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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구, 아직 머나먼 세대교체

기사입력 2006.12.09 22:14 / 기사수정 2006.12.09 22:14

이준목 기자

    
[엑스포츠뉴스 = 이준목 전문기자] 한국농구가 도하에서 시련의 12월을 보내고 있다. 사상 첫 AG 동반우승을 목표로 야심 차게 출발했던 한국 남녀농구는, 여자대표팀이 언제나 한 수 아래로 여기던 복병 대만과의 첫 경기에서 73-80으로 일격을 당하며 주춤했고, 남자팀도 지난 7일 중동의 강호 요르단에 62-68로 패배하며 2승2패를 기록, 8강 진출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설사 조별예선을 통과한다 할지라도 토너먼트 첫 경기부터 ‘만리장성’중국 같은 유력한 우승후보들과 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어 한국농구로서는 앞으로의 일정이 더욱  험난한 가시밭길이 될 전망이다. 



한국농구의, 아직 세대교체 과정일 뿐

그러나 당장 성적보다 더욱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내용에 있다. 남녀 모두 ‘프로’라는 이름을 내건 대표 선수들이 보여주고 있는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두고 언론에서는 연일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다. 이 상태로라면 우승은 고사하고 아시아무대에서 더 큰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시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섣불리 비판하기에 앞서 과연 이번 대회의 한국이 언론의 기대처럼 우승을 노릴만한 전력이었는가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어쩌면 한국농구는 도하에서 아직도 '세대교체'의 후유증을 둘러싸고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남녀 동반우승을 목표로 한다고 했지만, 사실 지금의 한국농구는 남녀팀 모두 냉정하게 우승권의 전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한국농구는 지난 몇 년간 계속 국제무대에서 하락세를 걸어왔다. 여자대표팀이 2000 시드니올림픽과 2002 세계선수권 4강을 정점으로, 2004 아테네올림픽 본선 전패의 수모를 당하며 몰락하기 시작했고, 남자대표팀 역시 2002 부산 AG 우승을 마지막으로, 1년전 같은 장소인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인 4위에 그치며 한계를 드러냈다. 

남녀 모두 프로화의 그늘에 가려서 우물안 개구리에 만족하다가 세계농구의 변화 흐름에 둔감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10년 넘게 변화가 없는 대표팀의 라인업은 세대교체 실패와 노쇠화로 한계에 치닫고 있었고, 국내 농구의 외국인 선수 의존도 심화로 인한 센터 고사 현상과, 한국농구의 주특기이던 야투(3점슛) 중심의 농구는 이미 국제무대에서 치명적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에 자극받은 한국농구가 2006년에 들어서야 노장 선수들을 배제하고 ‘젊은 피’를 내세워 본격적인 세대교체에 돌입했지만, 그 기간도 얼마 되지 않는다. 남자팀은 지난 8월 WBC(월드바스켓볼챌린지)에서 4전 전패를 기록했으나 강팀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잠재력을 인정받았고, 여자팀은 9월 세계선수권에서 1라운드 3전 전패를 기록하는 등 역대 최악의 성적인 13위를 기록했지만 막판 2연승을 거두며 젊은 피들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불과 4~5경기를 소화한 것만으로 대표팀의 세대교체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한국이 세계농구의 조류에서 오랫동안 밀려나 있는 동안, 중국은 이미 ‘탈아시아권’을 선언하며 세계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강호로 발돋움했고, 중동세와 대만, 일본 등의 급성장은 그나마 한국이 아시아무대에서 유지하던 ‘넘버 2’의 지휘를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언론에서는 한국농구의 패배에 대하여 결과만 놓고 이변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남자농구의 이란이나 요르단, 여자농구의 대만 등은 더 우리가 예전에 생각하던 것처럼 호락호락한 약체가 아니다. 한국대표팀의 전력이 예년에 비해 분명 약해진 부분도 있지만, 중동세와 극동 농구의 급성장을 무시한 채 최근의 패배를 자만이나 투지 부족 같은 정신적인 문제에서만 찾는 것은 난센스다.



한국농구는 아직 세대교체의 과도기에 놓여있다. 남자팀의 경우, AG을 앞두고 세대교체의 핵심으로 평가받던 하승진의 부진과 방성윤의 부상, 여기에 젊은 선수들의 경험 부족까지 겹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장 서장훈이 재합류했지만 별다른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아직은 문경은, 이상민, 현주엽 등 노련한 선수들의 부재가 더욱 크게 느껴지고 있다. 

남자팀에 비해 인재창고가 더욱 협소한 여자팀의 경우에는 선수자원의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 현재 대표팀에서 득점력과 경험을 고루 갖춘 선수는 변연하와 김계령 정도일 뿐, 나머지 선수들은 소속팀에서조차 노장과 외국인 선수에게 밀려 비주전 급이거나, 2~3년차 이내의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 위주로 되어있다. 

남자대표팀이 AG을 앞두고 세대교체를 단행했음에도 서장훈만큼은 예외적으로 재합류시켰듯, 여자팀도 AG에 한해서 정선민, 전주원의 제한적 복귀가 거론되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자농구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한 번 세대교체의 초심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잠재력은 있다고 하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어린 선수들에게, 아시아 최강을 호령하던 선배들의 공백을 당장 메워주기 기대하는 것은 사실 무리다. 

세계농구의 상향평준화 흐름에 한국농구는 이제 더 이상 아시아에서도 1,2위를 다투는 전력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격차를 줄여나가기 위한 과정의 시련은 이번 AG에서 어차피 예상 가능했던 범위에 있었다.

한국농구, 프로의 자존심을 지켜라.

아직 대회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당장 이번 대회의 결과만으로 한국농구의 세대교체를 평가하는 것은 섣부르다. 세계 8강을 호령하는 중국 남자농구나 카타르, 레바논, 최근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대만 여자농구 등도 최근의 성장을 이루기까지 몇 년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세대교체 과정에서 지난 2002년 부산 AG 결승에서 당한 충격의 역전패는, 한국에는 환희의 기억이지만,  탈아시아를 꿈꾸던  중국농구로서는 충격적인 참사였다. 그러나 그런 시행착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유망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한 세대교체 기조를 유지해나감으로써 오늘날 아시아무대를 넘어 세계에서도 8강을 넘보는 전력으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결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적어도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출전했다면 적어도 그들의 이름 앞에 붙는 태극 마크와 프로선수라는 자존심을 지켜주기 바라는 것은 당연지사. 이번 AG에 들어 유독 야구, 축구, 농구 등 국내 프로스포츠를 대표하는 구기 종목의 경기력이나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어서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특히 농구대표팀의 경우, 과연 프로화가 도입된 이후 한국농구의 국제경쟁력 향상에 얼마나 크게 이바지를 했는가 의문의 시선이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  최근 AG에서 소속팀 일정을 염두에 두고 수비나 허슬플레이에도 몸을 사리는 일부 소극적인 프로 선수들의 경기모습은, 대표팀의 부진으로 팬들에게 주는 실망감을 넘어서, 장기적으로는 국내 프로농구의 이미지에서 나쁜 영향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진정한 프로다운 책임감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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