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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희 칼럼] 런던행을 긍정적으로 보는 '희망의 이유'

기사입력 2012.05.18 08:37 / 기사수정 2012.05.18 08:37

조영준 기자


내가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해 겨울 대표팀에 합류할 때까지 소속 학교에서는 내가 '여왕'이었다.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됐고 팀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넘쳐있었다.

그러나 내가 놀던 물보다 더 넓은 바다로 뛰어들었을 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제일 잘한다는 선수들이 모인 대표팀은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실력은 물론 경험까지 풍부한 언니들이 1,000m를 달릴 때 나는 100m를 뛰는 것도 힘들었다. 또한 볼을 보는 내 시야가 우물처럼 좁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언니들은 볼이 올 것을 미리 예측하고 움직였지만 나는 그저 볼이 떨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국제대회의 중요성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나타난다. 내가 평소에 활동하고 숨 쉬는 곳에만 안주하면 절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귀로 들으면 솔깃한 대단한 플레이가 있다. 이러한 플레이를 터득하려면 훈련만으로는 부족하다. 위력적인 볼의 실체를 알려면 직접 받아봐 깨달을 수 있다. 나보다 더 잘하는 선수들 '우리'보다 뛰어난 팀들과 부딪혀봐야 껍질을 깨고 더 큰 창공으로 날개짓을 펼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올림픽은 매우 중요한 무대다. 4년이라는 기간 동안 단 한번 열리고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팀들이 출전하기 때문이다. 성적을 떠나 그 자리에만 있어도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토대를 이뤄야 비로소 '꿈의 무대'로 갈 수 있는 계단에 오를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올림픽 무대를 두 번 밟았다. 1984년 LA와 우리나라에서 열린 1988년 서울올림픽에 출전했다. 결과는 두 대회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국민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참가한 서울에서는 하위권에 머물고 말았다.

그러나 두 번에 걸친 올림픽 경험은 좀처럼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단일대회와 비교해 올림픽은 '공기'부터가 달랐다. 드넓은 선수촌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들과 함께 한 추억은 너무나 특별했다. 이런 경험은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아시안게임에서 느낄 수 있지만 올림픽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올림픽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 '희망의 이유'

배구선수로서 올림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종목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현역에서 물러난 뒤 사회에 진출하면 올림픽 출전 여부가 그 선수의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메달까지 획득하면 그 가치는 더욱 상승한다.

올림픽 무대를 밟은 경험이 있고 메달마저 획득했다면 체육인으로서 대우 자체가 달라진다. 단순히 연금적인 부분을 떠나 '명예'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올림픽의 존재는 매우 크다.

이번 런던올림픽 출전에 도전하는 여자배구대표팀은 이러한 의미를 알고 있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졌다. 그리고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는 가혹한 현실을 맞이했다.

그 때와 비교해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기나긴 국내 시즌을 마친 선수들은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특히 상당수의 선수들이 서로 대표팀에 합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운동선수로서 올림픽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열정이 나타날 수 있었다.

4년 전과 비교해 지금의 상황은 한결 밝아졌다. 그리고 런던올림픽 출전이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도 높다. 객관적으로 4년 전과 비교해 '희망의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김연경(24, 터키 페네르체바)이라는 세계적인 선수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MVP에 등극한 선수가 우리 팀이라는 점은 대단한 장점이다.

두 번째는 서로가 열의를 가지고 대표팀에 합류했다는 점이다. 노장 선수들이 주축이 돼 올림픽 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세웠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세 번째는 우리보다 강한 상대인 중국과 세 번에 걸쳐서 실전 같은 경기를 치렀다는 점이다. 훈련 기간이 짧아도 수준 있는 팀과 실전 같은 경기를 치르면 큰 도움이 된다. 한 시간 반 동안 긴장감을 가지고 실전에 임하면 5시간 이상 연습을 한 것처럼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런던올림픽 출전은 한국 여자배구의 미래를 열 수 있는 초석


선수들의 발전은 팀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국가의 배구를 한 단계 올려놓을 수 있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국내리그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새로운 선수들과 대면한다. 그 상대가 자신보다 뛰어나다면 더욱 가치가 있다. 결과가 좋지 못해도 새로운 배구를 체험하면서 더 넓은 세계에 눈을 뜬다면 예전보다 성장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일본 리그를 거쳐 유럽까지 정복한 김연경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김사니(30, 흥국생명)와 정대영(30, GS칼텍스) 등 노장선수들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양효진(23, 현대건설)도 자신보다 더 크고 강한 선수들과 맞부딪혀봤기 때문에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다.

넓은 바다를 항해하면서 얻은 경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국제대회에서 경험을 쌓고 돌아온 뒤 국내리그에 복귀하면 자신이 발전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선수의 발전은 팀에 이익을 주고 더 나아가 한국 배구를 발전시킬 영양분이 된다.

19일부터 열리는 런던올림픽예선전은 매우 중요하다. 런던행의 꿈을 마음에 품고 있는 선수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김연경이라는 선수가 있지만 '내가 이 정도하면 김연경이 해주겠지'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기량이 출중한 선수가 있는 것은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선수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절대로 최상의 팀워크를 발휘할 수 없다. 모든 선수들이 자신의 몫을 다해주고 희생정신을 가진다면 생각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번 대표팀에는 노장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다. 나는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모인 점이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중요한 경기에서는 범실이 승패를 좌우한다. 코트에서 많이 뛰어본 선수들이 서로를 믿고 마음을 합친다면 중요한 고비 처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진천에서 후배들이 흘린 소중한 땀이 좋은 결실로 이어졌으면 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번 예선전은 쉽지 않은 여정이다. 그래도 희망을 품는 이유는 올림픽을 향한 열정이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의지가 하나로 똘똘 뭉쳐 찬란한 환희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사진 = 여자배구대표팀 (C) 권혁재 기자]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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