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1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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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그의 결정을 존중하고 싶다

기사입력 2006.05.13 07:36 / 기사수정 2006.05.13 07:36

손병하 기자
그 상황에서 왜 그렇게 욕심을 냈어야 했을까? 팀이 2-1의 리드를 지키고 있었던 경기 후반 상황. 뒤쫓아가더라도 공을 잡기는 힘들었는데, 왜 굳이 무리한 방향 전환을 하며 그 공을 잡으려 했을까? '성실하지 않다' '게으르다'라는 이동국을 향한 우리의 시선이 결국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동국, "월드컵 포기할 수 없다!"

지난 5일 열렸던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경기 후반전에서 이동국은 인천 진영으로 쇄도하다가 자신에게 연결된 볼이 뒤쪽으로 흐르자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순간 오른쪽 무릎이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이동국은 그라운드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틀 뒤 검사 결과가 나올 때만 해도 무릎 전방 십자인대의 부분 손상 정도로만 알려졌지만, 10일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회 윤영설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윤 위원장은 정밀검사 결과 '파열'에 가까울 정도로 '오른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크게 손상을 입었다고 밝히며 부상의 심각성을 알렸다.

무릎 전방 십자인대는 수술과 안정적인 치료를 병행한다면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정상적인 몸 상태로 회복할 수 있지만, 수술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무릎 관절이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연골 및 반월상 연골판이 손상되면서 퇴행성 관절염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자칫하다간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부상인 것이다.

부상을 당한 이동국은 월드컵 출전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히며 수술 대신 재활 치료를 통해 월드컵에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선수 생활에 커다란 악영향은 물론 자칫 선수 생명까지 걸어야 하는 위험한 선택이지만, 이동국은 월드컵을 택한 것이다.

이동국은 지난 2002년 한ㆍ일월드컵에서도 히딩크 감독의 전술적 틀에 부합되지 않아 대표팀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부상이었다. 이번에는 지난 2002년 월드컵 엔트리에 탈락한 아픔을 씻고도 남을 만큼 독기를 품었지만, 또다시 그라운드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7년 전인 1999년, 이동국은 북중미 골드컵 참가를 앞두고 무릎 연골 부상을 당했었다. 어린 나이에 많은 걸 보여주고 싶었던 이동국은 주위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전에 출전하여 경기를 치르고 말았다. 그 결과 이동국은 2000시즌 K-리그 전반기에 출전하지 못하며 6개월 동안 재활에 전념해야만 했고, 무섭게 성장하던 10대 유망주는 그렇게 한풀 꺾이고 말았다.

적지 않은 축구인들은 만약 이동국이 그때 적당한 치료와 재활에 매진했다면, 아마 지금의 이동국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6개월이 넘는 공백은 한창 성장하는 어린 선수에게는 너무나 긴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의 결정에 조용한 지지를 보내고 싶다

7년이란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 많은 역경과 아픔을 딛고 비로소 힘찬 날개짓을 하려던 이동국에게 또다시 악령 같은 부상이 찾아왔다. 이번 부상은 그 어느 때보다 가슴 아프고 충격적이었다. 월드컵 본선을 불과 두 달 남짓 남기고 당한 '무릎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란 중상을 당하고만 것이다.

다행히 월드컵을 완전히 포기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동국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선택이 주어졌다. 선수 생명을 걸고 월드컵에 출전하느냐, 아니면 월드컵의 꿈을 접고 수술대에 오르느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십자인대 파열은 수술과 재활 치료가 최우선되어야 하는 중상이다. 더군다나 축구선수인 또, 아직 갈 길이 더 많이 남은 이동국의 장래를 위해서도 이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내려져야 할 결정이다. 또, 회복되더라도 부상 이전의 기량을 되찾기 힘들어 전체적인 대표팀 전력에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이동국이기에 입으로는 절대 불가를 외치면서도 가슴 한 켠에서는 그의 결정에 조용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토록 많은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죽지 않았던 이동국이다. 추락해가는 많은 축구 천재들 사이에서 결코 비운의 천재가 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던 이동국이었다.

그에게 이번 월드컵은 남들처럼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그런 월드컵이 아니다. 월드컵에 대한 열망이 단순히 월드컵 경기에 출전하여 골을 넣고 승리의 기쁨을 맛보겠다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이동국에게 월드컵은 가슴 시린 한이고 눈물이고 원망의 대상이었다. 선수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월드컵은 이동국이 꼭 넘어야 할 그리고 꼭 이기고 싶었던 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재활 치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최근 이동국이 보여주었던 절정의 경기력을 회복할지도 미지수다. 그리고 지난 1999년 그러했듯이 돌이킬 수 없는 악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을 또 다시 포기하면서 그가 받아야 할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면, 차라리 부서지더라도 한을 풀었으면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이동국 개인에게도 물론이거니와 한국 축구대표팀에게도 매우 몹쓸 생각이지만, 이번엔 이동국의 결정을 존중하고 싶다. 그리고 그의 결정이 잘못되지 않은 것이었음을 보여주길 간절히 소망하고 싶다.


손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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