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오승현 기자) "여배우는 출연할 수 있는 작품과 역할이 적어요. 그래서 한때는 남장하고 연기를 해볼까 생각도 했어요."
2018년 6월 27일 개봉한 영화 '허스토리' 주연 김희애가 여성 서사를 그리워하며 했던 말이다. 그런 김희애는 2023년, 넷플릭스 시리즈 '퀸메이커'로 성별을 지운 콘텐츠로 서사를 이끈다.
영화와 드라마, 각종 OTT 오리지널 시리즈에서는 남자 없이 잘 사는 센 언니들의 '여성 서사'가 넘쳐 흐르고 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여자친구로 등장하던 여성 배우들이 청부살인업체 직원, 기업 임원, 노동인권 변호사, 경력단절자, 워킹맘 등으로 서사의 중심이 됐다.
그간 큰 뜻을 이루는 남성들의 옆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해오던 여성 인물들이 원톱·투톱 주연으로 우뚝 서며 '남탕'이라고 불리던 한국 콘텐츠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성 간의 러브라인이 주가 되던 이야기들에서 더욱 풍요로워진 여성 서사 콘텐츠들을 짚어봤다.
■ 하나의 인물로 인정받는 여성들, 엄마도 주인공이 될 수 있어
국내 최고의 청부살인업체의 에이스이자 딸을 가진 엄마 길복순(전도연 분)과 20년 간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방황 끝에 포기했던 꿈인 의사에 도전하는 엄마 차정숙(엄정화)이 극 중 자신만의 서사를 선보이고 있다.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은 범접할 수 없는 실력으로 전설의 인물인 여성 길복순이 능력은 능력대로 인정받으며 딸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로 등장해 이야기를 끌어간다. 길복순이 애엄마라는 이유로 실력에 대해 무시를 당하거나, 누군가를 뒷받침하기 위해 등장하는 엄마가 아닌 서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다양한 액션 신을 선보이며 흥미진진한 기승전결을 이끈다.
JTBC 토일 드라마 '닥터 차정숙' 또한 엄마가 주인공이다. 차정숙은 의대를 졸업했지만 속도위반으로 아들을 낳고, 사고를 당한 아들을 돌보다 딸까지 가지며 자연스럽게 꿈을 포기한 전업 주부로 등장한다.
일명 '경력단절녀'로 살아온 그는 20년 전 포기한 전문의라는 꿈을 위해 레지던트부터 시작하는 도전기를 그린다.
그간 각종 콘텐츠에서 '엄마의 꿈'이란 자녀가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장치이자 자녀들의 효도 동기를 이루는 요소로 작용해왔다. 그런 콘텐츠 속 차정숙은 우선순위를 아이에서 꿈으로 바꾸며 남편의 무시를 딛고 일어서는 인물로 묘사되며 새로운 흐름을 이끌고 있다.
■ 여성 원톱도 좋지만…대세는 '연대'와 '워맨스'
여성 혼자 극을 이끄는 것에서 넘어 '콤비'로 '워맨스(워맨+로맨스)'를 선사하는 콘텐츠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메이커'는 대기업 전략기획실을 휘어잡던 황도희(김희애)가 잡초처럼 살아온 인권변호사 오경숙(문소리)를 서울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능력있고 강한 두 여성이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불리던 정치물에 제대로 뛰어들었다. 또한 극 중에는 김희애, 문소리 뿐 아니라 서이숙, 진경 등 다양한 여성 능력자들이 추가로 등장하며 '센 언니들'의 싸움을 제대로 보여준다.
김희애와 문소리는 각자의 목표를 추구하며 만났다가 다양한 일을 겪으며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연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준다. 특히 '퀸메이커'는 가장 약자로써 어두운 곳에서 사회악과 싸우던 여성들의 연대가 아닌 정치판과 기업 전략실에서 가장 강한 주류 역할들의 여성들의 '성별을 뗀' 연대로 세상과 맞선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SNS로 알콩달콩함을 자랑한 배우 송혜교과 한소희가 출연하는 '자백의 대가'도 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자백의 대가'는 살인사건을 둘러싼 두 여성의 '핏빛 연대기'를 담은 작품으로 송혜교는 소소한 행복을 꿈꾸다 삶이 바뀌는 미술교사 안윤수를, 한소희는 모두가 두려워하지만 안윤수에게만큼은 새로운 모습과 세상을 선물하는 신비로운 여자 모은을 연기한다.
두 여성의 연대를 주로 그리는 '자백의 대가' 또한 두 여자의 케스트리를 어떻게 보여줄지 많은 기대를 낳으며 편성도 확정이 나지 않았지만 두 여성의 호흡만으도로 끊이지 않는 화제를 모으고 있다.
■ 여자는 강하다…카리스마 넘치는 센 언니들
유리천장에 맞서는 여성부터 주체적인 여성서사를 그리며 성장하는 캐릭터들 또한 안방극장을 통해 대중을 만났다.
지난 2월 종영한 JTBC 드라마 '대행사'에서는 최초 여성 임원이자 유리천장이라는 한계를 딛고 최고의 위치를 향해 달리는 고아인(이보영)의 이야기가 담겼다.
감성적으로 표현되던 그간의 여자 주인공과는 달리 피도 눈물도 없는 '일 잘하는 상사' 고아인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성 임원들에게 견제를 당하는 상무에서 팀원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유리천장을 깨 가는 인물로 성장한다. '대행사' 또한 여성의 다양한 고군분투를 담은 서사와 기승전결이 완벽한 결말로 호평 속에 종영해 '여성 원톱'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어 ENA, 지니TV 드라마 '종이달' 또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첫 방송한 '종이달'은 숨 막히는 일상을 살던 여자 유이화(김서형)가 은행 VIP 고객들의 돈을 횡령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서스펜스 드라마로 남편의 무관심 속 살아가는 전업주부가 주체적인 여성으로 변화하며 생기는 이야기를 그리는 스릴러 드라마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남성이 주가 되어 극을 이끌고, 보조적인 역할을 하던 여성과의 러브라인에 무료함을 느끼던 요즘, 여성이 주가 되는 서사가 다양하게 등장하며 다룰 수 있는 콘텐츠와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고 있다.
"선택할 것이 많지 않아요"라며 작품 속 한정된 역할에 대해 토로해오던 여성 배우들, 더욱 다양해지는 시나리오를 통해 더욱 많은 도전을 선보이며 소비자의 즐거움과 K-콘텐츠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선보이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 = 엑스포츠뉴스 DB, 한소희, JTBC
오승현 기자 ohsh1113@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