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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피겨 인사이드] 피겨, '정확성'에서 '고난도 점프'로 이동하나

기사입력 2010.05.10 03:11 / 기사수정 2010.05.10 03:11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신채점제'가 도입되면서 피겨 스케이팅의 기술은 '어려움'보다는 '정확성'에 무게 중심을 두게 됐다. 똑같은 기술이라도 보다 정확하게 구사하는 선수에게 유리하게 적용된 것이 신채점제의 성격이었다.

구채점제와 신채점제의 명확한 기준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교과서적이고 정확함'을 추구하던 신채점제의 방향이 흔들리고 있다. ISU(국제빙상경기연맹)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10-2011 시즌에 적용될 새로운 룰에 대한 '규정 임시안'을 공개했다.

이 규정안은 '임시안'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공표된 룰은 아니다. 이 규정안은 6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제53회 ISU 정기총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하지만, 올림픽 이후, ISU가 제시하는 방향이 어디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인 것은 사실이다.

고난도의 점프를 시도할 수 있는 선수를 배려하자

지난 2월에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논쟁이 많았던 종목은 남자싱글이었다. '피겨 황제' 예브게니 플루센코(28, 러시아)를 누르고 에반 라이사첵(25, 미국)이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쿼드러플(4회전) 점프'의 가치를 두고 논란이 이어졌다.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 플루센코는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 "4회전 점프가 없는 남자 싱글은 피겨라고 부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2위에 오른 라이사첵을 견제하는 발언이기도 했다.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이자 2009-2010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리스트인 라이사첵은 '4회전 점프' 없이 세계 정상을 지켜왔다. 지난해 여름, 국내에서 열린 아이스쇼를 위해 방한한 라이사첵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신채점제의 특징을 강조하며 밴쿠버 올림픽에서의 자신감을 표명했다.



"신채점제에서 4회전 점프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더 이상 고난도 기술에 무게를 두는 구채점제의 시대가 아니에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기술을 올림픽에서 완벽하게 선보일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상은 적중했고 그는 4회전 점프 없이 플루센코를 이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플루센코는 한동안 현행의 규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고 이 문제는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여자 싱글의 아사다 마오(20, 일본)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모두 트리플 악셀을 3번 시도했다. 그리고 이 점프가 인정을 받으면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금메달의 주인공은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지 않은 김연아(20, 고려대)였다. 아사다 마오는 트리플 악셀을 시도했지만 김연아는 트리플 +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비롯한 다양한 점프의 조합을 앞세워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쳤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사이에 놓은 점수 차이는 무려 23점이었다. 일부 일본 언론은 트리플 악셀을 3번이나 성공시켰지만 이러한 점수 차이가 난다는 점에 의문을 품었고 고난도 기술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성토를 토로했다.

그리고 밴쿠버 올림픽이 끝난 다음 시즌인 2010-2011 시즌을 앞두고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규정안이 공개되었다.

기술의 정확성을 추구하던 신채점제, 기로의 길에 서다

어려운 기술에 혜택을 주자는 의견은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던 문제다. 한 대한빙상경기연맹 고위관계자는 "국제심판들 사이에서 정확한 더블 룹이 가산점을 많이 받으면 트리플 룹보다 더욱 많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현상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고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신채점제의 방향성은 '교과서적이고 정확한 기술'에 있었다. 고성희 대한빙상경기연맹 심판이사는 "신채점제는 정확한 점프를 추구해왔었다. 같은 기술이라도 깨끗한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를 인정하자는 쪽이 대세였지만 이번 규정안은 이러한 방향과는 상반된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



이번 규정안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트리플 악셀의 기초점수가 8.2에서 8.5로 오른 부분이다. 또한, 특이한 점이 있다면 트리플 러츠의 기초점수는 6.0점으로 예전과 변동된 점이 없고 트리플 플립은 5.5에서 5.3으로 하락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트리플 룹은 5.0점에서 5.1로 올라갔다. 가장 어려운 두 종류의 토 점프(토를 찍고 도약하는 점프 : 러츠, 플립, 토룹)의 점수가 올라가지 못했지만, 에지 계열의 점프는 기초점수가 상승했다.

특히, 트리플 악셀의 기초점수는 꾸준하게 오르고 있다. 그리고 회전수의 부족 문제도 더욱 완화했다. 예전에는 회전수가 부족하다는 판정이 내려지면 '<'마크를 주면서 다운그레이드 판정을 내렸지만 새로운 규정을 보면 1/4 이상, 1/2 이하로 부족할 때는 '<' 마크를 내리면서 기초점수의 70%를 주겠다고 표기돼있다.

이제 회전수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고난도의 점프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김연아가 신채점제의 시대에 부응하는 정확하고 완벽한 점프를 구사해오면서 이러한 흐름이 지향점이 되는 듯했다. 아사다 마오가 아무리 트리플 악셀을 구사해도 회전수 부족의 문제는 꾸준하게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도 새로운 규정안이 제시되면서 뒤바뀔 가능성이 생겼다. 예전에는 고난도의 점프보다 할 수 있는 점프를 완벽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트리플 악셀같은 기술이 '도전해 볼 수 있는 가치'로 격상되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룰의 명과 암

국내에서 성장하는 스케이터들은 모두 김연아의 영향을 받고 있다. 피겨와 관련된 모든 요소에서 강점이 있는 김연아는 피겨 유망주들의 지향점이 됐다.

현재 국내에서 트리플 악셀을 실전 경기에서 시도할 수 있는 스케이터는 남자 싱글의 김민석(17, 군포수리고) 밖에 없다. 정확한 기술도 중요하지만 가능하면 트리플 악셀에도 도전해보자는 의견도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피겨 선수들을 조련해온 이인숙 생활체육스케이팅연합회장은 "탄탄한 기초와 정확한 기술도 중요하지만 가능성만 있다면 트리플 악셀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도전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면 충분히 시도해볼 만하다"고 밝혔다.

고난도 기술의 도전을 장려하고 이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들을 인정하자는 ISU의 방향성이 제시됐다. 이 규정의 장점은 어려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물론, 많은 선수가 트리플 악셀과 쿼드러플 같은 기술에 도전하는 기회를 준 것은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부정확한 기술을 인정하고 정확한 기술을 구사한 선수보다 혜택을 주는 현상은 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 어려운 기술을 익히는 점도 쉽지 않지만 기술 자체를 완벽하게 익히는 점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새로운 규정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장점이 많을 선수일수록 특정한 규정에 흔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보면 김연아는 지금까지 바뀐 룰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줬다.



그리고  트리플 악셀의 기초점수는 올라갔지만 토 점프 계열 중 가장 어려운 러츠의 기초점수가 올라가지 않았다. 또한, 룹의 기초점수는 상향조정됐지만 플립의 기초점수는 낮아지고 말았다.

이렇듯, 특정한 점프에만 기초점수가 올라간 점은 경기력에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하게 된다. 트리플 러츠를 활용한 3+3 콤비네이션 점프보다 회전수가 부족해도 트리플 악셀을 활용한 점프가 이득을 볼 가능성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 김연아, 아사다 마오 (C) 엑스포츠뉴스 정재훈, 성대우 기자, 에반 라이사첵 (C) 엑스포츠뉴스 남궁경상 기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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