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스포츠에서는 많은 별들이 뜨고 진다. 지난해엔 박지성 등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줬던 스타들이 은퇴를 선언하고 떠났다. 엑스포츠뉴스는 스포츠 현장을 물러난 '前 선수'들을 만나 그들의 근황과 안부를 물어보기로 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들과 함께 했던 지난날의 명장면들을 떠올리고 새로운 도전 혹은 변화를 맞고 있는 그들의 행보에도 응원을 보내고자 하는 것이 [Now&Then]이 바라는 바다.
[엑스포츠뉴스=김형민 기자] 정다래(24)가 지난 5일 은퇴를 선언했다. 5년 전 광저우에서 금빛 물살을 가르면서 떠올랐던 수영계의 샛별은 아쉽게도 선수라는 이름표를 뗐다. 결정적으로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내린 은퇴 결정에 미련이 많을 법도 하건만, 정다래는 정신없이 바쁘게 하루를 보내며 또 다른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이제는 '선생님'이라는 이름표를 단다. 수영교실을 목표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는 정다래를 만나 은퇴에 얽힌 이야기와 앞으로의 목표를 들어봤다.
"아무리 해도 몸따로 마음따로였다"
정다래가 은퇴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 배경에 이목이 쏠렸다. 보통 20대 후반은 운동선수에게는 전성기인데 이를 목전에 두고 떠나겠다는 결정에 남다른 사연이 있을 것으로 보였다.
지난해 10월 전국체전을 마친 후에 은퇴하기로 마음을 굳히도록 정다래를 이끈 것은 역시 부상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수영선수의 길로 접어든 뒤 각종 부상이 연이어 생기면서 그를 괴롭혔다. 지금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허리디스크는 물론, 하체와 상체를 오가면서 나타난 부상의 '어두운 그림자'는 정다래를 쫓아다니면 훼방을 놓았다.
특히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성장해야 하는 '결정적 시기'에 나타나 고통스럽게 했다. 정다래는 "오른쪽 무릎과 왼쪽 어깨, 허리디스크가 있었다. 무릎은 중학교때부터 그랬고 허리디스크는 고등학교 1학년때, 어깨는 2011년에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찢어지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 "다치면 필요한 부위를 쓸 수 없다. 다리를 다치면 상체 운동만 해야 하고 상체를 다치면 킥만 차야 한다"면서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몸따로 마음따로였다. 부상때문에 1년반정도 수원을 오가면서 치료를 받고 했음에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운동을 병행하려니 힘이 들었다. 부모님도 (힘들어하는 나를 보시고) 이제 그만해도 괜찮다고 하셔서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대치와 고정관념은 부담이 됐다"
정다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단연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이었다. 이 대회 여자 평영 200m에 나선 정다래는 매서운 기세로 결선까지 오르더니 값진 금메달을 목에 걸어 여자 수영의 간판으로 떠올랐다.
