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2-2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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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필로그] 안은진 7년만 복귀 '사일런트 스카이', 유리천장 깨부순 女 천문학자 (엑:스피디아)

기사입력 2024.12.23 12:50 / 기사수정 2024.12.23 18:42



(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활력을 불어넣어 줄 문화생활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또 혼자 보러 가기 좋은 공연을 추천합니다. 엑스포츠뉴스의 공연 에필로그를 담은 코너 [엑필로그]를 통해 뮤지컬·연극을 소개, 리뷰하고 배우의 연기를 돌아봅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궁금증과 호기심은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켜왔고,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헨리에타 레빗(안은진 분)은 그가 사는 마을, 국가, 지구를 넘어 먼 우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여성이다. 인류가 쌓아온 지식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인 ‘우리는 누구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위스콘신에 있지”라는 동생 마거릿(홍서영)의 대답에 헨리에타 레빗은 반짝이는 눈빛을 장착하고서 “우주에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여성은 기어코 우주의 크기를 측정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Henrietta Swan Leavitt, 1868-1921)의 남다른 업적과 인생이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에서 펼쳐지고 있다. 


헨리아타 레빗은 천문학자로서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1900년대 초 미국을 배경으로 여성에게 투표권도 허용되지 않았던 시대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묵묵히 앞길을 개척한 실존인물이다. 




하버드 대학교 천문대에서 사진 건판에 찍힌 관측 자료를 육안으로 분석하는 일을 하게 된 헨리에타 레빗은 계산하고 입력하고 기록하는 ‘하버드 컴퓨터’에만 그치지 않는다.

별들의 깜빡임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분석한 덕분에 세페이드 변광성의 광도와 주기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레빗 법칙’을 발견한다. 고요하기만 한 줄 알았던 우리 은하는 사실 더 거대한 우주를 구성하는 수많은 은하들 중 하나였다. 헨리에타 레빗의 발견이 없었다면 허블의 법칙(Hubble's Law)도 나오지 못했을 터다. 




단순히 개인의 과학적 발견만 다룬 극은 아니다. 레빗과 함께 하버드대 천문대에서 함께 일한 여성 동료들과의 유대를 담았다. 19세기 여성들이 겪었던 불평등과 그들이 꿈을 위해 싸웠던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윌러미나 플레밍은 일에 열정을 잃어버린 하버드대 천문대장의 제자 피터 쇼에게 이런 말을 한다. 헨리에타 레빗이 뭔가를 발견할 수 있는 건 주어진 일만 하지 않아서라고. 그래야 남들(특히 남자들이었으리라)이 다 누리는 기회의 끄트머리라도 겨우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여자라는 이유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망원경 중 하나였던 하버드 망원경을 쓸 수 없던 시대에서 열정을 꽃피운 헨리에타 레빗의 이야기는 조명을 받을 가치가 있다.



항성 분류법의 기준을 마련한 애니 캐넌(조승연), 뛰어난 광도 측정가인 윌러미나 플레밍(박지아)과 질투와 갈등이 아닌 응원과 지지가 깔려있는 여성 연대가 눈에 띈다. 초중반에는 불화를 겪지만 피아노 연주로 헨리에타의 연구에 영감을 주고 남자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교향곡을 쓸 결심을 하는 동생 마거릿과의 자매애도 돋보인다.



피터 쇼(정환)와의 사랑도 이야기의 큰 줄기다.

아무리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지만 피터 쇼가 헨리에타 레빗이 아닌 다른 여성과 결혼한 점은 그의 짧은 해명만으로 납득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사랑이 끝나도 존경하는 동료로 남은 두 사람의 모습은 여운을 남긴다.



우주, 천문학, 여성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차치하더라도 배우 안은진이 7년만에 복귀했다는 점에서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몸의 표현과 관련해 배우 전미도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 안은진은 주인공 헨리에타 레빗 역을 맡아 섬세하고 생동감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홍서영, 박지아, 조승연, 정환의 앙상블도 잘 어우러진다.

군더더기가 없으면서도 아름다운 천체를 담아낸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더불어 이날 공연은 베리어프리로 진행해 장애인들도 공연을 원활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수어통역사들이 무대 왼쪽 가장자리에 서고 무대 좌우 양쪽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한글자막 해설을 제공했다.

사진= 국립극단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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