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중국과의 ‘2005 동아시아축구대회’ 첫 번째 경기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3명이나 퇴장당한 중국을 맞아 단 한 골만을 성공시키며 1:1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동점 골을 성공시킨 김진규 선수 - 사진 - ⓒ 박효상슈팅 수(18:2, 유효슈팅 9:1), 볼 점유율(85:15), 코너킥(13:1) 등, 모든 부분의 경기 기록에서 압도적이다 할만큼의 경기 내용을 보여주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한 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들만 노출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줄기차게 대표팀의 보완 과제로 지적되어 왔던 공격진들의 골 결정력이나, 수비수 간의 조직력 미숙 등의 해묵은 문제점들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당장 손을 보지 않으면 안 될, 불안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띄는 경기였다.
플레이메이커의 발굴 절실하다먼저,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리드하고 흐름을 파악해 나갈 플레이메이커의 발굴이 절실 해 보였다.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이 있긴 하지만, 박지성 자신의 기량도 그렇고 대표팀 전체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라도 또 다른 선수의 발굴이 필요하다.
이 날 본프레레 감독은 수비형 미드필더인 김상식과 김정우를 나란히 투입, 더블 보란치의 형태를 띠며 상대 공격을 앞 선에서 차단하는데 역점을 두는 미드필러 라인을 선보였다. 하지만, 중국이 이른 시간대에 한 명을 퇴장으로 잃으면서 경기 상황은 한국의 일방적인 공격 상황으로 급격히 변화되었고, 사실상 이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의 존재는 무의미해졌다.
만약 경기 내용이 정상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더라도 상대를 공격 예봉을 꺾는 데는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공격적인 부분이나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조율하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실제로 전반 내내 대표팀은 공격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해 부산스러웠고, 공격 방향, 패턴의 변화나 상대 수비를 흔들 수 있는 새로운 공격 루트의 개발이 없었다.
전반 동안 기록을 살펴보면 대표팀은 좌측에 27%, 중앙에 26%, 우측에 47%라는 공격 비율을 보였다. 이는 이동국이 비교적 우측에서 많은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중앙 미드필더였던 김상식-김정우의 볼 배급이 우측으로만 편중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서 상대 수비수들은 우측에 수비의 무게 중심을 옮기며 비교적 단순한 상대의 공격 패턴을 쉽게 막을 수 있었다. 이럴 경우, 중앙 미드필더의 역할을 하고 있는 선수들이 공격 방향의 전환이나 다른 패턴을 선택하면서 상대의 수비라인을 교란 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김상식과 김정우의 미드필더들은 한 쪽으로 계속 치중했고, 그것이 결국 단순한 공격 패턴으로 이어져 좋은 장면을 만들기 어려웠던 것이다.
후반에 교체 투입되어 들어온 김두현도, 양 측면과 중앙 등을 쉼 없이 오가며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상대의 허를 찌르는 킬-패스나, 날카로운 경기 운영 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공격 방향의 전환이나, 풀리지 않는 경기의 매듭을 풀기 위한 몫은 경기장에서 게임메이커가 풀어나가야 할 부분이다. 경기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그 흐름에 대한 대처 방법을 그라운드에서 풀어나갈 수 있는 좋은 플레이메이커의 빠른 보완이 절실해 보인다.
세트플레이 기회에서의 효과적인 공격 필요두 번째는 코너킥, 프리킥 등 세트 플레이 상황에서 효과적인 공격이 필요하다.
이 날 경기에서 대표팀은 무려 13개의 코너킥과 26개의 프리킥을 얻었지만, 세트 플레이 상황에서의 좋은 장면은 단 두 차례밖에 없었다. 후반 27분 얻은 직접 프리킥 기회를 김진규가 골로 성공시킨 것과 후반 42분 간접 프리킥의 기회에서의 이동국의 슈팅이 골키퍼의 선방에 걸린 장면뿐이었다. 나머지 프리킥은 대부분 무위로 끝나거나 위협적인 장면조차 연출해내지 못했다.
