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방송연예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100대 부호중 16위에 오른 '해티 그린'의 삶이 '서프라이즈' 를 통해 소개됐다.
14일 방송된 MBC '서프라이즈'는 '수전노 백만장자'로 악명이 높은 해티 그린의 생애를 추적했다.
1834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난 헤티는 할아버지에게 신문을 읽어주며 받은 용돈으로 저금을 시작했다. 그가 일생에 거쳐 축적하게 될 놀라운 '부'의 시작이었다.
1864년 750만 달러라는 거금을 상속받은 그는, 월 스트리트에 진출, 재산을 불려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놀라운 투자 감각으로 월스트리트 진출 1년 만에 월 120만 달러의 이익을 올렸다. 이후 채권투자로 승승장구한 해티는 텍사스 주 코네티컷 리버 철도회사의 주인이 되며 미국에서 제일 부유한 여인이 됐다.
그러나 제일 부유한 여인이 된 그의 생활은 궁핍하기만 했다. 늘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싸서 가지고 다니며 끼니를 해결했고, 세탁에 용이한 검은색 옷만을 입었다. 심지어, 자신의 두 자녀에게도 극단적으로 검소한 생활을 강요했다. 그는 자녀에게 새 옷을 사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는 다리를 다친 아들의 병원 치료비를 아끼려다가 상처를 방치해 아들의 다리를 절단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이러한 생활이 알려지자, 해티 그린은 '월스트리트'의 마녀로 악명을 떨치게 됐다. 그러나 이후로도 죽을 때까지 그는 자신의 지독한 생활방식을 고수했다. 말년에는 탈장으로 고생했지만 치료비 150달러를 아끼기 위해 끝까지 수술을 거부했으며 1916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결국, 그 지독한 절약정신으로 인해 해티 그린의 이름은 '세계 최고의 수전노 백만장자'로 기네스에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는 재평가가 이뤄지기도 했다. 헤티 그린이 아끼고 아껴 모은 자신의 재산을 자선사업에 썼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1912년 데이튼의 수재에서 수난민들을 위해 5천만 달러를 쾌척한 익명의 투자자가 해티 그린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또한, 해티의 따뜻한 모습을 목격한 이웃들의 증언도 있었다. 해티 그린은 아이들에게 1달러가 든 저금통을 선물로 주며 저금하는 습관을 장려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한 신혼부부는 자신의 아이 이름을 '해티'로 붙이기도 했다.
해티의 아들의 다리에 대한 것도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도 일었다. 세간에는 해티의 구두쇠적인 면모 때문에 아들이 다리를 잃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당시의 의학 시술로는 치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마녀'라는 오명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부를 축적하고,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한 해티 그린. 여성에게는 투표권도 주어지지 않았던 1800년대 중후반. 그는 남다른 경제관념과 투자에 대한 재능으로 결코 남성에 뒤지지 않는 강인한 여장부의 성공신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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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신비한TV 서프라이즈 ⓒ MBC 방송 캡처]
방송연예팀 이아란 기자 ent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