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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PEOPLE] 최신춘의 가장 보통의 날들

기사입력 2011.01.23 17:05 / 기사수정 2011.01.23 17:05

editor 기자

(BREAK Vol.3) “모든 평범한 사람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만드는 영상에는 가장 보통의 날들이 담겨 있고 그 안에는 특별함이 숨어 있다. 25살의 대학생 감독 최신춘과 함께한 가장 보통의 하루, 즐거웠던 순간들. editor 진현주 / Photographer 김미진



 

최신춘 감독과의 첫 만남은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2010년의 봄날의 초입이었다. 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개막작으로 선정된 그녀의 작품 <미얀마 선언>을 보게 된 것. 20대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미얀마 선언>은 정말이지 예상 밖의 다큐멘터리였다. 생각보다 씁쓸하지 않았고 생각보다 진지했다. 하지만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슬그머니 웃고 있지만 바라보아야 하는 대상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직시하는 곧은 힘이 그녀의 작품 안에 있었다.

최신춘 감독의 이력은 조금 특이하다. 영화감독이라고 하면 대부분 영화를 전공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녀는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서는 법을 공부했다. 영화를 제외한 다른 세계를 알고 싶었고, 다른 분야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었기에 법대를 선택했다고 하는 그녀.

“계속해서 영화만 공부하면 그 안에 갇히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혀 관련 없는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이 감독으로 데뷔해서 멋진 영화를 만들어내는 일도 많죠. 영화를 많이 봤다고 해서 영화를 잘 만드는 것 같진 않아요. 영화라는 것에는 보수적인 측면이 있고 클래식을 소중히 여기는 면이 있어서 잘못하면 이전 것을 답습하게 될 수 있거든요. 오히려 다른 분야를 경험하면서 그 안에서 다양한 생각과 영감을 얻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평범한 사람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작품의 소재를 일상 속에서 찾는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재미있는 순간순간을 경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적처럼 여겨지는 일들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최신춘 감독이 고등학교 때 연출했던 단편 영화 <오렌지 마말레이드>, <부기우기> 그리고 다큐멘터리인 <알바당 선언>과 <미얀마 선언> 역시 일상의 사소하지만 특별한 에피소드에서 출발한 작품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작품들은 소박하면서도 친근한 매력을 풍긴다. 특유의 재기발랄함도 최신춘 감독만의 매력이다. 이는 제목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다큐멘터리 <미얀마 선언>의 제목은 ‘미안하지만 우린 아마 안될거야’라는 장난스러운 말을 줄인 것에서 탄생했다.

졸업을 앞둔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가 머리에 스치는 생각을 토대로 시작하게 된 <미얀마 선언>에는 특정한 주제가 없다. 친구들과 노조를 만들어 사장님과 협상을 하는 <알바당 선언>과는 달리 명확한 주제의식이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우리의 모습을 다룬 작품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이미 차고 넘친다.

그녀는 굳이 그 주제를 내세워 수많은 ‘88만원 세대’작(作)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미얀마 선언>을 통해 그녀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 20대, 아마 잘 안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슬프지만 인정하자고. 그리고 조금 더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살아가자고.

험난한 세상에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경쟁만 한다면 우리들에게는 어떠한 희망도 없을 것이다. 최신춘 감독은 우리 20대가 ‘88만원 세대’라는 불쾌한 별명을 스스로 버리기를, 자기 자신과 세상을 조롱하되 희망을 잃지 않는 현명한 비관주의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있는 그녀는 <행운동 껌소년>이라는 새로운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이번 영화의 배경은 달동네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행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관악구 봉천동이며 주인공은 남자 중학생이다. 남자와 아이 사이인 중학생 ‘소년’들과의 촬영이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최신춘 감독의 얼굴에서 즐거움이 뚝뚝 묻어났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문득 그녀에게 있어 영화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졌다.

"제게 다큐멘터리는 삶의 태도 같은 거고 영화는 꿈이에요. 다큐에서 보는 사람을 가르치려는 계몽적인 태도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다큐멘터리라고 꼭 심각할 필요는 없죠. 진솔하면서도 재미있는 작품들도 많아요. 저는 목적을 지닌 다큐멘터리 같은 삶의 태도를 가지면서 꿈을 찾아 살아가고 싶어요.”

그녀 스스로가 바라보는 ‘최신춘’ 자신은 성실하고 철저한 사람이다. 마감과 같은 시간 약속은 꼬박꼬박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성실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한 번에 대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작은 규모의 영화라도 꾸준히, 계속해서 만드는 것이 훗날 자신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는 그녀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신춘 감독에게 영화제는 ‘소통의 창구’다. 작품을 본 관객들의 피드백과 느낌을 교환하는 것이 즐겁고, 자신의 영화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기에 영화제에 참석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녀에게 올해 2010년은 참으로 보람찬 해였다. 많은 영화제에 나갔고, 특히 <미얀마 선언>의 관객들을 영화제를 통해 만난 것은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최신춘 감독은 얼마 전 열린 ‘서울국제 초단편 영상제’에서 <가장 보통의 후라보노>로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오랜 시간 공들인 영화 <행운동 껌소년>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 2010년이 가기 전에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최신춘 감독. 그녀는 장르에 개의치 않고 다양함과 재미를 추구하는 감독으로 관객들에게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에너지로 매 순간을 채워나가는 재능 있는 이 젊은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자.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그녀의 작품들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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