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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팬덤 시대의 모범 교과서’…BTS ‘작은 것들을 위한 시’ [K-POP 명작극장]

기사입력 2021.10.11 15:50 / 기사수정 2021.10.11 15:15



[K-POP 명작극장]은 여러 가수들의 레전드 무대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고자 만든 시리즈입니다.

어떤 부분이 훌륭해서, 어떤 부분이 팬들과 대중에게 감동을 줘서 ‘레전드 무대’로 평가받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다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엑스포츠뉴스 이정범 기자) 팬송이라는 단어를 아시는가.

팬송이란 주로 K-POP 아이돌이 팬들에게 헌사하는 노래를 말한다. 팬들을 향해 전하는 진심, 팬들을 향한 사랑 고백이 팬송의 메인이 되는데, 이에 객관적인 성적표와 무관하게 팬덤 입장에선 이 팬송들이 무척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방탄소년단(BTS)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feat. Halsey)도 명백히 팬송이라고 불릴 수 있는 노래다. 이 노래가 아마 K-POP 아이돌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흥행한 팬송이 아닐지.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2019년 멜론 연간 차트 3위, 2019년 가온 디지털 종합차트 연간 5위를 기록했으며, 한국갤럽이 조사한 2019년 올해의 노래 부문에선 1위를 차지했다.



최정상급 아이돌의 노래라고 해도 팬송은 그냥 팬들과 아이돌끼리만 아는 노래가 되기 쉽다. 이에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여러모로 이례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은 방탄소년단이 명실상부한 ‘국가대표 아이돌’이 된 것의 영향이 컸다. 특히 ‘BBMAs 2019’(2019 Billboard Music Awards)서 할시와 함께 무대를 선보이는 BTS의 모습은 “한국 가수가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이 정도 환호성을 받으며 공연하다니”라는 감탄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노래가 팬송이라는 점은 가사만 한번 읽어봐도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그중 리더 RM의 랩 파트인 “툭 까놓고 말할게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기도 했어 높아버린 sky, 커져버린 hall 때론 도망치게 해달라며 기도했어 But 너의 상처는 나의 상처 깨달았을 때 나 다짐했던걸 니가 준 이카루스의 날개로 태양이 아닌 너에게로”는 이 노래의 핵심 주제에 해당하는 문장이다.

그 어떤 K-POP 아이돌보다 높은 자리, 화려한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지만 우리는 위가 아닌 너(팬)를 향해 가겠다는 것. ‘작위시’의 영문명인 ‘Boy With Luv’에서 Boy가 방탄‘소년’단을 의미한다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는 해석이다.
 


가수 입장에선 한없이 태양에 가까운 곳이라 할 수 있는 ‘빌보드 뮤직 어워드’ 무대 위에 서서 “네가 준 이 날개로 너에게로 가겠다”라고 노래하는 BTS의 모습은 이 팀이 잘 되고 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를 강하게 느끼게 했다. 바로 ‘팬 대우’다.

아이돌 팬은 K-POP 시장에 없어선 안 되는 중요한 고객(소비자)이지만 “고객 대접을 잘 받고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보면 반례가 너무나 많은 존재다. 팬덤 기반 비즈니스가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2021년 현재에도 미흡한 부분이 많이 보이는 것이 사실.

대우 문제를 빼고 봐도 팬이란 아이돌과 관계에서 회의감, 혹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는 순간이 종종 있는 존재다. 그리고 그 여러 순간 중엔 아이러니하게도 ‘내 아이돌이 잘 되었을 때’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애’였던 내 아이돌이 슈퍼스타가 된다는 것은 나의 응원이 보답받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나와 ‘우리애’ 사이에 절대 건널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슈퍼스타인 내 아이돌에 비하면 나라는 존재는 극히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간인 이상 자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작위시’는 스타의 팬이라면 가지기 쉬운 본질적인 회의감, 의구심 등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작위시’는 4분 12초 동안 나(방탄소년단)에게 너(팬)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이고 소중하며 궁금한 존재인지를 설명한다.

방탄소년단은 “뭐가 널 행복하게 하는지 네(팬) 모든 걸 다 가르쳐줘”라고 말하며 “세계의 평화나 거대한 질서가 아닌 그저 널(아미) 지킬 것이다”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기꺼이 ‘작은 것’이라고 표현하며 자신들 역시 ‘큰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팬들과 자신들의 관계가 ‘대형스타’와 ‘일개 팬’의 관계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고 이 노래를 통해 단호히 표현한다.

자신의 잘남에 한껏 취해서 살아도 그 시간이 부족할 정도인 현재의 방탄소년단.

사실 현시점에 그들이 “우리가 너무 잘나서 성공했고 너희들은 우리만큼 재능이 없으며 내가 도달한 영역엔 너희는 절대 올라올 수 없다”는 식의 노래를 냈어도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대한민국엔 한 명도 없다.

또한 록스타들의 시대, 랩스타들의 시대를 경험해왔고 경험 중인 우리에게 압도적인 성과, 한껏 높아진 자존심(자존감, 오만, 자기애 등등)을 표현하려고 하는 노래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이에 방탄소년단이 ‘작위시’ 말고 록스타, 랩스타식 자기자랑을 ‘빌보드 뮤직 어워드’ 무대에서 양껏  했다고 해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더 높은 곳이 아닌 팬들을 향해 가겠다”라고 다짐을 하는 방탄소년단의 모습이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졌고, 이를 언젠가 한 번은 다루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번 글을 통해 그 다짐을 실천하게 됐다.

팬 기반 사업이란 아이러니하게도 누가 내게 부와 사회적 지위를 주는지 망각하기 매우 쉬운 사업이다.

엔터테인먼트는 말할 것도 없고 게임, 만화, 스포츠 등 팬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수한 산업들이 “누가 내게 날개를 주었는지”를 아주 쉽게 망각하곤 한다.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들여 팬사인회 찾아온 팬들한테 “아 진짜요?”만 남발하는 아이돌, 팬이 아니라 웹툰 플랫폼에서 돈을 주는 걸로 착각하는 웹툰 작가, 팬들에게 사인해 주는 것을 귀찮아하는 야구선수, 극악의 뽑기 확률을 가진 아이템과 스펙을 파는 데는 열을 올리면서 정작 고객 대우와 고객과 소통은 소홀히 하는 모바일 MMORPG 회사 등등.

이런 사례들을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하늘은커녕 동네 뒷산에만 올라도 한없이 오만해질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재확인하게 된다.

상기와 같은 사례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대한민국에서 ‘내 날개가 누구로부터 받은 것인지  망각하기 가장 쉬운 위치’에 올라간 이들이 전한 “지금의 우리를 있게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 잊지 않겠다”라는 다짐.

이에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명작’이라 부르며, 특히 팬 산업 종사자들(하이브 포함)이 들어야 하는 곡이라고 정의한다.

사진 = 빅히트 뮤직-방탄티비-한국갤럽

이정범 기자 leejb@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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