박태환이 건재하던 남자 수영에 비해 메달권에 도전할 얼굴이 없었던 여자 수영으로서는 정다래의 등장이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주변으로부터 과도한 관심이 쏠렸고 덩달아 기대치도 높아졌다. '얼짱'이라고 불릴 만큼의 돋보인 외모, 개성 넘치는 발언까지 더해져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기세는 쉽게 이어지지 못했다. 2011년 상하이세계선수권 여자 평영 200m에서 준결승 진출에 실패해 세계의 벽을 실감해야 했다. 이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준결승을 목전에 두고 아쉽게 탈락했다. 변덕스러운 대중은 자신들이 설정한 기대치에 미치치 못한 정다래에게서 서서히 눈길을 거두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정다래는 "선수촌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유명세를 크게 실감하지는 못했다. 가끔 외출을 할 때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 수준이었다"면서 "나에 대해 '무조건 잘하겠지'라는 고정관념이 생겼고 이런저런 자리에 많이 불려가서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하향세의 이면에는 역시 부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다래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세계대회가 있었는데 사람들의 주변의 기대수준이 매우 높았다. 세계대회 같은 경우 터치패드를 찍기까지 0.01초차이가 서로 날 정도로 결선에 오르기가 몸시 힘들다. 사실 부담이 많이 됐다"면서 "그렇다고 부상이 있다고 말하면 핑계가 될 것만 같아서 속앓이만 하고 있었다. 그 후에 올 질타와 차가운 시선이 무서웠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자율적인 수영과 좋은 시스템을 바래"
최근 여자 수영은 세계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정다래 이후 메달권 진입을 위해 유망주 발굴과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아직 확실한 결실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세계의 벽은 높고 메달권 진입은 물론, 결선 진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매 대회마다 빨라지고 있는 세계 수준을 쫓기가 벅찬 느낌이다. 정다래 역시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한계를 절감한 적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느낀 건 훈련시스템과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외국 선수들의 기록이 향상되는 속도를 보고 있자면 우리와는 뭔가 다른 시스템으로 운용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우리도 그들만큼 '열심히 하는 것'은 똑같을 거다. 그런데도 일본, 중국 등 아시아의 경쟁국가 선수들이 세계신기록을 쫓을 만큼 급성장하는 건 훈련체계나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닐까싶다" 면서 "일본의 경우 다양한 지표와 그래픽을 이용한다고 들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각도와 기술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훈련의 '양'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훈련량도 중요하지만 기술이나 시스템 같은 '질'에도 더 눈길을 줘야한다. 물론 예전보다는 많이 진일보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강압적인 훈련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선수 시절 강압적으로 훈련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선수들이 머리가 굵어지면 외부에서 압박하고 강제하면 훈련을 더 하기 싫어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선수촌에서 수영 선수들은 외박이 자유롭지 못했다. 밖에 나가서도 스스로 몸관리를 하는 부분도 있을텐데 무조건 돌리다보니 되레 훈련에 열심히 전념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어느 정도까지는 선수의 자율에 맡겨야 훈련 효과도 더 좋아지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의 목표와 꿈을 채워주고 싶다"
그렇게 선수생활을 하면서 깨닫고 느낀 점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전념하고 싶다고 했다. 당장은 개인강습 위주로 하되 경험이 쌓이면 수영교실을 여는게 목표다.
그래서 정다래는 은퇴를 하고서도 한가롭지가 않다. 이리저리 다니느라 선수때보다 몸은 더 바빠졌다. 지난 달 28일에는 강원도 홍천으로 수영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을 위해 강연을 다녀왔다. 정다래가 수영강습을 시작했다는 풍문을 듣고 '우리 아이 좀 맡아줄 수 없냐'는 부모들의 문의가 전국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홍천에서는 한 아버지가 교육청을 통해 수소문해 정다래에게 직접 연락을 한 경우도 있었단다.
인터뷰 당일에도 서울 시내에 뿌릴 개인강습 전단지 수백장을 들고 나타난 정다래는 "2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강습을 시작할 생각"이라면서 "아이들마다 각자의 목표가 있을 터인데, 뭔가됐든 자신의 목표와 꿈을 채울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나름의 교육 방식과 원칙도 세워뒀다.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훈련하고 스스로 수영을 즐기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억지로 수영을 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수영을 하기가 싫어지고 즐겁게 할 수 없다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면서 "어느정도 스스로 알게 되는 나이가 되면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을 깨닫기 마련이다. 그래서 애들을 가르칠 때는 늘 '자율' 이라는 말을 염두에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꿈나무를 키운다는 멋진 꿈에 부풀어서인가. 또박또박 말잘하고 얼굴도 풋풋해 온국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4차원 소녀' '얼짱 정다래''의 시절로 돌아간 듯, 표정이 한없이 맑고 밝았다.
김형민 기자 khm193@xportsnews.com
[사진=정다래 ⓒ 엑스포츠뉴스=권태완 기자, 엑스포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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