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4.11.19 03:04 / 기사수정 2004.11.19 03:04
과거 여자 캐스터가 스포츠 중계를 한다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이 등장한 이후로 여자 스포츠 캐스터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암묵적인 금녀 구역이었던 중계석이 이제는 뛰어난 여자 캐스터들의 등장에 의해 기존의 남자 캐스터들의 자리까지 위태롭게 만든 것이다. 그 선봉장에는 KBS SKY 스포츠 채널의 민구희 아나운서가 있다.
골프, 테니스, 비치발리볼 등 다양한 종목에서 부드러운 말투와 차분한 진행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녀. 어떻게 보면 쉽지 않았을 것 같은 스포츠 캐스터의 길을 그녀는 지금까지 걸어왔고 또 걸어가고자 한다. 과연 그녀와 스포츠 사이에는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아나운서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
좀 복잡하다. 우선 스포츠를 본격적으로 접했던 것은 대학 때였다. 이화여대 사회체육학과에 입학하면서 기존의 접할 수 없었던 조정이나 레포츠들을 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러다 4학년 때 ‘스포츠 보도론’이라는 과목을 듣게 되었다. 당시 그 수업을 듣고 난 뒤 기자 뿐만 아니라 방송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그러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부터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니고 언론 대학원까지 가게 되었다.
대학원 졸업 후 바로 아나운서 시험을 봤나?
그건 아니다. 시험을 많이 봤는데 잘 안되었다. 그래서 잠시 아나운서의 꿈을 접고 일반 기업체에 들어가게 되었다. 인터넷 사업팀이었는데 한창 인터넷 붐이 일던 시기여서 그 새로운 세계에 한동안 빠져 살았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가끔씩 아나운서라는 꿈을 잊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연히 KBS SKY 아나운서 공고를 보게 되었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어찌 보면 큰 결심 아닌가?
그렇다. 그 전 회사에서 대리까지 있다가 과감히 포기하고 꿈을 찾은 것이다. 그 때 깨달은 것이 있다.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꿈이 있다면 언젠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내가 입사했을 때가 27살 겨울이었으니까 대학 때의 꿈이 좀 돌아서 오긴 했지만 이루어 진 것이다. 정말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처음 봤을 때는 키도 크고 외모도 출중해서 배구 선수 출신인지 알았다.
선수 출신은 아니고 대학 입학 때 실기시험은 배구를 했다. 그리고 실제로 배구를 좋아하기도 한다. 이번에 개막하는 배구 프로리그에도 욕심이 나긴 하는데 기회가 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했던 중계 종목이 골프 아닌가?
그렇다. 처음 스포츠 중계를 했던 것이 골프이다. 물론 그 전에 유럽축구 하이라이트를 MC처럼 진행하기는 했지만 중계로는 처음이었다. 그 후로 2년 정도 했다. 그 뒤에 비치발리볼, 테니스, 포켓볼 등 많은 종목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종목은 골프이다. 처음 맡았던 종목이라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초원을 거닐면서 스포츠를 한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든다.
골프 외에도 다른 종목도 많이 했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은반의 스타들’이라는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다.
‘은반의 스타들’은 매년 12월하는 프로그램이다. 과거 국가대표로 활동했거나 유명했던 피겨스케이트 선수들이 이벤트 형식으로 연기를 보여주는 무대이다. 이외에도 여름이면 매년 비치발리볼 중계도 하고 있다. 특히 비치발리볼은 재밌는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중계할 때도 재밌었다. 사실 골프같은 조용조용한 중계만 하다가 비치발리볼처럼 소리지르는(예를 들어 ‘스파이크’) 중계가 처음에는 어려웠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그런 점 때문에 오히려 더 좋더라. 이외에도 포켓볼, 댄스스포츠도 중계했다.
특히 피겨스케이트나 댄스스포츠는 중계하기 어렵지 않나?
스포츠 중계라서 꼭 상황 묘사를 하라는 법은 없다. 물론 그런 부분도 필요하지만 특히 댄스스포츠 같은 경우 몇 바퀴 턴했다는 식의 중계보다는 그 상황을 시청자와 같이 즐기듯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자료 찾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내가 해설자 복이 정말 많다(웃음). 보통 해설자 분들께서 많이 도와주신다.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나 신문을 통해서도 자료를 찾는다. 시청자분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한번은 ‘은반의 스타들’할 때였는데 한 시청자분에게 메일이 왔다. 자신이 어떤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며 선수에 대한 자료를 보내준 것이다. 그 분을 통해서 유용한 사이트도 많이 알게 되었고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 되었다.
중계를 위해서 직접 배우거나 하진 않는가? 예를 들어 댄스스포츠같은...
