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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웜바디스'…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좀비로 변했네

기사입력 2013.03.25 12:59 / 기사수정 2013.04.11 20:07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성공하는 영화들 중 반드시 갖춰야할 요소 중 하나는 '독창적인 캐릭터'다. 이전에 자주 만날 수 없었던 인물, 혹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캐릭터를 창조하는 일은 흥행 영화에 날개를 달아준다.

이런 점에서 조나단 레비 감독의 영화 '웜바디스'는 성공한 작품이다. 좀비가 사랑에 빠졌다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진 이 영화는 '정통 좀비 영화'가 아니다. 공포영화의 한 줄기인 '좀비물'은 많은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장르다. 야비하면서도 우수에 젖은 '흡혈귀'나 포악하지만 슬픈 사연을 가진 '늑대 인간'은 서구 공포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친숙한 캐릭터다.

이와 비교해 좀비의 잔혹성은 한층 더 하다. 사고력을 상실한 '걸어 다니는 시체'인 좀비는 흡혈귀가 지닌 로맨틱함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또한 낮에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보름달의 기운을 받으면 늑대로 변할 수밖에 없는 '늑대인간'이 지닌 '양면성'도 결여돼있었다.

무리를 지어 사람을 잔혹하게 공격하는 좀비는 고어 호러물의 대표적인 캐릭터였다. 그러나 '웜바디스'에 등장하는 좀비는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죽은 자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지녔다는 점이 그렇다.

게다가 '웜바디스'의 주인공 좀비 R(니콜라스 홀트 분)은 핸섬하기까지 하다. 좀비의 전통적인 이미지는 얼굴이 일그러지고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R은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까지 갖췄다. 오로지 한 여자만 바라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남자, 여기에 꽃미남이기까지 한다면 좀비라도 당신은 사랑할 수 있을까?

이성과 감성을 소유한 좀비, 사랑까지 느끼다

좀비 바이러스가 심하게 퍼지던 어느 시대, 평범한 인간이지만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가 되어 버린 R은 무료한 나날을 살아간다. '웜바디스'는 'R'의 시선과 독백에 따라 진행된다.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어야하는 좀비의 생활방식에 R도 충실하다. 하지만 어느 날, 젊은 청소년들을 공격하던 중 금발의 아름다운 소녀인 줄리(테레사 팔머)를 만난다.

줄리를 본 순간 한동안 멈춰있었던 심장 박동이 뛰기 시작한다. 좀비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휩싸인 것이다. R은 다른 좀비의 공격을 받던 줄리를 구해낸다. 사방이 좀비로 우글거리는 지역에서 R은 줄리를 공항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어느 비행기 안에 숨겨주면서 "지금 함부로 나가면 위험하다. 이곳은 안전할거야"라고 말한다.



좀비인 R에 대해 줄리는 거부 반응을 느끼고 탈출할 일만 생각한다. R이 자리를 비운 사이 줄리는 탈출을 감행하지만 다른 좀비들에게 위협을 받게 된다. 이 상황에서 다시 한번 R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줄리는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이들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날로그 음악'이다. 무료한 일상 속에서 좀비인 R이 섬세한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있었다. R은 "난 CD음악은 싫어, 이러한 음색이 마음이 들어"라며 아날로그 음악 애찬을 늘어놓는다.

줄리는 R이 수집한 레코드들을 보고 깜짝 놀란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명반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R은 '휴머니즘'과 '사랑'을 주제로 한 음악에 빠져들면서 상실할 수 있었던 '인간애'를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감정은 줄리를 향한 사랑으로 발전했고 두 남녀의 관계는 점점 ‘연인’으로 발전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2013년 형 버전, 고리타분하지만 재미는 있다

한 여자 밖에 모르는 순애보 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꿈꾸는 남자, 여자의 짜증과 불만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상대방에 맞춰주는 남자, 내 여자는 반드시 내가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것을 헌신하는 남자, 현실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드라마와 영화 혹은 연애 소설 등에서 친숙하게 만나왔던 인물이다.

'웜바디스'의 주인공인 R도 이러한 '순애보'적인 캐릭터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착한 남자'를 '좀비'로 등장시키는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R은 자신이 인간이었던 시절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의 이름도 모르기 때문에 'R'이란 애칭도 줄리가 붙어줬다. 백지의 상태에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R은 그 누구보다 순수하다. 줄리는 인간들에게 찾아 볼 수 없었던 순수함을 지닌 R에게 끌리고 마침내 사랑에 빠진다.

잠시 헤어졌던 이들이 재회하는 장면은 매우 낯익다. 줄리는 자신의 방 발코니 위에 있고 R은 그 밑에서 줄리에게 자신이 왔다고 속삭인다. 그리고 줄리에 대한 애정을 솔직 담백하게 고백한다. 이들의 재회 장면은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유명한 발코니씬을 연상시킨다. 그동안 많은 영화에서 끊임없이 변주된 이 장면은 '웜바디스'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관계를 반대하는 줄리의 아버지(존 말코비치 분), 그리고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 여러모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지닌 컨셉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하지만 세익스피어의 작품처럼 '웜바디스'는 비극적이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결말이 너무나 통속적인 형식으로 끝난다는 점, 원작 소설에서 나타난 R의 철학적인 시선은 제거되고 두 연인의 자잘한 사랑 이야기에만 치중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웜바디스'는 좀비가 사랑에 빠진다는 매력적인 설정이 돋보이는 영화다. 또한 로맨스는 물론 액션과 스릴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오락영화다.

주인공 R로 분한 니콜라스 홀트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배우이기도 하다. 홀트는 과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소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엑스맨:라스트 클래스'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웜바디스', '잭 더 자이언트 킬러'에 출연하면서 탑 스타로 급부상했다.

한국 영화가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웜바디스'는 외화로는 최초로 올해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주인공 R의 내면세계가 영화보다 심도 있게 나타난 아이작 마리온의 원작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지난 14일 개봉된 이 영화는 100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사진 = 웜바디스 스틸컷]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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