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베이비 박동희 사망
[엑스포츠뉴스 = 장강훈 기자] 1992년 한국시리즈 MVP 출신 박동희 선수가 오늘 새벽 서른아홉 해를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
부산고 출신인 박동희는 고교 시절부터 150㎞를 넘는 강속구를 앞세워 최동원-선동열을 잇는 대표적인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85년 봉황대기에서 그가 기록한 '방어율 0'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고려대에 진학한 뒤에도 확고한 국가대표 에이스였다. 토론토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시점도 이때였다.
그러나 박동희는 1990년 토론토 블루제이스로부터 입단 제의를 뿌리치고 고향팀인 롯데의 품에 안겼다. 당시 최고 계약금인 1억5200만 원을 받은 그는 프로 마운드에 서자자마 최고 시속 155㎞ 광속구를 던졌다.
데뷔 초 성적은 훌륭했다. 첫해 10승 7패 7세이브를 거뒀고, 데뷔전에서 10탈삼진을 기록(대 삼성전)하며 신인 데뷔전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91년에는 14승 9패 3세이브를 거두며 팀의 주축으로 인정받았다. 1992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당시 이정훈-이강돈-장종훈-강정길 등으로 이어지는 빙그레 이글스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상대로 2승1세이브를 거두고 최우수선수(MVP)에 뽑히며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박동희는 직구·커브 위주의 단조로운 투구 패턴과 제구력 불안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오른쪽 팔꿈치 부상까지 겹쳐 시즌당 100이닝 이상을 던지지 못했다. 결국 영웅 대접을 받던 부산을 떠나 97년 삼성으로 트레이드 됐지만 5년간 4승 밖에 거두지 못하고 2002년 정든 유니폼을 벗었다. 59승 50패 58세이브 평균자책점 3.68. 그가 13년 동안 남긴 기록이다.
한편 박동희는 22일 오전 3시 15분께 부산시 남구 광안동 탑마트 앞 왕복 4차선 도로에서 자신의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몰고 수영구청 방면으로 달리다 버스 정류장 기둥을 들이받아 현장에서 숨졌다. 고인의 시신은 부산 남천동 좋은강안병원에 안치됐다.
장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