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이 1418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1월과 2월 극장가를 장악한 '극한직업'이 전해주는 웃음 속, 살아있는 캐릭터와 차진 대사로 영화의 재미를 살린 작가의 활약도 주목받고 있다.
'극한직업'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창의인재동반사업에 당선된 문충일 작가의 각본을 바탕으로 배세영 작가와 허다중 작가, 이병헌 감독이 각색에 참여했다.
배세영 작가는 '완벽한 타인'과 '극한직업' 이전부터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2007), '킹콩을 들다'(2009), '적과의 동침'(2011), '미나문방구'(2012), '우리는 형제입니다'(2014), '바람바람바람'(2017)의 각본과 '된장'(2010), '미쓰GO'(2012), '원더풀 고스트'(2018) 등의 각색을 맡으며 꾸준히 활동해 왔다.
지난 해 10월 개봉해 529만 관객을 동원한 '완벽한 타인'을 통해 대사의 맛을 관객들에게 알린 배세영 작가는 3개월 후 개봉한 '극한직업'을 향한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다시 한 번 대중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극한직업' 천만 관객 돌파 후 만난 배세영 작가는 "원작 시나리오가 재미있었어요, 재미있는 설정이었기에 확 끌리는 마음이 있었죠"라며 함께 작업한 허다중 작가와 연출의 힘으로 재미를 살려준 이병헌 감독, 열연해 준 배우들에게 겸손하게 공을 돌렸다.
-영화가 흥행하고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진다는 것은, 시나리오가 좋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완벽한 타인'과 같이 연달아 나오면서 그렇게 더 생각을 해주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완벽한 타인' 때도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잖아요. 그러다보니 말맛을 살릴 수밖에 없었고, 이 이야기도 치킨집이라는 한 공간과 캐릭터들이 여러 명이 나오는데 각자의 캐릭터들을 살리려면 결국에는 할 수 있는 게 대사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엄청난 액션 신들이 계속 나오는 게 아닌 이상은 그들의 말, 캐릭터로 장면을 살려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살았다고 생각해주셔서 시나리오를 칭찬해주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극한직업'의 크레딧에는 각색에 참여하신 것으로 나와 있죠. 원작 각본을 토대로 상황과 캐릭터의 디테일한 설정들은 허다중 작가, 이병헌 감독이 함께 했다고 알고 있어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당선된 문충일 작가의 각본을 CJ ENM(배급사)에서 픽업을 하셨고, 김성환 대표(제작사 어바웃필름)에게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왔던 것이죠. 그리고 김성환 대표님이 제게 각색을 부탁하셔서 작업하게 된 것이에요. 김성환 대표님과는 10년 전 '적과의 동침'때부터 인연이 있었고요. 실적 없는 마약반이 치킨집을 인수해서 위장 창업을 하다 대박이 난다는 설정은 원작에 나와 있는 부분이었죠."
-'재미있게 잘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 같아요.(웃음)
"재미있는 설정이라서 확 끌리는 것이 있었죠. 형사물 같은 것에서 범죄자를 소탕하는 그런 것은 제게 사실 어려운 부분이긴 해요. 아무래도 저는 휴먼 코미디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요. 치킨집 설정 자체를 보면 액션이 활보하는 얘기라기보다,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 앞부분에는 개연성 있게 가야 된다고 생각햇어요. 그래서 그 때 같이 작업한, 잊지 말아야 할 작가가 허다중 작가거든요. 저와 동갑이고 'SNL 코리아'도 같이 했던 제 친구인데, 다른 작업을 하던 찰나에 요청이 들어왔었어요. 그래서 허 작가와 함께 같이 캐릭터를 잡고 회의하면서 작업해나간 것이었죠."
-원작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든 대사나 캐릭터의 설정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캐릭터의 이름은 원작에서 하나도 바꾸지 않았고, 이무배(신하균 분) 이름은 감독님께서 넣으신 것이었어요. 또 사실 캐릭터들의 이름이 극중에서 불릴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저희끼리는 고반장(류승룡)의 이름을 고현빈이라고 설정해보기도 했거든요. 겉모습은 소위 말해 웃기면서도 슬픈 아저씨인데, 이름이 현빈이라고 하면 웃음이 나지 않을까 했죠. 또 장형사는 장미란, 마형사는 마동석이라는 이름으로 저희끼리 설정해놓고 웃기도 했던 것 같아요.(웃음)"
-SNS 스타 김여사를 탄생시키는, 오프닝 장면도 강렬했죠. 그 부분에서 관객들이 무장해제 된 부분도 큰 것 같고요.
"저도 정말 웃겼어요.(웃음) 마형사가 칩을 뺏기는 순간부터가 제가 쓴 것이고, 앞부분 프롤로그는 모두 감독님이 만드셨죠. 저도 '극한직업' 개봉하고 영화를 7번 정도 더 봤지만, VIP 시사회 때 그 장면은 처음 본 것이었어요. 제가 썼던 프롤로그는, 형사들이 누군가를 잡으러 뛰어다니고 결국 잡아서 체포를 해 오는데, 그 사람이 사고뭉치 마형사였던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네가 우리 수사비 갖고 도망갔어?' 이런 설정이었는데, 감독님께서 그것을 더 재미난 이야기 구조로 만드신 것이죠. 차에서 내동댕이쳐진 환동(이중옥)의 표정도 그렇고, 정말 재미있게 잘 만드셨더라고요.(웃음)"
-후반부 마약반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관객들에게 더욱 통쾌하고 시원함을 안겼다는 이야기도 많죠.
