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9 12:22
사회

진도여객선 사건으로 본 '역대 여객선 침몰사고'

기사입력 2014.04.16 18:36 / 기사수정 2014.04.16 18:36

조재용 기자
진도여객선 사고 모습 ⓒ YTN 뉴스
진도여객선 사고 모습 ⓒ YTN 뉴스


[엑스포츠뉴스=조재용 기자] 16일 오전 8시 30분경 인천-제주를 왕복하는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마다에서 전복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일어난 여객선 사건사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현재까지 여객선 침몰관련사고는 이번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를 포함해 모두 7번 발생했다.

최초의 여객선 침몰사고는 1953년으로 거슬러간다. 창경호 침몰 사고는 1953년 1월 9일 오후 10시 20분경 다대포 앞바다 거북선 부근에서 강풍에 의해 발생했다. 당시 창경호는 쌀 200가마를 싣고 있었으며, 선체도 20년 이상 된 낡은 화물용 범선을 여객선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사고 후 꾸려진 국회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구명보트 한 척 및 구명복 70벌 모두 본사 창고에 두고 다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고로 승선인원 236명 중 선장과 선원 3명 중학생 2명, 군인 1명을 제외하고 229명이 익사했다.

1963년에는 두 번의 여객선 침몰사고가 발생했다. 연호 침몰사고는 1963년 1월 18일 오전 10시경 전라남도 목포시 허사도 앞 해역에서 발생했다. 승객 정원인 86명을 초과해 과다 승객 141명과 곡물류 150가마를 실었고, 강한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항해하다가 발생한 사고였다. 이 사고로 생존자 1명을 제외한 140명 전원이 사망했다.

연호 침몰사고에 대한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인 2월 6일, 또다시 인천 여객선 침몰사고가 발생했다. 승객과 선원 270여 명을 싣고 인천 서쪽 3킬로미터 지점을 향하던 갑제호가 얼음과 부딪히면서 선실에 갇혀있던 승객 6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미군 항만 수령부의 발빠른 수송작전으로 인명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이어 1970년 12월 14일에는 남영호 침몰사고가 발생했다. 침몰의 직접적 원인은 승객정원과 적재정량의 4배가 넘는 화물적재량 초과였다. 당시 12~13일 이틀간 폭풍주의보에 의해 발이 묶여있던 승객과 화물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피해가 커졌다. 인명피해 326명이었으며 피해규모는 1억 700만원에 달했다.

극동호 유람선 화재사고는 1987년 6월 16일 오후 3시경, 관광객 86명(선장·선원 2명 포함)을 태우고 해금강 관광을 마치고 충무로 돌아가던 중 기관실 엔진 과열로 불이 나면서 발생했다. 노후 엔진으로서, 냉각기 계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음에도 무리한 운행이 원인이 됐다. 관광객 27명(남3·여22) 이 숨지고 8명이 실종, 51명이 구조됐다.

해상침몰사건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는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부안에서 발생했다. 정원 221명보다 141명을 더 태웠고, 짐이 가득 실려 있었다. 여기에 무리한 운행이 사고를 자초했고, 292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침몰 뒤 구조가 늦어지면서 특히 인명 피해가 심했다. 이 사고로 전북 부안군 파장금항에는 사고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위령탑이 세워졌다.

조재용 기자 jaeyong2419@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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