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극과 극인 두가지 소식이 같은날 들려왔다. 김기덕 감독의 열 아홉번째 영화 '뫼비우스'에 관한 이야기다.
26일 아침. 한국 영화계에 낭보가 날아왔다. 김기덕 감독의 신작 '뫼비우스'가 다음달 28일 개막하는 제 70회 베니스영화제 공식 부문에 초청됐다는 뉴스였다.
그러나 (정말이지) 아이러니하게도 이날은 '뫼비우스'의 비공개 찬반 시사회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글자 그대로 영화를 일반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에 '찬성'하는 지 '반대'하는 지 투표를 하는 자리였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뫼비우스'에 대해 6월에 한차례, 지난 16일에 또 한차례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내렸다. '제한상영가' 등급이란 '18세 이상 관람가' 보다 개봉 조건이 더 까다로운 등급이다. 성인들만 볼 수 있지만, 일반 극장에서는 상영할 수 없고 제한상영가 등급 전용 극장에서만 개봉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제한상영가 전용극장이 한 곳도 없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관객을 만날 수 없게 되는, 개봉불가 선언과 마찬가지다.
이에 김기덕 감독은 세번째 등급 심의를 제출한 데 이어, 과연 자신의 영화가 일반 성인 관객들이 볼 수 없을 정도인지 여부를 묻겠다며 비공개 시사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한국 영화계에서 최초의 일이다. 김감독은 만약 이 자리에서 찬반 투표를 한 결과 개봉 반대 투표수가 전체의 30%를 넘으면 자진해서 한국에서의 개봉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장마가 걷히고 여름 햇빛이 무자비하게 내리쬐는 금요일(26일) 오후 1시. 서울 홍릉동 영화진흥위원회 시사실 입구에는 '뫼비우스'의 찬반시사회에 참석하는 이들로 북적거렸다.
대부분 기자, 작가, 평론가, 감독 등으로, 이번 시사회를 주최하는 김기덕필름의 공지를 받고 사전에 참석을 신청하거나 초청을 받은 영화계 관계자 100여명이었다.
이들은 시사회장 입구의 데스크에서 김기덕필름이 사전에 양해를 구한대로 '절대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 발설하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이름과 서명을 남기고 나서야 어두운 시사실로 입장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이들의 손에는 A4 용지 한장이 들려있었다. '이 영화의 상영을 찬성하면 O, 반대하면 X를 그려달라'는 간단한 내용이 적혀있는 '투표용지'였다.
90분간의 '뫼비우스' 상영이 끝난 후 참석자들은 O 혹은 X를 그려 투표함에 넣었고, 곧이어 무대 위에 설치된 칠판에는 '바를 정(正)'이 하나둘씩 새겨지기 시작했다.
마치 장진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이 연출했을 법한, 실소가 터지는 현실 풍자씬과 오버랩되는 상황이였다. 베니스와 칸을 거론하고, 인간의 욕망과 인류의 기원에 대해 성찰하는 '뫼비우스'의 반대켠에서는 초등학교의 반장선거같은 의식이 치러지고 있다니.
결과는 찬성 93표, 반대 11표, 기권 3표. 거의 90%에 가까운 비율로 참석자들은 '뫼비우스'의 상영이 문제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사실 이 투표 결과는 영등위의 심의와 전혀 관계가 없다. 김기덕필름이 상영 철회의 기준으로 정해놓은 '30%의 반대'라는 기준도 모호하고, 투표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얼마만큼 객관성이 있는지도 다소 애매하다. 참석자 중 일부에서는 "무엇을 위해서 하는 투표냐"는 근원적인 질문도 나왔다.
그렇다고 이번 찬반 시사회가 무의미하지는 않다.
'뫼비우스'의 국내 상영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김기덕 감독은 "두번의 '제한상영가' 로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고, 밤새 살을 자르듯 필름을 자른다"고 공식 입장을 밝힐만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비공개 시사회를 통해 영화계 관계자들로부터 압도적인 찬성표를 받았으니 김기덕 감독의 어깨에는 힘이 실릴 것이고, 내달 초 세번째 심의 결과를 발표하게 될 영등위는 이번 투표 결과를 무시하기가 싶지 않을 것이다.
다음달 베니스영화제에서는 '뫼비우스'의 최초 버전이 상영된다. 김기덕 감독의 의도가 전적으로 반영된, 한 컷도 자르지 않은, 순수한 완성본이다. 영등위가 첫 심의에서 "포르노 동영상의 노출과 구체적이고 길게 묘사된 모자(母子)간의 성관계 장면이 비윤리적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해한다"고 의견을 덧붙인 버전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외국의 분위기를 빌려서 한국 영화계를 비하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러나 '뫼비우스'의 찬반시사회가 열리던 26일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어디서부터 시작된건지, 한국 영화 관객들의 수준을 낮춰보는 주체가 과연 누구인지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날이었다.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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