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나금주 기자] '선녀들-리턴즈' 정유미, 설민석, 전현무, 유병재, 김종민이 3·1운동 탐사여행을 떠났다.
1일 방송된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27회에서는 3·1운동 특집이 펼쳐졌다.
이날 전현무, 유병재, 김종민은 대한민국 최초 독립운동 테마역인 안국역에서 만났다. 선녀들은 역사적 인물들을 100초 동안 만날 수 있는 100년 기둥으로 향했다. 그곳엔 설민석, 정유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설민석은 "올해가 3.1운동 101주년이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새로 다가올 100년을 설계하는 역사의 변곡점에서 3.1운동의 의미를 알아보자"라고 밝혔다. 선녀들은 안국역 내에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보았다. 전현무는 "헌법이 9번 개정되었는데, 한 번도 빠지지 않은 게 3.1운동이다"라고 밝혔다.
김종민은 거사일이 3월 1일로 결정된 이유에 대해 "고종황제 서거 후 3월 3일을 국장일로 결정했다. 그래서 그날 하기로 했는데, 천도교 측에서 국장일을 택하는 것은 불경이라고 반대해 3월 2일로 변경했다. 근데 기독교 측에서 일요일이라고 해서 3월 1일로 결정했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기미독립선언서를 보러 간 선녀들. 설민석은 최남선이 기미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감시를 피해 독립선언서가 쓰였지만, 인쇄 과정도 문제였다.
설민석은 "인쇄한 분이 보성사 사장 이종일이란 분이다. 천도교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제국신문을 창간한 분"이라고 했다. 설민석은 "전국에 배포해야 하는데, 하필 파출소를 지나가야 했다. 밤 11시~12시까지 인쇄했다고 추정하는데, 한밤중 수레를 끌고 가는 게 의심스럽지 않냐. 그래서 성주 이씨 족보를 덮어서 위장했다. 그런데 일본 헌병 경찰에게 잡혔다. 안까지 뒤져보라고 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된다"라고 밝혔다.
집중하던 선녀들은 "갑자기요?"라고 당황했다. 설민석은 "이종일은 3.1운동 직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라며 "3.1운동이 없었으면 우리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이런 필연 같은 우연이 3.1운동을 낳았다"라고 밝혔다.
기미독립선언서는 7개 도시를 거점 삼아 퍼졌다. 또한 미국 대통령 윌슨을 비롯해 러시아, 프랑스, 영국 대사관, 일본 총리에게도 발송됐다. 설민석은 "독립선언서는 경전처럼 여겨졌을 것 같다. 우리의 역사, 미래를 적어놓았기 때문에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역사고, 결기였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3.1운동 24시간 전, 선녀들은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김종민은 "2시에 학생들 200여 명이 모인다. 이화학당에서도 학생들이 나오려고 했는데,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이 다칠까 봐 이들을 막았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담을 넘었다"라고 밝혔다.
학생들을 중심으로 모인 추정인원은 5천 명. 설민석은 "일제는 처음엔 선동한 사람이 없어지면 시위가 잠잠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수개월간 지속된다"라고 밝혔다. 독립운동은 순식간에 퍼졌고, 전국에서 1,600건 이상의 만세 시위 운동이 벌어진다. 국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해외에서도 계속됐다. 이에 일제는 무력으로 진압하고, 46,000명을 검거했다고.
설민석은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해 밝혔다. 만세 운동에 참여했단 이유로 제암리에 보복한 사건이었다. 설민석은 "교회당에서 강연이 있다고 속인 후 남자 20여 명을 부른다. 그런데 문을 잠그고 불을 지른다. 아이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창문으로 아이를 내밀었지만, 전부 학살한다"라며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일본군은 총소리에 놀라 달려간 부인들도 살해하고, 민가에도 불을 질렀다. 심지어 일본은 은폐를 시도했지만, 스코필드가 사진을 찍어서 일제의 만행이 알려진다.
설민석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국제사회가 알게 되는 것이었다. 근데 일제의 만행을 알린 분이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앨버트 테일러였다. 앨버트 테일러는 독립선언서, 3.1운동 과정, 제암리 학살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반면 이완용은 3.1운동 경고문을 세 차례에 걸쳐 매일신보에 실었다고.
전현무는 "3.1운동 자제단도 있었다. 박중양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대구에서 시작돼 조직적으로 3.1운동을 막으려 했다"라고 했다. 정유미는 "박중양이 이토 히로부미의 눈에 들고 싶어서 이토 히로부미 아내를 구했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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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금주 기자 nkj@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