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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란 "가늘고 길게 가는 게 꿈인데, 너무 유명해졌어요" [낡은 노트북]

기사입력 2021.03.14 10:00 / 기사수정 2021.03.14 23:29


[낡은 노트북]에서는 그 동안 인터뷰 현장에서 만났던 배우들과의 대화 중 기사에 더 자세히 담지 못해 아쉬웠던, 하지만 기억 속에 쭉 남아있던 한 마디를 노트북 속 메모장에서 다시 꺼내 되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저는 항상 얘기하지만 죽을 때까지 연기하는 것,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 꿈인데 지금 너무 유명해졌어요.(웃음) 작품이 잘 안되면 저를 다시 안 불러 줄까봐 그런 게 불안했고, 주연을 하는 것도 너무 부담스러웠던 것이에요. 어느 포지션에도 어울릴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죠." (2019.05.02. '걸캅스' 인터뷰 중)

"저한테 왜 이러세요~" 지난 달 열렸던 제41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생애 첫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배우 라미란은 웃음과 울먹임이 오가는 수상 소감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례적'이라는 평이 있었을 정도로, 코미디 영화였던 '정직한 후보'라는 작품으로 주연상을 수상한 것에 더욱 많은 시선이 쏠렸었죠. 라미란은 거짓말이 제일 쉬운 3선 국회의원 주상숙 역을 통해 맞춤옷을 입은 듯한 리얼한 연기로 웃음과 흥행을 동시에 이끌었습니다.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로 데뷔 이후 코미디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막힘없는 연기를 소화해 온 라미란이 이뤄낸 값진 결실이었죠.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작은 역할부터 차곡차곡 쌓아오며 뚜벅뚜벅 걸어온 라미란의 영화 첫 주연작은 2019년 5월 개봉한 '걸캅스'였습니다. 주연으로 함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작품들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정말 온전하게 주연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고 나섰던 것은 '걸캅스'가 처음이었죠.

당시 '걸캅스' 개봉을 앞두고 만났던 라미란은 그 해 45세였던 자신의 나이를 언급하며 "나이 마흔 다섯에 첫 주연을 하게 됐다"며 특유의 넉살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른 오전부터 현장에 모인 취재진을 보며 놀란 눈으로 자리에 앉았던 라미란은 테이블 위에 놓인 녹음기를 들고 "아, 아, 마이크테스트"라고 목소리를 내면서 엉뚱한 매력으로 웃음을 전하기도 했죠.

라미란의 유쾌함 덕분에 화기애애한 대화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48편의 작품에 출연해 온 끝에 첫 주연까지 나서며 꾸준히 버텨 온 노력을 인정받았지만 그만큼 높아지는 관심에 대한 책임감, 또 부담감까지 그 경계에서 계속 고민하고 있는 속내도 엿보였고요.

"주연이라는 것이 너무 부담이 됐어요. 그런데, 그 부담을 계속 안고만 있으면 정말 제가 제 명에 못 살 것 같더라고요"라는 너스레가 이어졌습니다. 자신의 노력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현장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는 이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부담의 마음을 잊자는 생각이었죠.


'걸캅스'는 48시간 후 업로드가 예고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발생한 뒤 경찰마저 포기한 사건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뭉친 걸크러시 콤비의 비공식 수사를 그린 영화였습니다. 라미란은 민원실 퇴출 0순위 주무관이 된 전직 전설의 형사 박미영 역을 연기했죠. 레슬링 선수 출신인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뚫고 액션까지 남다른 공을 들였습니다.

액션 도전 소감을 묻는 말에도 "소질은 있는 것 같아요"라며 시원하게 인정하는 답변으로 웃음을 더하며 그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죠. "45년을 써 온 몸이 이러니까, 조금 힘든 부분도 있었죠. 김옥빈 씨나 김혜수 언니처럼 멋진 태로 나오고 싶었던 마음이었는데, 더 연로해지고 힘들어지기 전에 또 해봐야하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끝까지 기분 좋은 너스레를 더했습니다.

인터뷰 말미 라미란은 다시 한 번 조심스레 속내를 꺼냈죠. "저는 항상 얘기하지만 죽을 때까지 연기하는 것,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 꿈인데 지금 너무 유명해졌어요"라며 웃었습니다.

"주연을 한다고 해도, 작품이 잘 안되면 저를 다시 안 불러 줄까봐 하는 것들이 불안한 것이죠. 저는 어느 포지션에도 갈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이 꿈이었거든요"라고 웃음 속 진지한 마음 속 말을 전한 라미란은 대선배 김혜자를 보며 이전에는 없었던 롤모델이 생겼다고도 말했습니다.



"김혜자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도 갖게 됐어요. 정말 좋은 작품들 속에서 또 그것을 잘 해내시잖아요. 진짜 부럽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이제는 늘 제게 시험의 장이 열리는 것이잖아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나아갈 수도 있고, 후퇴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도 많은 분들이 좋게 평가해주시고, '언니처럼 될 거에요'라며 저를 응원해주던 후배들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저라는 존재가 그들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정말 말로가 나쁘지만 않게 잘 간다면, 꾸준히 달릴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주위를 밝히는 기분 좋은 에너지로 밝은 모습이 유독 더 드러나 보이는 라미란이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감정 연기에서도 그동안 쌓아온 내공을 톡톡히 드러내 온 그입니다. 문득 떠오르는 한 작품은 2016년 개봉했던 영화 '덕혜옹주'로, 당시 친일파들의 횡포로 덕혜옹주(손예진 분)와 강제로 헤어지게 되는 장면에서 보여줬던 먹먹한 표정 연기는 누구보다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배우 라미란'의 진가를 보여준 작품 중 하나라고 꼽고 싶습니다.

영화 주연 데뷔를 '시험의 장'이라고 말했던 라미란은 순위를 매길 수 없는, 정답이 없는 연기의 세계에서 지금까지도 그렇게 자신만의 개성 있는 길을 꾸준히 걸어 나가는 중입니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 당시 "내년에도 여러분의 배꼽도둑이 되겠다"며 마지막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던 라미란은 이후 '정직한 후보2' 출연 소식을 알리며 다음 행보를 예고했죠. '시민 덕희' 등 개봉을 앞둔 영화까지 앞으로도 계속해서 라미란의 얼굴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라미란은 본업인 연기는, 물론 예능에서도 소탈한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왔죠. '언니들의 슬램덩크'(2016)에서는 흥 많은 라미란을, '나는 차였어'(2020)을 통해서는 캠핑 마니아인 인간 라미란의 얼굴을 조금 더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올해 초에는 SNS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며 친근한 입담과 사진, 동영상으로 일상까지 전하며 대중과 소통해오고 있죠. 라미란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이유를 영상으로 남기며 "'내가 어떻게 사는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나는 늘 이런 말을 뱉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순간이 그저 잊혀져 가는 게,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그냥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난 어차피 얼굴을 팔고 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인데, 사실 더 창피할 것도 없다"고 현재의 삶을 대하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연기 활동과 어우러지는 다양한 일상까지, 어느 순간 우리의 곁에 조금씩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온 '사람 냄새 나는 배우' 라미란의 '길게 갈' 다양한 행보를 그렇게 계속해서 주목하게 됩니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DB·영화 스틸컷·청룡영화상 사무국, 라미란 인스타그램·유튜브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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