코너킥은 더 문제였다. 이 날 대표팀은 전반에 4개, 후반에는 무려 9개의 코너킥을 시도했지만, 슈팅으로 연결된 장면은 후반 막판에 터진 정경호의 헤딩슛이 유일했고, 그나마 우리 선수의 머리나 발로 직접 연결된 것도 단 세, 네 차례밖에 없었다.
거의 모든 코너킥이 상대 수비수의 머리나 골키퍼의 캐치에 걸렸고, 나머지 공들은 어이없는 방향으로 날아가기 일 수였다. 코너킥과 프리킥은 ‘약속된 플레이’가 나와야만 득점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키커는 사전에 정해진 위치에 공을 떨어뜨려야 하고, 공격수들은 그 위치를 상대와의 몸싸움 등에서 이겨 쟁취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날 경기에서 보여준 코너킥과 프리킥 기회에서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에 맞는 킥도 없었고, 공격수들도 공의 낙하지점을 제대도 포착하여 슈팅 등으로 연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현재 대표팀에서 코너킥과 프리킥을 확실하게 전담하여 차는 선수가 딱히 정해지지 않은 것도 문제겠지만, 이러한 기회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무산시켜버린다는 것도 큰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중국과의 경기처럼 우리가 일방적인 공격을 하는 흐름으로 가는 경기가 아니라 상대에게 끌려다니는 경기를 펼치는 경우에는 이러한 세트 플레이 하나하나가 무척 중요한 득점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 날 경기에서 대표팀이 허무하게 날려버린 수많은 세트플레이 기회의 무산, 분명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 중 하나이다.
포지션과 전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도 필요해마지막으로 선수들 자신이 뛰는 포지션과, 감독이 지시하고 팀이 사용하는 전술 등에 대한 전체적이고도 정확한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대표팀은 이 날 경기에서 최전방에 쓰리-톱을 가동하는 3-4-3의 전술을 사용했다. 3-4-3 전술을 사용하는 팀의 통상적인 공격 루트는 좌, 우측면의 날개로 기용된 공격수들의 활발한 측면 돌파와 그에 이은 크로스를 중앙에 포진한 공격수가 따내는 것이다. 특히 이 날 경기에서 중국 대표팀이 수적인 부담을 느껴 수비를 두텁게 했기에 더욱더 측면을 자주 사용하여 상대를 흔들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은 전반 내내 우측 공격수로 출전한 김진용과 이동국이 중앙에서 위치가 겹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이천수와 김동진의 좌측면과 김진용, 박규선의 우측면에서의 돌파는 전혀 없었다. 이동국이 전반 중반에 보여준 우측에서의 돌파가 거의 유일 했을 정도이다.
경기 내내 본프레레 감독이 답답한 모습으로 선수들에게 측면 돌파와 상대 진영으로 깊숙이 침투하라는 사인을 수차례 내보낼 정도로 팀의 전술은 그라운드에 나오지 않았고, 한데 뭉그러지는데 그쳐 효과적인 경기력을 선보이지 못했다.
상대를 허물 수 있는 방법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대표 선수들은 상황과, 자신이 해야 할 임무에 대한 숙지가 부족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경기를 잘 풀어나가지 못했다. 이 날 경기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제 몫을 다한 선수는 정경호뿐 이었다.
우리 대표팀의 고질적이었던 골 결정력과 수비 조직력의 미숙 같은 오래된 문제점 외에도 현 시점에서의 단점들이 많이 노출 된 경기였다. 앞으로 남은 북한과 일본과의 두 차례 경기에서 앞서 지적했던 문제점들이 또다시 그대로 경기장으로 흘러나올지, 아니면 보완과 새로운 대책으로 다른 경기력을 선보일지 주목된다.
어차피 동아시아 대회에서의 우승트로피는 별 의미가 없다. 차라리 전 패를 당하며 철저히 무너지더라도 우리의 장-단점과 현주소를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도 좋을 대회이다. 선수들 개개인도 그렇지만 본프레레 대표팀 감독이 앞으로 남은 두 경기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이끌어 갈지도 지켜보자.
손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