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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오클랜드 입단', 야탑고 김성민 이야기

기사입력 2011.03.29 03:08 / 기사수정 2011.03.29 03:13

김현희 기자

[엑스포츠뉴스=수원, 김현희 기자] 지난해 봉황대기 8강전에서는 예상치 못한 ‘이변’이 연출됐다. 우승후보 광주일고와 ‘복병’ 야탑고의 경기가 바로 그러했다. 당시 유창식(한화 이글스)이 버티고 있던 광주일고 마운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난공불락’이었다. 반면 야탑고는 2학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기에 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내년 시즌’을 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야탑고에는 당시 4번 타자로 나섰던 포수 김성민(18)이 있었다. 마운드에는 ‘초 고교급 에이스’ 유창식이 버티고 있었지만, 김성민은 그러한 유창식을 상대로 결승 투런 홈런을 작렬시키며, 당당히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비록 팀은 준결승전에서 군산상고에 패하며 눈물을 흘려야 했지만, 김성민의 이름값은 이때부터 서서히 상승 궤도를 타기 시작했다.

그랬던 김성민은 올 시즌 고교 3학년 선수들 중 가장 먼저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를 잡기 위해 오클랜드가 내놓은 계약금은 51만 달러. 지난 2009년, 동산고 최지만이 시애틀과 계약했을 때 받았던 금액과 거의 비슷한 액수다.

그렇다면, 오클랜드와의 계약 직후, ‘예비 메이저리거’ 김성민은 미국 진출을 앞두고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미국 진출에 대한 솔직한 심정과 그의 자세한 ‘야구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한창인 수원야구장을 찾았다.

김성민과 유창식, 그리고 봉황대기의 추억

- 지난해 봉황대기 이후 참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못 본 사이에 무엇을 하며 지냈는가?

김성민(이하 ‘김’) : 솔직히 봉황대기 8강에서 유창식 선수를 상대로 홈런을 기록한 이후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것 때문에 내 마음속에서 ‘책임감’이라는 것이 커졌다. 그래서 동계 훈련 당시 다른 때보다 더욱 열심히, 실력 향상에 매진했다.

- 그런가? (웃음) 8강전 유창식과의 대결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바로 이 곳(수원야구장)에서 그를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지 않았는가?

김 : 내가 유창식 선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팀이 무너뜨린 것이다. 당시 감독님도 ‘유창식의 힘이 떨어질 때 승부를 걸자!’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이 먹혔기에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다. 생각대로 움직인 결과였다.

- 당시 인터뷰에서 ‘내년 시즌(2011년) 전관왕이 목표’라고 회심차게 말했다. 기억나는가?

김 :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이다. 그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한 경기 이겼을 뿐이다(주 : 야탑고는 유신고와의 주말리그 첫 경기에서 6-3으로 승리했다). 나머지 경기도 모두 싹쓸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주말리그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교실에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교복 입은 모습도 멋있을 것 같은데?

김 : (쑥스러운 듯) 사실 교복 입은 모습이 많이 어색하다. 운동복만 입다 보니 그런 것 아니겠는가. 멋있는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 특별히 좋아하는 과목이 있는가? 웬만한 선수들은 ‘체육’을 좋아하던데?

김 : 이제 영어를 좋아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 ‘수면’이었다(웃음). 교실에 들어가면 거의 잠만 잤기 때문이다.

- 그래, 영어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물어보자. 영어는 어느 정도 할 줄 아나?

김 : 정말 기본적인 것밖에 모른다. 이제부터 조금씩, 천천히 영어를 배우면서 실력을 쌓겠다.

김성민, 그리고 메이저리그

- 야구는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김 : 초등학교 3학년 11월 때부터였다.

- 원래 투수였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포수를 맡게 되었는가?

김 : 투수를 해도 나에게는 ‘제2의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제1의 직업’은 포수다. 그래서 감독님께 ‘포수로 고정을 시켜달라.’라고 말씀드렸고, 감독님도 흔쾌히 이를 받아들이셨다.

- 언제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었나?

김 : 중학교 때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덩치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덩치를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고 나니, ‘나도 저 덩치의 선수들과 맞붙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했다.

- 오클랜드는 예전에 이상훈(전 LG)이 잠깐 몸담은 바 있다. 본인이 이제 오클랜드에 입단한 두 번째 선수가 되었는데, 기분이 어떠한가?

김 : 상당히 설렌다. 아직까지 얼떨떨하다. 솔직히 ‘미국 간다.’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기사도 나오고 하는 것을 보니 ‘이제 진짜 가나보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 미국 진출을 선언한 이상, ‘라이벌’이 생겼을 법하다. 2009시즌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최자만과 신진호도 포수 아닌가?

김 :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선수는 아직 없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먼저 미국에 진출한 최지만/신진호 선수보다 먼저 메이저리그에 오르고 싶다. ‘자존심’ 문제 아닌가(웃음).

- 오클랜드와 계약했을 당시 ‘옵션’으로 내건 조건이 있는가?

김 : 나는 그저 ‘사인’만 했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잘 모르지만, 난 그저 미국으로 가서 열심히 운동만 하고 싶다.

- 미국으로 가면 많은 한국인 선수를 ‘적’으로 만날 수 있다. 아메리칸리그만 해도 남윤희(텍사스)를 비롯하여 정영일(LA 에인절스) 등이 있지 않은가.

김 : 재미있을 것 같다. 같은 한국인 선수를 만난다는 사실에 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대결에서는 절대 지고 싶지 않다. 자존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 오클랜드에는 스즈키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주전 포수가 없다.

김 : 그래서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덩치 큰 남미 선수들이라면, 내가 경쟁하기 힘들지 않겠는가(웃음). 하지만, 어디 출신이냐의 여부를 떠나 무조건 5년 이내에 빅리그에 오르고 싶다.

- 예전에 ‘김태균’을 롤 모델로 삼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지금도 그러한가?

김 : 그렇다. 김태균 선수처럼 강력한 파워를 지닌 선수로 거듭나고 싶다.

- 마지막 공식 질문이다. 김성민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김 : 나에게 야구란 ‘밧줄’이다.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이고, 내가 잘해야 가족들도 살지 않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야구)을 잘해서 꼭 성공에 이르고 싶다. 지켜봐 달라.

※ 김성민을 지켜 본 지인들의 이야기

야탑고 김성용 감독 : “(김)성민이의 가장 큰 장점은 파워다. 힘이 좋아 웬만한 타구를 담장 밖으로 넘길 수 있다. 정식으로 포수마스크를 쓴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포구 능력과 2루 송구 능력도 빼어나다. 본인의 메이저리그 진출 의지가 강한 만큼, 지도자로서 돕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오클랜드 김현섭 스카우트 : “역시 파워다. 파워에 큰 점수를 줬다. 지난해 봉황대기에서 두 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린 것이 스카우트의 계기였다. 또한, 본인이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이 정도 정신력이라면, 충분히 빅리거 자질이 있다. 물론 마이너리그에서 본인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사진=야탑고 김성민 (C) 엑스포츠뉴스 김현희 기자]



김현희 기자 SPORT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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