독은 '타격 시 발이 타석을 벗어난다.'라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요.

첫 해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던 현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는 철벽 마무리 정명원이 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노히트노런'을 작성하며 시리즈 상대인 해태를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승 4패의 전적으로 아쉽게 첫 우승에는 실패하고 말았죠.

1997년 전신들이 익숙하게 주저앉던 7위를 기록한 후, 현대는 이듬해 인천 팬들의 숙원이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연안부두에서 도원 구장으로 날아오는 비릿한 새우젓 냄새 아래 현대 선수들이 LG를 꺾고 샴페인을 터뜨리며 팬들과 함께 흘린 기쁨의 눈물. 아직도 생생하군요.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한 한 축에는 쌍방울에 내야수 이근엽+포수 김형남+현금 9억 원을 주고 데려온 포수 박경완(현 SK)이 있었습니다. 또한, 시즌 중반에는 투수 박정현+가내영+현금 8억 원을 쌍방울에 주고 좌완 조규제를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물량 공세를 앞세운 공격적인 선수 영입. 유니콘스의 팬들은 부잣집의 배포에 기뻐했고 반대로 다른 팀의 팬들은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어쨌든 현대는 튼튼한 서까래를 더 세우며 최초의 '인천 연고 강팀'을 만들었습니다.

서울로 가기 위한 '일가창립 신고', 그러나

1999' 시즌 드림리그 3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현대는 이듬해 '서울로 가겠다.'라며 인천을 떠났습니다. '공부 잘하던 아들'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독립선언. 인천을 떠나버린 현대에 '부모'와도 같던 인천 팬들은 치를 떨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된 쌍방울 선수단을 이어받은 SK가 인천에 새로 둥지를 틀며 인천 팬들에게 새로운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적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죠. 인천의 야구 팬들은 현대에 증오심을 가지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현대는 수원에 세를 들고 '좀 있으면 서울로 간다.'라며 임시 거처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성적 좋고 주머니에 돈도 많던 현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충격에 휩싸입니다.

모기업의 경제 사정 악화, 그룹 분리 등으로 인해 졸지에 '빈털터리'가 되고 만 것이죠. 서울로 가기 위한 자금은커녕 졸지에 '더부살이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SK가 인천 시민에게 다가가며 완전한 인천 팀으로 발전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2001년 이후에는 1차 지명권까지 없어져 극심한 '내우외환'을 겪습니다.

자금난에 선수 영입 난, 게다가 수원시민들은 '이별'이 예정되어 있던 현대에 큰 사랑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3중고'에 시달렸던 현대. 그러나 타선과 투수진의 축이 크게 흔들리진 않아 2003', 2004' 시즌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루는 등 좋은 성적을 자랑했습니다.

2005년 김재박 감독의 '상암 야구장 병용화' 발언을 기억하십니까? 이는 현대 구단이 크나큰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2005년 5월 당시 현대는 페넌트레이스 7위에 처지며 자금력, 팬 동원, 성적 등 모든 면에서 뒤처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나마 믿는 구석이던 성적이 떨어지면 가뜩이나 자금난에 허덕이는 현대가 구단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김 감독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상암 야구장 병용화' 발언을 꺼내든 것입니다.

이는 김 감독의 '100% 진의' 였다기보다 구단을 언론에 더욱 노출하며 관심을 끌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김 감독은 2006년 현대의 지휘봉을 놓기 전까지 구단의 한계 기한을 더 연장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올 시즌 개막 전, 농협의 구단 인수가 없던 일이 되었고 'Prostate' 홀딩 컴퍼니라는 '유령 회사'의 인수 설 등이 터져나오며 선수들의 심리는 더욱더 불안해졌습니다. 확실한 동기 부여가 없던 현대의 2007년. 결국, 그들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새 주인이여, '빨리 오세요'

한국야구위원회(KBO)는 5일 수원에서 열리는 현대와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를 현대 구단의 마지막 날로 공식 지정했습니다. 이는 KBO의 현대 매각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의 역사는 5일 부로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현대 선수들까지 야구 인생을 끝내는 것은 아닙니다. 최다 경기 출장 기록(1955경기)을 갈아치우고 있는 노장 전준호를 비롯해 포수 김동수, 부활한 에이스 김수경, 2년 차 좌완 장원삼 등 현대에는 재능있고 보호해야 할 선수들이 많습니다.

구단이 없어지면 선수들은 승계 구단이 나올 때까지 개인 훈련 외에는 손을 놓게 됩니다. 다른 구단이 마무리 훈련 등으로 분주히 몸만들기에 들어갈 때까지도 인수 기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저 아까운 선수들은 제대로 된 몸만들기에 차질을 빚게 됩니다.

부질없는 가정입니다만 모두 확실한 동기 부여가 있었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도 있었던 선수들입니다. 하루빨리 선수단을 승계하는 기업이 나타나 코칭스태프, 프런트, 선수들이 앞날의 불안함에 몸부림치는 기간이 짧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현대 유니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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