"이들이 앞부분에는 한 번도 싸울 일이 없는 것이에요. 치킨집을 하느라 바쁘니까요. '도대체 이런 애들을 왜 모아놨지?'라는 생각을 저도 경찰서장(김의성)과 같은 마음으로 고민했던 것 아닐까 싶어요.(웃음) 하지만 알고 봤더니 이들이 진짜 싸울 일이 생겼을 때 생각지도 못하는 힘이 솟아나오는 장면을 만들면 시원하겠다는 생각을 했죠. 구체적인 설정은 감독님께서 재미있게 만들어 주셨어요. 끝까지 버티는 '좀비 반장'이라는 설정도, 감독님의 아이디어였고요."
-배 작가와 허다중 작가, 이병헌 감독의 아이디어가 모두 잘 조화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치킨집을 인수하는 장면에서 고반장이 '전 남편'이라고 말하는 장면까지는 제가 썼어요. 그런데 거기에 감독님이 '아메리칸 스타일'이라는 맛을 쳐주신 것이죠. 또 후반부 재훈(공명)이 고반장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허다중 작가가 만든 것이에요. 정말 다들 작정하고 만들었죠.(웃음) 그래서 '이것 누가 만들었어'라고 하면 '이 신은 누구 것이다'라고 딱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서로의 조화가 잘 된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잘 맞아떨어져서 영화도 잘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각색에서의 세 분(배세영 작가, 허다중 작가, 이병헌 감독)의 지분을 정확히 나누기 힘들겠는데요.(웃음)
"원래 각본에서는 고반장과 영호(이동휘)가 주인공이었어요. 각색하는 과정에서 마형사의 비중이 높아지게 됐죠. 마형사의 비중을 높이자는 생각으로 결심하고 쓴 것은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애정이 가는 캐릭터인 것이죠. 끝까지 사고뭉치일 줄 알았는데, 후반부에는 큰 활약을 펼치는 그런 모습이 좋겠다고 허다중 작가와 얘기를 했었고요. 많은 분들께 웃음을 준, 마형사가 '한 놈만 팬다'고 하는 설정은 감독님께서 하신 것이에요. 잘 보시면 영화 몇 개를 패러디하신 부분도 있잖아요. 그것도 감독님의 센스가 빛났던 부분이죠. 누구 하나의 힘으로 될 수 있던 일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병헌 감독님과는 '바람바람바람'때도 같이 작업했지만, 두 분의 코드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이병헌 감독님과는 따로 무언가 호흡을 맞춘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맞아요.(웃음) 무언가 감독님과 다음 작품도 같이 해야 될 것 같고, 지금 드라마 작업 때문에 바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작가분과 작업하고 계시다고 하면 괜히 질투도 나고요.(웃음) 얘기하다 보니까 갑자기 감독님이 뵙고 싶네요.(웃음)."
-친구이자 동료인, 허다중 작가와의 작업 과정 이야기도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코믹감이 정말 좋은 친구거든요. '극한직업' 작업 할 때도, 서로 아이디어를 얘기하다가 너무나 웃겨서 하루 종일 웃은 적이 많아요.(웃음) 영화에는 안 들어갔지만, 저희끼리는 그런 얘기도 했었거든요. 고반장과 이무배가 서로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계단 같은 곳에서 서로 스쳐가는 것이죠. 그런데 그 때 '접속' OST가 흐르는 것이에요.(웃음) 실제 각본에도 썼지만 영화에 포함되진 못했죠.(웃음) 허 작가는 지금 드라마 작업 중이고요."
-'수원왕갈비통닭' 설정이 나오게 된 것도 실제 작업 장소가 수원이기도 하고, 허다중 작가가 실제 수원시민이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네, 허 작가가 수원시민이에요.(웃음) 그래서 저는 허 작가와 같이 작업을 하다 보니 수원에서 머물게 된 것이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갈비나 치킨에 대해 알게 된 것이죠. '극한직업' 작업이 2016년 10월에 끝났는데, 당시 몸이 아파서, 허다중 작가와 서로 정말 힘들게 썼었던 기억이 나요. 쓰면서는 '이 작품이 천만 영화가 될 것이야'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았고, 이렇게 결과를 보니 '다 하늘의 뜻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될 수 있는 영화는 이렇게 (좋은 작업 과정을 거치면) 되는 것이구나'라는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무엇보다 제가 즐겁게 작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죠."
-실제 여러 영화와 작품들을 통해 시나리오 작가의 존재감이 이전보다 좀 더 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느끼는 감회도 남다를 것 같아요.
"작업 요청도 실제로 감사하게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미리 약속된 작품들이 있기도 해서, 잘 살펴보고 결정하려고 하고 있고요. 요즘에는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제작사나 투자사 관계자 분들을 만나서 인사하면 이제는 작가들을 많이 픽업해놓고 싶고, 작가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거든요. 시나리오 자체에도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시는데, 그런 말씀들이 정말 뿌듯하고 반갑더라고요.(웃음)"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