골프 중계 같은 경우는 골프를 못하면 중계를 못한다는 얘기가 있더라. 물론 다른 종목도 접해보면 당연히 좋겠지만 골프는 꼭 필요하다는 말에 골프 중계 전부터 직접 배우기 시작했다. 댄스스포츠는 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오해할까봐 말았다.(웃음)
결혼했었나? 전혀 그렇게 안보인다.
올해 1월에 딸을 출산한 엄연히 대한민국 엄마중의 한사람이다.
그러면 경기 중계하다 늦게 들어가는 일이 많을 텐데 남편이 싫어할 법도 한데...
남편 직업이 기자여서 나보다 한술 더 뜨기 때문에 괜찮다. 서로 이해하는 부분도 많다.
혹시 스포츠 중계를 하면서 어려웠던 적은 없나?
주위의 분들이 도와주셔서 중계 외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없다. 다만 새로운 종목을 맡았을 때 그걸 준비하는 과정이 인고의 시간이다. 최근에 세계 로봇 축구 대회를 중계했었는데 생소한 종목이라 사실 부담이었다. 축구 중계도 해본 적 없는데 로봇 축구라니... 그래도 이렇게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스포츠 캐스터의 매력인 것 같다.
별명이 ‘아름다운 훌리건’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성격이 과격한가?
그 별명은 처음 방송국 들어왔을 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생긴 것이다. 제작진이 그냥 하면 심심하니까 닉네임을 정하자고 했는데 잉글랜드 는 훌리건이 워낙 악명이 높으니까 그 단어를 이용해 별명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별명이 왠지 마음에 든다. 하지만 실제 성격은 오히려 내성적이다. 출산 후에는 많이 바뀌었지만...
혹시 지금까지 했던 중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중계나 에피소드가 있나?
아무래도 처음 중계했던 골프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재밌었던 일도 있었다. 원래 당시의 골프 중계 캐스터는 내가 아니었다. 그런데 당초 예정되어 있던 아나운서가 갑자기 못하게 되면서 중계경험이 없던 내가 하게 된 것이다. 처음 해보는 생방송 중계. 그것도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중계 초기에는 많이 긴장했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지고 골프 특성상 진행도 느린 탓에 나중에는 긴장이 풀어지더라. 그런데 그 상황에서 경기를 찍기 위해 온 카메라맨이 졸린 나머지 잔디밭에 누워 자고 있는 것이다. 그걸 또 다른 카메라맨이 찍는 바람에 그 모습이 방송 화면 가득히 거의 10초 넘게 방영되었다. 중계하던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웃겼지만 억지로 참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에 농담도 잘 안하던 해설자가 심각한 목소리로 ‘아무래도 저 카메라맨 월급받기 힘들겠네요’ 하며 걱정을 하는 것이다. 거기서 그만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다행히 밤 늦은 시각이라 망정이지 낮시간이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혹시 가장 좋아하는 선수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선수 중에는 역시 타이거 우즈를 제일 좋아한다.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은 이금희 아나운서이다. 가끔 이금희 아나운서가 스포츠를 중계하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본다. 워낙 좋아하는 선배님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 분이 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웃음)
앞으로 맡고 싶은 종목이 있다면?
구기 종목을 맡아보고 싶다. 아직 우리나라에 구기 종목만큼은 금녀의 구역인 것 같다. 아직 여자 스포츠 캐스터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여자가 스포츠를 중계한다는 것이 매치가 안 된다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그 편견을 한번 깨보고 싶다. 최근에 보면 여자 스포츠 캐스터에 지망하고자 하는 분들도 많이 늘었다. 그 분들을 위해서도 성공한 여자 스포츠 캐스터가 나왔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다른 여자 캐스터들과 다 같이 열심히 해서 그런 선례를 남겼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우선 성공한 스포츠 캐스터는 그 사람하면 특정 종목이 떠오를 정도가 되어야 한다. 물론 나도 가장 애착이 가는 골프 중계에서 그런 위치에 서고 싶다. 하지만 특정 종목의 중계로 이름을 날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떤 종목이든 열심히 하고 싶다. 골프, 테니스 뿐만 아니라 로봇 축구, 댄스 스포츠까지 다 나에게는 재산이 된다. 이 재산을 바탕으로 나중에는 ‘전문 스포츠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로 서고 싶은 게 내 꿈이다. 단순히 작가가 써주는 원고만 읽는 앵커가 아니라 어떤 선수, 어떤 스포츠 관계자가 나와도 막힘없이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앵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종목을 두루 섭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중계든 그 맛을 살릴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 바쁜 시간 내줘서 고맙다. 꼭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항상 작년보다는 올해가 낫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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